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구난에 속수무책…과학의 존재 가치에 근본적 의문
적극적 발신으로 존재감 알리고 해결에도 기여해야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 부표 아래에 세월호가 가라 앉아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 부표 아래에 세월호가 가라 앉아 있다.

재난을 당하면 과학은 무엇을 해야할까요?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며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 나오는 지니처럼 뚝딱 배를 건져내고 위험에 처한 승객들을 구하는 장면을 기대한다면?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배는 해저에 잠겼고, 그동안 개발된 로봇들은 별 효과가 없고, 수습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해야했습니다.

최근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사고 현장을 가보았습니다. 유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 체육관과 구난과 관련해 가장 빠르게 소식이 뭍으로 전해지는 팽목항을 갔습니다. KIOST(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조사선을 타고 사고 해역에도 가 구조현장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갖게 된 느낌은 아쉽게도 과학의 초능력이 아니라 '무기력'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반은 사회에 있고 반은 과학계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회에 있다는 것은 과학이 갖고 있는 유용성과 역량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몰라서'인듯 합니다. 그동안의 투자를 기반으로 우리 과학계가 갖고 있는 실력이나 장비 등은 어느덧 세계적 수준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첨단으로만 인식하고 있고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부분은 거리가 있게 느껴져서인지 사용할 생각을 못합니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서도 KIOST에서는 해저의 지형과 조류의 속도 및 방향 등을 손바닥 보듯 쉽게 알 수 있는 장치가 있었음에도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중기 이후에나 참고 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고 대책반에 주로 현장의 재난 구호 유경험자들과 관료들이 의사결정을 하고 과학자들은 없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이에 대해 과학계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과학은 그동안 첨단 연구에 치중해 왔습니다. 재난 등은 가끔 일어나는 것이고, 논문 등에 그닥 쓸모가 없으니 중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자연 과학자들끼리는 어울렸으나 사회와의 대화에는 미숙했습니다.

이번에도 과학계가 갖고 있는 자원으로 구난에 동참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해결에 참가하기 보다는 대책본부로부터 지원 요청이 오면 움직이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세월호 침몰 현장에 투입된 한국해양연구소 무인로봇 '크랩스터'.
세월호 침몰 현장에 투입된 한국해양연구소 무인로봇 '크랩스터'.

그나마 KIOST가 사고 수역에 조사선을 급파해 해류와 해저 지형 등을 파악해 대책본부에 자료를 지원한 것이 유일하지 않나 여겨집니다. 그도 좀 아쉬움은 남습니다. 해저 지형 조사에서 세월호가 변침을 한 초기 지역은 샅샅이 훑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좀 떨어진 배가 침몰한 지역은 접근이 허가 되지 않은 이유로 자세한 자료를 못 얻었습니다. 그나마 크랩스터가 해저에 들어가 침몰 선박의 3D 스캐닝 자료를 얻은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입니다.

KIOST 소속 연구원들은 기존에 하던 연구를 뒤로 미루고, 세월호 구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해류의 움직임은 살아있는 것이어서 정조시간만 해도 발표 자료와 해당 지역의 상황은 다르기에 정확한 조사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KIOST가 현장에서 취합한 자료가 잠수부들이 배에 진입할 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가 된다는 것이죠.

초기부터 대책 본부에 적극적으로 자료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활용됐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자료의 유용성이 입증됨에 따라 보다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세월호 사고는 사회 모든 부분에 걸쳐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했다고 봅니다. 특히 과학계 입장에서 '과학은 왜 존재하는가'하는 근본적인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과학은 인간을 위해 존재합니다. 세금을 내 연구비를 지원하는 국민을 위해 존재합니다.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이유는 학문적 성과를 올리고, 연구하는 재미도 느끼며, 인류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기여하기 위함이지만 그 출발은 바로 옆에 있는 국민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과학이란 도구를 활용해 도움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과학계는 아직 세월호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 그룹을 과학계 차원에서 구성하지도 않았고, 구난에 전문적 식견을 조언할 과학 자문단은 거론되지도 않고 있으며, 과학계가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한 내부 의견 청취 등도 없습니다.

재난과 관련해 일본 과학계의 반성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듯 합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 폭발을 겪은 뒤 1년여 뒤에 제출된 보고서에서 일본 과학계는 통렬하게 반성합니다.

"연구가 첨단에만 치중됐고, 정작 국민의 안전은 안중에 없었다."

"논문 쓰는데 신경 썼지 안전과 관련한 연구는 소홀했다."

"전문가 집단은 있지만 사회와의 공유 노력은 부족했고, 과학자들끼리 어울렸지 소방과 경찰 등 재난 전문가들과의 교류는 없었다."

"정부의 의사 결정에 있어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조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 사건을 인문학적 시점에서 바라 봐야 한다."

우리에게도 뼈 아픈 지적들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세월호 사고는 지금의 기성세대들에게 큰 숙제를 남겨주었습니다.

인재(人災)의 악순환이 세월호로 끊어져야 합니다. 이전에 일어났던 인재와 확연히 구별되는 것의 하나가 희생자입니다. 과거에는 어찌되었던 성인들이 주된 피해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 희생자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청소년입니다. 다음 세대를 이어갈 청소년들이 안전하지 못한 사회는 지속가능성이 없고, 존재 가치도 없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제기된 모든 문제를 파헤치고, 재발을 막는 근본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기반에서부터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국가가 존재의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는 인식하에 과학이 객관적 데이터와 자료를 갖고 합리적 판단을 하는데 일조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이 필요하면 현장도 가보고, 자문 그룹을 자체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면서 피해자들의 심정도 느껴보고, 과학의 존재 가치에 대해 근본적 의문도 제기해 보기도 하고, 사회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자문(自問)도 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위험도도 높아집니다. 단적인 예로 1993년 서해 앞바다에서 침몰한 서해 페리호는 110톤급이었고, 부안 연안을 다니던 소형 어선이었습니다. 이번 세월호는 6000톤급이고, 인천-제주 근해를 다니는 대형 선박이었습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니 배의 규모도, 항해 거리도 늘어나며 그만큼 한 번 사고가 일어나면 대형이 되는 것입니다.

위험 사회가 되는 만큼 안전 등 기본에 대한 준수는 더욱 필요합니다.

서울대 황농문 교수는 말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안전 의식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실감했다. 그곳에서는 화재 비상벨이 울리면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 사무실에서 나와 밖으로 대피했다. 소방차가 출동하고 조사한 다음에 전기 고장으로 인한 오작동으로 밝혀져도 불평 없이 다시 업무에 임했다. 우리는 고장 혹은 장난임을 알고 움직이지 않는데, 그 차이가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도, 거꾸로 위험한 나라를 만들기도 하는 듯 하다."

안전이란 화두는 앞으로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화두가 될 전망이고, 그렇게 돼야 한다고 봅니다. 과학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존재 가치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과학계가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진전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나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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