[인터뷰]세계수학자대회조직위원장 박형주 수리연 CAMP 센터장
개도국 수학자 1000명 초청…"선진국 중심이었던 인식 바꿔"

박형주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 현재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내 수학원리응용센터장을 맡고 있다.
박형주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 현재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내 수학원리응용센터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에만 지구 다섯 바퀴를 돌았다는 이 남자. 지구촌 최대 수학 올림픽인 '세계수학자대회'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8월 우리나라에서 치러지는 세계수학자대회의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수학원리응용센터(이하 CAMP) 센터장. 그는 이번 세계수학자대회를 통해 우리나라가 수학 연구 교류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수학 연구의 중심이 되긴 아직 힘들다. 세계 수학계가 놀랄만한 업적을 발표해 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 교류의 중심이 될 순 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학자들이 교류를 위해 우리나라를 찾게 되면, 그 자체로 연구 역량을 높일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실제로 중국은 2002년 대회 유치 이후 논문 수가 70% 이상 증가하면서 세계 2위 수학 대국이 됐고, 스페인도 2006년 개최 이후 10위권 진입에 성공한 뒤 현재 7위의 수학 강국이 됐다. 국제수학연맹에서 평가하는 수학 수준으로 상위 두 번째 그룹에 속해있는 한국의 경우, 대회 유치 이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도 있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 센터장은 "우리 문제를 풀어봤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임팩트가 없다. 세계가 바라보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선 수학자들의 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향을 파악하고, 세계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주시해야 한다. 세계수학자대회를 통해 우리나라 수학자들도 깨닫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 개발도상국 수학자 1000명 세계수학자대회에 초청…"충격이었다"

"국제수학연맹이 큰 충격을 받았다."

세계수학자대회 유치를 위해 한국이 제시한 제안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수학 선진국이 아닌 후발국의 수학자 1000명을 세계수학자대회에 초청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이 제안이 왜 파격적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전까지 수학자대회는 수학 선진국 중심으로 진행이 됐었다"며 "수학자대회가 개발도상국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전환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제안을 기점으로 연맹 내부에서 개도국 수학 교육과 연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이 확장됐다고 하니 허언은 아닌 듯 싶었다. 그는 "한국 수학계가 세계 수학계에 충격을 준 게 아닌가 싶다. 흐름을 바꾸고 있다"며 "8월에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의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다"고 말했다.

이같은 제안을 하게 된 건 좋은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1998년에 열린 베를린 수학자대회가 이번 제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 영감을 줬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수학자대회는 독일 통일 직후 개최됐다. 독일이 제안한 건 수학을 통한 동독과 서독의 화학적 통합이었다. 박 센터장은 "물리적 통합은 이뤄졌지만, 화학적 통합은 아직이었다. 서로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라며 "동독과 서독의 수학자들이 함께 협력하며 준비하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독일 통일은 세계적인 화두였다. 그런 제안을 연맹이 거부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독일은 당시 수학계에서 변방에 있었던 동유럽 수학자들 500명을 초청해 대회에 참여시켰다. 이같은 당시 독일의 행보는 유럽 연합의 과학지원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후로 동유럽의 과학자들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시작됐던 것. 박 센터장은 "그 불씨를 수학자들이 만들었다.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다"며 "유럽의 화학적 통합에 기여한 셈이다. 우리도 그런 걸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치러졌던 세계수학자대회는 수학 선진국들의 잔치였다. 개도국 수학자들의 참여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는 "한국은 열악한 연구 환경을 이겨내고 수학 선진국 초입에 서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후발국가들에 영감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1000명의 수학자들이 시작이다. 그들이 자국의 수학계 발전에 힘을 쓸 것이다"고 강조했다.

반응도 뜨거웠다. 자그마치 3608명이 지원했다. 개도국 수학자들의 열망은 컸다. 다른 나라들이 누가 지원하겠냐며 깎아내렸던 프로그램이었다. 박 센터장은 그만큼 통쾌했다고 했다. 이는 선진국 중심의 사고를 좀 더 확장시킨 계기가 됐다. 1000명의 지원자들을 선발하기 위해 심사위원도 공정하게 꾸렸다. 세계를 다섯 지역으로 나누고 기준을 달리해 선발했다. 각 국의 수학 수준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현재까지 910명을 선발해 공지한 상태다.

가능하다면 북한 수학자들도 이번 대회에 초청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 박 센터장. 그는 "1000명 중 910명을 제외한 나머지 90여 명의 자리는 유연성있게 대처하려고 하고 있다"며 "20여 명의 자리는 북한 수학자들 몫으로 남겨두려고 하고 있다. 북한 수학자들의 참여가 가능할 수 있도록 통일부에 요청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잘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동북아 연구 허브 본격 구축 시동…"수리연 역할 크다"

세계 각국의 수학자들이 와서 강연을 펼칠 수 있는 강의실.
세계 각국의 수학자들이 와서 강연을 펼칠 수 있는 강의실.

CAMP 내부. 수학자들이 서로 모여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창의적인 공간으로 꾸며졌다.
CAMP 내부. 수학자들이 서로 모여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창의적인 공간으로 꾸며졌다.

"세계수학자대회를 활용, 한국이 동북아 연구 교류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

목표는 분명하다. 한국 수학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 박 센터장은 "연구 교류가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연구 역량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기 때문이다"며 "그냥 왔다 가는 사람들에게 뭐하러 돈을 쓰냐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수학계에서 볼 때 맞지 않는 말이다. 수학은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도출해내는 학문이다"고 말했다.

일단은 모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대회에 수학자들이 많이 온다. 개도국 수학자들도 많이 온다. 그 중 상당수가 연구소를 거쳐 가게 된다. 그것이 시작이 될 수 있다. 말 그대로 연구 교류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라며 "대회를 잘 활용해서 우리나라가 동북아 허브의 구심점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북아 연구 허브 구축 사업은 수리연이 따온 사업 과제 중 하나다. 이 사업은 그가 이끌고 있는 CAMP를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CAMP는 수리연의 히든카드다. 인식조차 생소한 수학의 산업계 적용을 차근 차근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출연연과 대학, 산업체와의 연구협력을 통해 산학연의 기술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문제를 발굴하고 수학적으로 정의,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의 해법이나 솔루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여기에 연구 교류 기능이 가미된다. 개방형 연구를 통해 국내외 다양한 학술 활동을 운영해 연구소의 국제적 성장에 기여, 수리과학분야 리서치허브(Research Hub)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방침이다. 올해에만 국제워크숍이 30건이나 진행된다.

이를 위한 단장도 마쳤다. 각국의 수학자들이 와서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 마련과 강연을 할 수 있는 최첨단 강의실까지 세심하게 마련됐다.

박 센터장은 "세계적인 수학자가 와서 강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수학자들에게 좋은 계기가 된다. 못 오는 사람들을 위해 녹화시설도 마련,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며 "젊은 수학자들을 위한 창구가 되어서 수리연이 연구 교류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도록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1000명의 개도국 수학자들을 선발하는 일을 마무리 지은 지금, 약 1000여 개의 일반 강연 발표자들을 선발하기 위한 레이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지난 5년여 동안 국제 수학계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 우리 사회에서 수학이 기여하는 역할에 대한 이해가 많이 변했다"며 "이번 대회를 계기로 후배들도 세계 수학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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