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재즈바 Gaslamp Speakeasy 창문으로 들여다 본 모습.
샌디에이고 재즈바 Gaslamp Speakeasy 창문으로 들여다 본 모습.

얼마 전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다. 미국과 유럽의 대도시는 미술관과 재즈바가 있어서 좋다. 낮에는 미술관, 저녁엔 재즈바. 미술관은 낮에 시간을 내야 하고 하루에 여러 군데 둘러보기는 어려운 반면, 재즈바는 일정에 지장 없이 하루 저녁에도 여러 군데 들를 수 있어서 좋다. 

샌디에이고에 도착한 첫날, 피자로 이른 저녁을 먹고 다운타운 재즈바 탐방에 나섰다. 샌디에이고에서 가장 화려한 밤이 펼쳐지는 다운타운 'Gaslamp Quarter' 거리는 아니나 다를까 연인들로 가득했다. 레스토랑, 바, 클럽마다 입장을 기다리는 젊은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금요일 저녁이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 날이 마침 발렌타인 데이였다. 재즈바 탐방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있을까.

예전 같으면 월간으로 발행하는 로컬 매거진부터 구하려고 했을 것이다. 레코드점이나 길거리의 매점, 아니면 재즈바에서 구할 수 있다. 물론 구하기가 쉽지는 않아서 그걸 발견하게 되면 보물 지도라도 얻은 듯한 기분이 든다.

보물 지도를 구하기만 하면 재즈바 목록과 시간대별 연주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첫날 갈 곳은 찍어야 한다. 마음에 드는 편성의 밴드가 연주하는 곳을 무작정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대개 재즈 트리오 편성이나 하모니카 블루스에 가장 먼저 끌린다.

그 다음은 물어야 한다. 옆 테이블에서 음악을 즐기는 현지인에게 묻기도 하고, 재즈바 직원이나 밴드 연주자에게 묻기도 한다. 그 지역에서 가장 좋아하는 재즈바와 로컬 밴드를 물어 리스트를 받아 낸다. 그렇게 추천 받은 재즈바와 밴드의 연주는 거의 실패하는 법이 없다. 그 목록을 하루에 두세 개 씩 지워나가는 것이 나만의 재즈바 탐방 노하우였다.

그런데 이제는 Yelp에서 검색하면 그만이다.

샌디에이고 재즈바 Gaslamp Speakeasy 내부.
샌디에이고 재즈바 Gaslamp Speakeasy 내부.

Yelp에서 샌디에이고 재즈바를 검색했을 때 가장 상위에 노출되는 'Gaslamp Speakeasy'라는 재즈바에 갔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바였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뉴욕과 시카고에 비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샌디에이고에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러나 드럼, 색소폰, 키보드 편성의 연주는 솔직히 그럭저럭이었다. 몇 곡 신나게 들었지만 금방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두 번째로 찍어 둔 재즈바를 찾아갔다. 주소는 제대로 찾은 것 같은데 간판이 없었다. 레스토랑 옆에 'Law Office'라고 쓰여진 문이 있었지만 도저히 재즈바 입구처럼 보이진 않았다. 문 앞의 노부부가 없었다면 한참 헤맸을 뻔했다.

그 노부부가 말하길 초인종을 누르면 안에서 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노부부가 물었다. "Who told you?" 어떻게 알고 왔냐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간판도 없고 문도 잠겨 있는 이 재즈바 이름이 'Prohibition' 접근금지다.

문을 열자마자 드럼 소리가 지하 계단을 타고 올라와 심장을 두드린다. 지하로 내려가자 좁고 긴 공간이 나타났고 무대가 가운데, 바가 구석에 있었다. 공간 폭이 좁아서 밴드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무대 조명도 따로 없었다. 무대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거의 조명이 없었다. 어디가 무대이고 어디가 객석인지 구분이 없었다. 그저 한 무리는 연주를 하고 한 무리는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고 있었다.

이날 밴드는 키보드, 드럼, 베이스 편성의 블루스 밴드였다. 키보드와 드럼 솔로가 멋졌다. 무대 앞에서 젊은 여자 손님 둘이 웨이브와 막춤을 섞어가며 흥을 돋궜다. 키보디스트가 하모니카도 불었다. 하모니카 블루스는 특유의 흥이 있다. 

블루스 트리오인줄 알았는데 보컬리스트가 무대에 오른다. 우리가 흔히 블루스 가수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전형적인 흑인 여성 보컬리스트였다. 그녀는 육중한 체구만큼이나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했다. 점점 더 많은 관객들이 무대에서 흥을 즐겼다. 관객들의 환호와 흥도 공연의 일부다. 어차피 객석과 무대의 경계도 없다.

내가 시카고에서 가장 좋아하는 재즈바는 'Blue Chicago'라는 곳이다. 두 블록을 사이에 두고 같은 이름의 재즈바가 둘 있다. 두 곳 다 블루스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곳이고, 나로서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없는 블루스 공연을 처음 접했던 곳이다.

Prohibition은 거기에다가 은밀한 파티라는 느낌을 더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다운타운 지하의 금지구역은 샌디에이고에서 가장 멋진 곳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이정원 선임연구원은

이정원 선임연구원은 책과 사람에 쉽게 매료되고, 과학과 예술을 흠모하며, 미술관과 재즈바에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펜탁스 카메라로 순간을 기록하고, 3P바인더에 일상을 남깁니다. 시스템과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습관과 절차 자동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연구원은 이정원의 문화 산책을 통해 자연과 인류가 남긴 모든 종류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정원 연구원은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에서 의용생체공학 석사를 마쳤습니다. 현재 ETRI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KAIST에서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과정을 진행 중입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