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전공이 별도로 없는 정규대학이 있다. 학년도 없다. 모든 학생들은 방과후에 태권도를 연마한다. 뿐만 아니라 악기도 하나씩 연주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기존 대학교육방식을 혁신함으로써 학생들을 융합과학기술자로 교육시키기 위함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대만족이다. 학부모가 학교당국자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 한다. 애가 입학한 후 여러 달이 지나도록 집에 다녀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국의 대학 이야기가 아니다. 대구광역시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는 김천구미 KTX역에서 한 시간 가량 고속도로를 질주해야 도착하는 곳, 현풍에 세워진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의 교육현장 다큐다.

신성철 총장이 '세계초일류 융복합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는 이곳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대담한 실험이 실시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에서 지난 연말 정년을 마친 후 융합연구를 위해 이곳에 초치된 지 두 달이 되는 시점에서 나는 제대로 익어가는 밥솥의 이른 내음을 감지한다.

융합과학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당위성에 핏대를 세우기보다는 이제는 실천에 옮기는 경쟁을 해 볼 때이다. 같은 연구소에 근무하면서도 서로 상대방이 무엇을 전공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10년 이상을 보낸다면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구소 담을 넘는 과감한 교류와 협력을 저질러(?) 보아야 할 때다.  

일전에 나는 외국학회에서 다소 엉뚱하고 생소한 기기를 이용한 연구발표를 접하고 귀국 후 국내에서는 누가 그 기기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기기 당사자를 연구소에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하고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협력연구를 제안하였다. 그가 협력연구를 승락해 연구원들과 시료를 가지고 그의 실험실에 찾아가서 해당 기기를 이용해 반나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논문작성은 자신의 전공과 연계되는 부분을 나누어 작성해 쉽게 완성할 수 있었으며 제일저자와 교신저자를 양 연구팀이 서로 공유하기로 했다.  투고된 원고는 에디터의 특별코멘트와 함께  수준급의 저널에 게재되었다.  반나절 걸린 실험의 대가는 일 년이 걸린 것만큼이나 크고 달콤하였다. 서로 다른 전공이 협력하였을 때 얻을 수 있는 기대이상의 시너지라고 할 수 있다.

대덕연구단지는 우리나라 융합연구의 본산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실상 도도한 새로운 물결의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물론 개별 출연연구원은 나름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융합기술연구소를 산하에 세워 유헬스케어 등 IT와 BT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으며, 한국기계연구원은 나노융합기계연구본부를 두고 NT와 BT의 융합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바이오융복합연구소를 설치해 BT, IT, NT의 융합을 촉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융합연구가 충분히 확산되지 못하는 것은 거시적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대덕연구단지에서 KAIST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전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기도 하다. KAIST는 전출연연구소를 대상으로 융합연구를 선도할 수 있으며 또한 선도해야 할 책무가 있다.  KAIST의 전신인 KAIS(한국과학원) 역시 창립 당시에는 오늘의 DGIST 만큼이나 혁신적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외부에 비쳐지고 있다.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또한 융합연구를 명분으로 설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융합연구에 보다 더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UST가 차라리 KAIST의 단과대학으로서의 융합대학으로 흡수되어 대덕연구단지의 융합연구를 선도하도록 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 볼만하다. 출연연구소 이사회와 KAIST 이사회를 통합함으로써 융합연구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융합연구를 적극적으로 확산시키는 또 다른 방법은 연구재단의 연구비 절반을 융합연구에 할애하는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무늬만 융합인 연구과제가 상당히 있을 수 있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진정한 융합연구과제를 발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연구재단은 우리나라 융합연구의 조타수 역할을 할 수 있다. 

누가 말하였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  다만 새로운 조합과 융합이 있을 뿐이다'라고. 창조경제를 위해 창조를 하려고 들면 어렵다. 그러나 조합을 하고 융합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쉬워지고 창의적이 될 수 있다. 현풍(玄風)을 끌어안고 있는 비슬산(琵瑟山) 자락의 아침안개가 DGIST 캠퍼스를 낮게 드리우는 아침, 이곳에 비파(琵)와 거문고(瑟)가 어우러지는 그윽한 풍취(玄風)로 융합교육이 실천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장렬 박사는

유장렬 박사
유장렬 박사
융합과학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접목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유장렬 박사는 서로 별개라고 여겨지는 다양한 분야가 모여 합목적인 새로운 성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장렬의 융합과학 첫걸음'을 통해 연구자들의 고민을 파헤쳐보고 실현가능한 방법을 함께 모색해 볼 예정입니다.

유장렬 박사는 서울대 식물학 학사, 캘리포니아주립대 생물학 석사을 거쳐 미시간주립대에서 농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85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한국식물생명공학회 회장, 한국생물정보시스템생물학회장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SCI 등 주요학술지에 128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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