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사이언스코리아 2부-②민간연 성공배경]R&D현장감과 리더의 뚝심 지원
LG·삼성·SK 등 민간연 연구 집중으로 대박 성과

LG화학에서 개발한 리튬이온 배터리. <사진=LG화학 제공>
LG화학에서 개발한 리튬이온 배터리. <사진=LG화학 제공>

대면적 터치 스크린, 스마트폰, 리튬 배터리, 케이블 전지, ATA 촉매 기술 등.

국내 기업들이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기술과 제품들이다. 추격형 기술개발국이었던 우리나라가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당당히 세계의 기술 흐름을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과학기술 발전이 있기까지 정부출연기관의 역할도 컸지만 삼성과 LG, SK 등 기업들이 연구소(이하 민간연)를 설립하고 미래 먹거리 개발에 집중하면서 연구개발 속도와 수준이 빠르게 향상됐다.

지금은 지구촌 곳곳에서 삼성과 LG, SK를 모르는 소비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30여 년전만해도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의 기업인 GE, 소니, 도시바와 비교하면 세계 시장에서 국내기업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유명 전시회나 해외 대형 매장에서 국내 제품은 의례껏 전시대가 아닌 바닥에 방치되며 천덕꾸러기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게 다반사였다. 심지어는 유명 제품에 끼워파는 덤핑상품 취급을 받았다. 물론 지금은 외국 유명제품을 대부분 제치고 소비자가 선호하는 제품으로 손꼽힌다.

전기자동차가 미래의 자동차로 급부상하면서 리튬 배터리 시장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최근 제너럴모터스가(GM)가 자사의 쉐보레 스파크 전기차의 배터리를 중국 제품에서 우리나라의 LG 리튬배터리로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리튬 배터리 기술 선도국은 일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는다.

일본과 독일 등 선진국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을 베끼며 추격형 기술개발을 해오던 국내 대기업들이 짧은 시간안에 퍼스트 무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어떤 비결과 역할이 있었던 것일까.

각 대기업 관계자들은 리더의 지지와 지원, 연구원들의 열정, 집중할 수 있는 연구환경을 꼽는다. 물론 기업의 연구 결과는 회사의 사활과 직결되므로 성공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출연연에 비해 더  큰것이 사실이다. 연구원들이 더 집중 할수 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유진녕 LG화학기술연구원 원장은 "LG의 배터리 사업은 리더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진작 접었을 것이다. 구본무 회장이 10년 이상 신뢰해 주며 지원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연구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열정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도 큰 역할을 했다. 원장의 임기가 보통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한 방향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기술 개발 성공 비결을 들었다.

◆SK이노베이션, 현장감 갖춘 연구원 열정이 만들어낸 일등 성과

ATA 촉매와 YUBASE 윤활기유, 리튬전지용 분리막 기술. SK가 세계시장에서 1위의 지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기술이다.

이같은 성과 뒤에는 연구원들의 열정도 중요하지만 현장감 있는 연구분위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연구소에만 있고 현장에 가지 않는 것에 비해 SK는 현장에 기반을 둔 연구개발을 중요시 한다. 연구인력의 현장중심 연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ATA 촉매는 석유에서 다양한 탄소수를 빼면 천연가스 등 목적에 맞게 분류가 가능한데 그중 가장 활용도가 높은 물질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우리나라는 1995년 이 물질을 만드는 유베이스(YUBASE 윤활기유)공정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그에 사용되는 촉매는 개발하지 못했다. 당연히 가격이 비싼 일본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했다.

촉매 기술은 현장을 보지 않고는 알수 없었지만 외국에서도 전혀 기술을 공개하지 않았다. 외국 연구진은 설비가 고장나면 한국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수리를 하는 상황이었다. 국내 연구진은 절대 현장을 알수 없었던 것.

지금은 고인이 된 최종현 회장이 젊은 연구진들에게 어떻게해서라도 현장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고 결국 성공했다. 그러나 연구 기반이 없어 촉매 개발은 계속 실패했다. 반복되는 실패로 모두들 촉매 개발을 포기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담당 연구원이 1000번이 넘는 실패끝에 마침내 개발에 성공한다. 이후 연구는 급물살을 이뤘다. 다른 성과까지 이어졌다.

ATA촉매공정은 1995년 유베이스 윤활기유 공정개발이후 2012년 촉매까지 개발하면서 세계 최고의 촉매공정으로 우뚝서게 된다. SK관계자에 의하면 현재 세계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리튬전지용분리막(LiBS)은 2005년 개발에 성공하면서 전지분야 강국인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SK는 그해 제1공장을 설립해 생산에 들어간 이후 지난해에는 9공장까지 건립해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관계자는 "기업은 최고 기술이 아니면 성장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기술도 이미 선진국 수준에 와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절대 기술을 공개하지 않는다. 이제 열심히 하면서 가야 할 길을 전략적으로 봐야한다"면서 "기술을 개발하고도 사업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단계마다 계속 체크하면서 가고 있다"며 민간연의 성격에 대해 설명했다.

