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는 독일에 있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뒤집어진 배처럼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가치관도 전도된 듯하다. 과학자로서 인생을 살아왔지만 첨단 과학과 기술이 인명 구조나 수색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괴감마저 든다.

과학자는 누구인가? 아니 과학자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다.

근대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살던 시대는 기독교가 전 유럽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당시 기독교적 세계관은 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갈릴레오의 지동설은 기득권 세력에게 큰 도전이었고, 그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는 재판정에서 지동설을 부인하여 형벌을 면했지만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갈릴레오는 관측과 자료를 통해서 자연의 진리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공개하는 것이 죄가 되던 시대에 살았던 것이다. 과학자로서 갈릴레오와 같은 입장에 처해졌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진리를 공개함으로써 사람들의 무지를 깨우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형벌을 받겠는가? 아니면, 진리는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므로 갈릴레오처럼 행동하고 형벌을 피하겠는가?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나도 갈릴레오와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이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가?

들추고 싶지 않지만, 지난 정부 초기에 벌어졌던 '광우병 논란'을 반추해본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유언비어가 확산되면서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전국을 휩쓸었었다. 이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이른바 전문가들이 일조했었다.

의학 또는 수의학을 전공한 한편의 전문가들은 광우병의 위험성을 강조한 반면 다른 편에서는 크게 문제될 것 없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의 서로 상반된 의견에 국민들은 당황했고, 결국에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불신하기에 이르렀다.

수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활약했던 전문가 중 누구도 이 논란의 핵심이 되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다 (내가 아는 한). 그 분야의 비전문가인 나는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광우병 자체는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피할 방법 (척추뼈 등을 제거함으로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병에 걸릴 확률은 대폭 낮아져 건강과 생명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치 복어독을 제거하고 복어를 먹는 것처럼.

그 당시 광우병의 위험성을 침소봉대했던 전문가들은 이런 사실을 정말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다른 의도가 있어서 거짓말을 했던 것일까?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 (1386년 착공).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 (1386년 착공).

만약 잘못 알고 있었다면 그 당시의 잘못된 주장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전문가로서 전문성을 지키는 방법이다. 그런데 만약 다른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을 했다면 이는 결코 바른 태도가 아니다. 전문가는 그 전문성에서 권위가 나온다. 거짓말로 인해 신뢰가 깨지고 권위가 실추되면 국민들은 더 이상 전문가를 믿지 않는다.

자연과학자는 자연과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또 이를 이용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과학자는 갈릴레오 시대와는 달리 전문가로서 사회적 책무도 수행해야 한다. 즉 국민에게 연구내용을 널리 소개하고 이해시키는 역할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하기 때문이다.

국민을 상대로 하는 이 역할에서 잘못된 정보나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사람들을 잘못된 곳으로 인도하는 지도자와 같다. 전문가에게도 지도자의 리더십 같은 '전문가 의식'이 필요하다.

전문가 의식의 하나로 제일 먼저 '과학자적 양심'을 꼽고 싶다. '과학자적 양심'은 법률이나 도덕보다도 상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리를 쫓고 진실을 추구하는 과학자에게 '정직'은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사고력'은 과학자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며 연구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합리성은 자기의 욕심을 내려놓고 감정을 지배할 때, 즉 '이성'이 작용할 때 나타난다.

합리적이란 것은 객관적 사실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 사회에서는 때로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것에 맞도록 자료를 끼워 맞춘다. 목표달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욕심이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불합리할 뿐 아니라 때로는 범죄행위로 이어진다. 과학자적 양심을 저버리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사례를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이제 합리적인 과학자들이 앞장서서 광우병 사태로 실추된 전문가의 위상과 권위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리고 세월호 사고에서 드러난 무능함을 떨쳐내고 문제 해결사로서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과학과 기술은 현대 문명의 형성에서 수단과 도구의 역할을 해왔다. 그런 수단과 도구가 제대로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사고체계 (일명, 합리주의 또는 과학주의)를 구성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손발의 역할에서 머리(두뇌)의 역할로 확장해 가야 한다.

세월호 사고는 단순히 여객선이 전복된 사고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비이성 불합리'라는 토양에서 자라난 하나의 독초다. 독초가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사회를 합리적 사고체계로 보호해야 한다. 그 역할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과학자다. 그렇게 하여 더 이상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자조하지 않게 되길 바란다.

◆이호성 KIST 유럽연구소장

이호성 KIST 유럽연구소장.
이호성 KIST 유럽연구소장.
대한민국 4.0시대를 여는 시기로 성숙된 의식과 시스템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이에 이호성 KIST 유럽연구소장은 독일의 과학기술과 그 발전의 바탕이 되는 사회·문화적인 환경에 대해 생생하게 전달해 줄 것입니다.

이 소장은 독일에서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편지나 일기 형식으로 쓸 예정입니다. 이호성 소장은 KAIST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바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근무를 시작, 17년 동안 시간·주파수 표준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광펌핑 세슘원자시계를 개발해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2003년 이후에는 표준연의 주요보직을 맡아서 후배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연구재단에서 나노·융합단장으로 2년간 근무한 바 있습니다. 2012년 9월 KIST유럽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해 한국과 유럽연합을 잇는 가교역할을 위한 국제협력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1309-1377년 사용).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1309-1377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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