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구 긴급 진단]② 친밀감·신뢰회복부터
연구원들 '방향성' 질문에 '외면' 일쑤

"대덕에는 이미 서말의 구슬이 준비돼 있다. 이것을 꿰서 가치 있는 보석으로 가꾸기 위해서는 기업과 연구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특구가 과연 어떤 소통을 해왔는가 반성부터 해야 한다. 당장의 현장밀착형 소통만이 대안이다."

"기술사업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담당하는 조직과 기관이 많이 생겨 기능이 중복되는 경향이 많다. 결국엔 각 기관별 기능이 정리가 되겠지만, 여러 기관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콘트롤타워 역할이 필요하다"

"많은 연구성과가 축적됐고, 꼭 필요한 인재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왜 창업을 위해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올라가느냐? 아이디어와 창업 의지를 가진 이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소통과 현장밀착형 정책, 정량적 성과보다는 생태계 조성, 거시적 정책 조정자!

대덕을 '한국형 실리콘밸리'로 만들기 위한 특구진흥재단의 역할에 대해 출연연 연구원, 벤처기업인, 대학 교수 등 특구 안팎에서 제기된 의견들이다. 결국 특구진흥재단이 현 정부 들어서 강조되고 있는 '창조경제 구현과 이를 통한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 개막'의 견인차가 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가장 선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현장과의 소통'이다. 또 이를 위해 그동안 누적된 소통부족 문제를 극복하고 신뢰회복에 나서야 한다.

A 박사는 "대덕에는 이미 서말의 구슬이 있다"면서 "구슬을 꿰기 위해서는 현장밀착형 사업과 소통·교류 채널을 다양화해야 한다.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심층적인 프로그램과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출연연 기술사업화를 담당하고 있는 B 팀장은 "그동안 특구진흥재단이 기술사업화를 위해 애쓴 것도 사실이다. 일부 성과도 냈다"면서도 "새롭고 획기적인 아이템 구축과 환경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관장 혼자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장기적 포석을 갖고 내외부 구분 없이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장과의 소통'과 관련한 특구진흥재단의 문제점은 이번 취재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며칠에 걸쳐 70여 명의 출연연 관계자들에게 이메일과 전화, 때로는 대면을 통해 특구재단의 향후 방향과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취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대다수 연구원들이 질문을 들은 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간혹 헛웃음을 지었고, 일부는 '이런 질문 자체가 의미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출한 사람은 전체의 10% 미만에 그쳤다.

특구재단과 연구현장 간의 골이 깊다는 반증이다. 더불어 특구재단 출범 후 9년여 동안 누적된 소통부족의 현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대덕 벤처기업을 운영 중인 C 대표는 "산학연 주체들의 교류를 위한 모임을 바탕으로 대덕과 대전시의 연계, 출연연과 기업 연계 등을 주도해야 한다. 그동안 각종 모임에 특구재단 인사들이 참석해 함께 했는지 돌아보라"면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럴 때 잠재적 성장 기업의 젓줄이 돼고 기술 융합을 제공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현장 밀착형 정책'과 이를 통한 '신뢰회복'을 주문했다.

◆정량적 성과주의에서 탈피…거시적 생태계 조성 나서야

'기술사업화'에 있어서는 개별 성과 위주의 정책보다는 생태계 차원의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2006~2012년 세계 이주 발명가의 59.1%가 북미에 집중됐다. 이 기간 아시아를 떠난 발명가가 전체의 41.9%에 달한다. 아시아 유수 인재들이 자발적으로 미국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다. 소위 말하는 '실리콘밸리 파워'다.

특구진흥재단이 '보여주기식' 성과를 위한 전략과 비전에서 탈피, 향후 100년의 한국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자세로 지속가능한 창업생태계를 조성해야 하는 이유다.

한 대학 교수는 "대덕을 놓고 '창조경제 전진기지'란 말을 하지만, 사람들은 창업을 위해 수도권을 찾아가는 것이 현실"이라며 "누구를 막론하고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곳이란 인식이 확산돼야 우수인재들이 몰리고, 남아서 일을 할 수 있다. 이런 환경과 문화는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구진흥재단이 해줘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대전발전연구소 D 연구위원도 "그동안 역할을 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양적 성과에 치중해 사업화를 통한 연구성과 확산에만 치중하지 않았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개발된 결과를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 현장의 기술수요를 반영한 연구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특구진흥재단이 밝힌 주요 기능은 ▲특구 연구개발성과 사업화 ▲창업의 효율적 지원 ▲기술사업화 네트워크 구축과 상호교류(협력) ▲국내·외 투자유치 ▲특구 관련 토지·시설 관리 등이다. 목표는 구체화된 성과 중심이다. 2009년 130개인 매출 100억원 이상 벤처기업을 2015년 250개로 늘리고, 연구소 기업도 19개에서 60개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 등이다.

이런 정량적 성과를 중심으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다보니 특구 구성원들에게 피부로 다가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E 연구원은 "현재의 특구진흥재단은 연구소와 기업 간 가교 역할이라는 본래의 존재 의미를 잊은 것 같다. 보여주기 중심의 기관 성과에만 치중한 모양새"라며 "가교가 되기 위해서는 연구현장과 기업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이들이 느끼는 '손톱 밑 가시'를 뽑아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은은한 암향을 풍기는 매화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B 박사는 "출연연 성과에만 집중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산하 기관과 협력하고 과학기술 전반을 아우르는 지원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가 준비기간이었다면 이제 소통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용해 결과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기다. 과학계 인사가 맡은 만큼 이런 부분에 있어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변화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평가했다.

일부에서는 정주환경 개선의 목소리도 나왔다. 연구개발특구가 혁신클러스터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국내 인재를 넘어 글로벌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역량이 필요한데, 그 기본이 외국인들을 위한 소프트 인프라라는 것이다.

특구진흥재단은 2005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과학기술 분야 중량급 인사가 책임을 맡았다. 그동안 기획재정부 출신 공무원의 전유물이었던 재단 이사장에 대해 과학계는 선임과정부터 "최소한 차관급 과학계 인물가 와야 한다"는 여론을 제시했다.

출연연과 공공기술사업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인물이어야 '대덕을 기술창업의 허브'로, 한국형 실리콘밸리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이 요구는 이뤄졌다. 이제는 대덕의 생태계와 과학기술계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느냐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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