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시스템공학전공 교수·학생 자체 '사고대책위원회' 구성
침몰·인양 등 각종 모의실험 수행…대책·아이디어도 수집중

KAIST 해양시스템공학과 정현 교수가 '사고대책위원회' 게시판에 교수와 학생들이 적어놓은 장·단기 대책과 각종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있다.
KAIST 해양시스템공학과 정현 교수가 '사고대책위원회' 게시판에 교수와 학생들이 적어놓은 장·단기 대책과 각종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22일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KAIST(한국과학기술원·총장 강성모) 교수와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세월호 사고대책위원회'를 꾸려 각종 과학적 실험을 수행해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대형수조와 모형 배를 통해 세월호 침몰 과정에 대한 모의실험을 이미 진행한데 이어 앞으로의 인양작업에 대비한 모의실험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세월호 사고 원인과 수습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7일 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학과장 한순흥)에 따르면 이 학과는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OSE(Oceon Systems Engineering) 세월호 사고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체적으로 사고 원인과 수습 대책 등에 대한 과학적 분석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해양시스템공학전공은 학과 사무실이 있는 유레카관 건물 1층 로비에 사고대책위를 마련, 교수와 학생들이 직접 이번 사고원인에 대한 의견과 장·단기 대책, 기술적·정책적 아이디어를 모으는 중이다.      

사고대책위는 한순흥 학과장의 제안으로 구성됐다. 현재 진행중인 실종자 수색과 시신 수습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관련 분야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과 차원에서 '과학적·공학적으로 무엇이든 해보자'는 취지다. 

교수와 학생들은 사고대책위에 마련된 게시판에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개진하고 이에 대한 토의와 각종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 당장은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사고 원인 분석이나 재발방지 대책 마련, 관련 기술 연구개발 등을 위한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서다. 

KAIST 해양시스템공학과가 제작한 세월호 침몰 시뮬레이션 영상 캡처 화면. <자료=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 제공>
KAIST 해양시스템공학과가 제작한 세월호 침몰 시뮬레이션 영상 캡처 화면. <자료=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 제공>
사고대책위 실무를 맡고 있는 정현 해양시스템공학전공 교수는 "지금은 언론 등을 통해 나오는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확실한 데이터가 나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며 "하지만 교수와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의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과정을 밟으면서 이러한 국가적 재난에 대비해 공학도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고민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세월호 침몰 모의실험.

실험실에 마련되어 있는 대형수조와 모형 배를 이용해 현재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세월호의 조건과 최대한 비슷하게 환경을 만들어 프로그램을 통한 시물레이션에 이어 직접 모의실험을 수행했다.

사고 원인은 지금까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도출된 결론과 유사하다. 다만 실험 결과에서는 허술한 화물 결박(고박)이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과적이나 증축공사로 인한 무게중심 상향, 급격한 선회(변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고박만 잘 되어 있어도 운행중인 배가 갑자기 옆으로 넘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모의실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실제 모의실험에서도 고박이 풀리는 순간 배는 그대로 옆으로 기운 뒤 침몰했다. 교수와 학생들은 이같은 모의실험 과정을 모두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지금은 세월호 인양의 모의실험을 준비중이다. 해양시스템공학전공 사고대책위는 일각에서 제시하고 있는 크레인을 통한 인양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크레인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침몰된 세월호의 무게가 최대 3만t에 달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가라앉은 세월호의 무게는 8000~1만t 정도이고, 이럴 경우 '플로팅 도크(Floating douk)'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게 해양시스템공학과 사고대책위의 분석이다. 플로팅 도크 방식은 체인을 걸어 크레인으로 끌어올리는 것 보다 배를 인양하는 기간이 훨씬 짧고 안정적이다. 

한순흥 학과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의 선박 내 화물과 물 등을 합치면 무게가 8000t에서 1만t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플로팅 도크 방식은 해외에서도 선박을 인양하는데 쓰이는 만큼 가장 적합한 대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교수와 학생들은 앞으로 선박 침몰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개진하고 있다. 유레카관 로비 사고대책위에 마련된 게시판에는 각종 메모가 빼곡하다. 학과에서는 이렇게 취합된 아이디어를 종합해 데이터베이스(DB)화 하고 있다.

한 학생은 선박사고가 발생할 때 신속하게 공기주머니를 터뜨려 부력과 평형을 유지할 수 있는 '급속팽창 공기주머니(lift back)'를 선박설계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 다른 학생은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수중 시계(視界)가 구조·수색작업의 관건인 만큼 수중에서 시야 확보를 위한 'Acoustic camera'나 'Acoustic vision 헬멧'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선체 인양 방법은 물론 대형 해양사고 방지를 위한 다양한 정책적 아이디어도 제시됐다.

정현 교수는 "모든 국민들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사고의 원인과 수습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며 "교수와 학생들은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사고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관련 모의실험이나 데이터 분석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소조기인 10일까지 1차 수색을 마무리한 64개 격실 가운데 일부를 다시 수색하고 화장실, 매점 등 공용공간 47곳도 수색하기로 했다. 7일 오후 5시 현재 잠정 확인된 인원은 탑승자 476명, 생존자 172명, 사망자 269명, 실종자 35명이다.  

KAIST 유레카관에 마련된 해양시스템공학과 세월호 사고대책위원회 전경(왼쪽)과 학생들이 제안한 각종 아이디어.
KAIST 유레카관에 마련된 해양시스템공학과 세월호 사고대책위원회 전경(왼쪽)과 학생들이 제안한 각종 아이디어.

세월호 침몰 모의실험 동영상 캡처 화면. <자료-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 제공>
세월호 침몰 모의실험 동영상 캡처 화면. <자료-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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