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기술장벽 없애자" 위기 확산…인터넷검색만 하면 컴맹화
SW교육봉사단·생활코딩 등 민간 중심 저변 확산

"스티브 잡스와 마크 주크버그가 그들의 머릿속에 담긴 무한한 아이디어를 컴퓨터를 통해 구현해 낼 때 우리는 컴퓨터로 인터넷을 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죠. 프로그램을 코딩하거나 콘트롤할 능력을 키우기는커녕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빨리 변해야 합니다."

대덕의 한 SW 과학자가 국가 IT산업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내뱉은 지적이다. 프로그램 '코딩'이 전 세계적으로 제 2국어가 되어가고 있는 판국에 우리나라는 사실상 컴맹 국가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IT강국 코리아', '인터넷 세계 1등' 이란 구호에 도취돼 세상이 SW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우리 국민들은 코딩 능력을 거의 모르고 살고 있다. 만들고 싶은 것은 많은데 기초적인 프로그래밍을 몰라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컴퓨터를 코드화하는 기본적인 능력을 미국에서는 '코딩', 영국에서는 '디지털 스킬', 우리나라는 SW개발이라 부른다.

코딩은 비단 SW산업에 종사자 등 일부 전문가와 특정인에게만 필요한 능력은 아니다. 학생, 연구원, 의사는 물론 금융업 종사자, 기자, 가정주부들에게도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을 한국어로 이야기하듯 자신의 생각을 컴퓨터로 구현하는 것이 코딩이다.

어린이와 일반인을 위한 코딩 교육 확대는 전세계적, 범국가적 추세다. 영국에서는 수상이 직접 코딩교육을 드라이브하며 5살 어린이들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시작한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게임을 만들어 보라"며 청소년 코딩 교육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연설하기도 했으며, 빌게이츠와 마크 주크버그가 직접 나서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KAIST의 한 교수는 "우리나라는 DJ 정부 때 컴퓨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초등학교에 전산실을 만들었지만 입시위주 교육제도 아래서 수능시험에 나오지 않는 컴퓨터 교육은 사라진지 오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래부와 교육부가 2018년 교육현장에 코딩교육을 정례화 하기 위해서 TFT를 추진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예산과 강사 확보 등 지금부터 준비해도 시행하기 상당히 빠듯하다"고 걱정했다.

◆ 혁신의 중심지 대덕도 '코딩' 눈 앞 캄캄

우리나라 최고의 이공계 대학으로 꼽히는 KAIST의 경우 전산학과 등 일부 전공을 제외하면 학생들을 대상으로 코딩교육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컴퓨터는 전산 뿐만 아니라 기계, 화학, 물리, 생물 등 모든 분야의 연구에 기본 도구로 사용된다. 때문에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과 코딩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교수와 학생들은 연구와 코딩을 별개로 생각한다.  

KAIST 한 교수는 "오래전부터 학교에 코딩 중심의 전산개론을 전교생이 들을 수 있도록 여러 차례 건의 했지만 '그러려면 교양, 물리 등 다른 교과목과의 재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영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대학에서 미적분 배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옛 것만 고수하면 KAIST의 혁신은 갈 길이 멀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대덕의 출연연 현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KISTI의 한 연구원은 "출연연의 많은 연구원들이 자신의 연구에 필요한 SW를 개발해 사용하기도 한다"며 "이를 잘 만들면 자기만 쓰는 게 아니라 남도 쓸 수 있도록 상품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의 경우 연구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SW들을 오픈소스 형태로 운영하며 후배도 쓰게 하고 동료 연구원도 사용하게 해 지속 관리와 발전이 되지만 우리나라는 오픈SW를 만들지 않는 것은 물론 쓰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ETRI에서 근무하는 한 SW개발자는 "과제를 통해 많은 SW를 만들지만 산업·생활 현장에서 정말 잘 사용되는지는 의문이다"며 "연구비를 주면 연구해서 현장으로 갖고 나가도록 방침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SW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수정보완이 필요하지만 출연연은 과제 기간이 지나면 지속적인 관심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실제 산업현장에서 잠깐 활용되다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마이크로소프트만 사용하고 SW 오픈소스를 등한시하는 우리나라의 기형적 문화라고 설명한다.

외국의 경우 오픈소스를 이용한 SW개발은 컴퓨터 발전의 한축을 담당했다.

KAIST의 한 학생은 "오픈소스는 비용이 많이 드는 독점 시스템의 가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SW공개소스를 통해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을 전했다.

◆ 코딩 1주일만 배우면 필요한 앱 직접 만든다…민간 중심으로 코딩 교육확산

지난해 4월 발족한 SW교육봉사단은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SW교육을 진행하고 있다.<사진=SW교육봉사단 제공>
지난해 4월 발족한 SW교육봉사단은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SW교육을 진행하고 있다.<사진=SW교육봉사단 제공>
"학생들은 일주일만 교육하면 개인들이 필요로하는 앱을 직접 만들 수 있어요. MIT에서 2006년 만든 프로그램 언어인 '스크래치(Scratch)'를 이용하면 일반인들도 그림과 음악, 애니메이션 등을 이용해 재미있게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죠."

지난해 봄 사단법인 앱센터를 중심으로 KAIST와 서울대, 사범대학 등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는 교수들이 함께 'SW교육봉사단(swkorea.org)'을 출범, 전국의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코딩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교대부설초를 포함해 용인 성서중, 과천 중앙고에서 방과후 무료교육 형태로 시범교육을 진행해왔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20개교, 내년에는 100여개교로 대상 학교 수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봉사단은 함께 공부하며 '코딩교육'에 대한 커리큘럼을 만들고 강사교육, 강사 연수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코딩교육을 하면 컴퓨터 게임에 더 빠질까봐 걱정하던 학부모들의 우려도 환호로 바뀌었다.

서울대 컴퓨터동아리 '멋쟁이 사자처럼(www.likelion.net)'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모바일 앱이나 웹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기술적 장벽 때문에 본인의 생각을 세상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감동의 순간을 만들겠다는 모토 아래 프로그래밍 '문외한'들을 상대로 기초부터 서비스 제작까지 집중 교육을 한다. 

또 일반인을 위한 개방형 소프트웨어 교육 플랫폼 '생활코딩(opentutorials.org)'은 2011년 1월부터 온라인 강의와 오프라인 교육을 통해 HTML 자바스크립트 리눅스 등 웹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 생활코딩에서 제공하는 동영상을 따라하다보면 일반인들도 쉽게 코딩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다. 

생활코딩 운영자인 '이고잉(@egiong)' 씨는 컴퓨터 공학자 출신이 아닌 국문학과 출신으로 프로그래밍에 대해 좀 더 잘 공부하기 위해 생활코딩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저서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성공 방정식'을 통해 "프로그램은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콘텐츠다. 개발자의 도구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며 "구글 아마존 등이 클라우드 컴퓨팅을 제공하는 오늘날은 프로그래밍을 배우기도 쉽고 써먹을 곳도 많은 시대다. SW 개발자들이 쓰는 도구가 일상화되고 당연하게 여기게 되면 그게 바로 혁신이다"고 강조했다.

김진형 SW정책연구소장은 "코딩 교육이 단순 IT 수단에 그치지 않고, 생각하는 방법과 문제를 푸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며 "정부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많은 움직임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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