◆LG의 성과는 리더의 뚝심 있는 지원과 내부 오픈이노베이션

국내 경제성장 초반기에는 기업 대부분 정부출연기관의 연구성과에 의존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글로벌 시장 환경과 생태계 속에서 기업의 사활은 미래 먹거리 개발에 달려있다는데 공감하면서 기업들은 자체 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대규모의 연구비가 투입됐다. 무엇보다 기업의 미래 먹거리 개발에 핵심인력들이 배치되고 리더는 깊은 신뢰로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LG는 리더의 뚝심있는 신뢰와 지지 면에서 으뜸으로 꼽힌다. 모두가 할 수 없다는 리튬 배터리 기술을 성공으로 이끌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LG가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리튬배터리 기술은 원래 일본이 선두주자였다. 1960년대 일본에서 기술이 제안되고 소니가 개발에 성공했다. LG는 구본무 회장이 1992년 유럽 출장을 다녀오면서 리튬배터리 연구가 시작됐다. 일본에 비해 30년이나 늦게 시작된 연구였던 셈이다.

1998년 LG는 처음으로 소형전지 양산에 성공한다. 그러나 일본 기술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임원진에서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반대했다. 기술기반도 없는 상황에서 30년동안 연구해온 일본을 어떻게 따라 잡을 수 있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설상가상 양산에 성공한 노트북용 전지가 애플로부터 리콜조치를 받으면서 회사의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지고 적자 금액은 2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미래 먹거리라는 확실한 확신을 가진 구본무 회장이 임원들을 설득하고 연구원들을 격려하며 소형에서 중대형 전지로 연구분야도 확대했다.

이성만 LG화학기술연구원 수석 부장은 "내부에서도 임원진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2009년 미국 GM사로부터 전기자동차용 리튬전지 공급을 요청받으면서 리더의 장담이 현실화 됐고 지금은 세계 최고 기술로 인정을 받게 됐다"며 리더의 의지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플렉시블 배터리 기술도 빠르게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그중 지난해 LG에서 개발한 플렉시블 배터리가 성능면에서 최고로 인정받는다. 이 기술이 개발되기 까지도 LG화학기술연구원 유진녕 원장의 의지와 지지가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특히 유 원장의 재임 기간이 10년을 맞으면서 일관성 있는 지원으로 연구결과들이 속속 상용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LG 연구원 수장의 임기는 보통 10년 이상이다. 초대 원장의 임기는 14년, 2대 10년, 3대인 유 원장은 2005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0년 째다.

이 부장은 "원장님이 오래 계시면서 연구원 전체를 파악하고 같은 문화를 만들어 간다. 특히 내부 혁신 프로그램 정착으로 2800여명의 연구원들 간 혁신과 소통을 통해 성과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하며 "현재 플렉시블 배터리를 양산하기 위한 설비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개최된 국제정보디스플레이전시회에 출품된 삼성의 디스플레이 제품들. <사진=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지난해 개최된 국제정보디스플레이전시회에 출품된 삼성의 디스플레이 제품들. <사진=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삼성, 리더의 강력한 의지와 토론으로 마인드 변화

삼성이 세계 1등 기업으로 성장 할 수 있었던 데는 삼성만의 토론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 1993년 6월에 발표된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지금까지 삼성의 대표 기업문화로 회자된다. 또한 리더 역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당시 삼성에 근무했던 손욱 교수에 의하면 1993년 2월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삼성 임원들이 LA의 전자시장 상가를 돌아본 일이 있었다. 상가내에서 가장 좋은 위치의 전시대에는 소니, 도시바 등 일본 제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삼성의 제품은 전시대에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삼성 제품이 전시된 곳은 한물간 미국제품 옆 바닥이었다. 그것도 전시라기보다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방치되듯 놓여 있었다. 어떤 상가에서는 덤으로 끼워 파는 경품 취급을 받기도 했다.

급하게 따라잡은 패스트팔로우(Fast Follow)적 기술개발로 삼성의 제품은 외견상으로는 선진국 제품과 비슷해 보였지만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제품에 비하면 디테일면에서 터무니 없이 부족했던 것. 소비자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손욱 교수는 "임원이나 직원 모두 제품의 질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금형이 잘못돼 제품이 맞지 않으면 새로 제작하기보다 있는 것을 끼워 맞추려는게 당시 제품의 질에 대한 인식이었다"면서 삼성의 마인드 변화와 이노베이션 과정을 설명했다.

일본을 다녀온 이건희 회장의 대대적인 소집과 혁신이 시작됐다. 일명 '자식과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는이 회장의 한마디는 지금도 삼성의 혁신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말로 회자된다.

이건희 회장은 전자 관련 임원 모두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집합시켰다. 그리고 벤츠와 폭스바겐 등 최고의 자동차 조립현장, 에어버스를 조립하는 파리공항 현장을 둘러보게 하고 저녁마다 리뷰하며 토론을 했다.

손욱 교수는 "토론이 시작되면 끝이 날 줄을 몰랐다. 새벽 4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자식과 마누라 빼고 다 바꾸는 삼성의 혁신이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삼성그룹 임원들은 유럽에 이어 일본까지 68일간의 일정을 통해 지금의 삼성마인드로 완성하는데 성공한다. 마인드가 바뀌면서 제품의 질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고 이는 곧장 내부 직원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그 결과 20년만에 삼성은 스마트 기기 제품 분야에서 세계 1등 고지를 점령하게 됐다.

삼성 관계자는 "여러가지 제도도 있지만 제도로 연구환경을 바꾸기 보다는 궁극의 목표와 사명의식이 중요하다. 민간 기업에서는 기술에서 밀리면 곧장 도태된다"면서 "연구원 모두 글로벌 시장을 선도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에 임하고 있다"고 사명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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