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이도스刊)'
'만다라'로 명명한 작은 숲속의 생명·자연현상 관찰기

숲은 작은 지구이자 우주다. 저자는 1㎥의 숲을 '만다라'라 부르고 그 작은 숲속에 벌어지는 자연생명의 일들을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사진=책 표지 중에서>
숲은 작은 지구이자 우주다. 저자는 1㎥의 숲을 '만다라'라 부르고 그 작은 숲속에 벌어지는 자연생명의 일들을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사진=책 표지 중에서>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고 했던가. 문학평론가 도정일 경희대 교수는 동명(同名)의 저서에서 묻는다. "산성비와 산성눈이 내리는 시대의 독자가 그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예전처럼 행복하게, 딸꾹질 한 번 하지 않고, 이를테면 프로스트의 시 '눈 오는 밤 숲에 머물어'를 읽으며 즐거워할 수 있을까?"

시인은 비와 눈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계절의 순환을 노래한다. 하지만 오염 때문에 비와 눈을 마음놓고 즐길 수 없다. 도시의 삶은 계절의 변화에 갈수록 둔감해진다.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는 이런 현실에 대한 저자의 자조이자 한탄이다. 시와 현실의 거리, 시인과 도시민의 괴리. 그래서 "눈 내리는 숲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산성눈 내리는 지금 이 세계의 어느 숲이 아름다울 것이며, 누가 그 숲에 취해 발길을 멈추겠는가?"

시인은, 그리고 도시민은 숲으로 가지 못하지만 숲은 여전이 그곳에 있다. 생명을 키우고 생명과 호흡하며 하나의 생명이 된다. 숲과 생명, 지구와 우주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숲 전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것에서 우주를 탐구하는 것은 동서양과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주제였다. 블레이크는 시 '순수의 예언'에서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다. "한 톨의 흙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리라."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하지만' 과학자는 숲으로 갔다

숲을 관찰하고 있는 저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사진=책 본문 중에서>
숲을 관찰하고 있는 저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사진=책 본문 중에서>
미국 테네시주 남동부에 경사진 숲이 있다. 숲이 보전된 것은 가파르고 험준한 지형 덕분이다. 여기서 100m쯤 올라가면 높은 사암 절벽이 있다. 저자는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숲의 한 지점에 지름 1m의 둥근 원을 그렸다. 그 원은 불교의 '만다라'와 같다(실제 저자는 책에서 이 곳을 만다라라고 부른다). 지름 1m. 면적은 1㎡에 불과하지만 만다라는 하나의 우주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이곳에 머물며, 명멸하는 생명과 자연을 관찰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일기이자 1㎡ 크기의 소우주에 대한 과학적 관찰기다.

만다라 관찰 규칙은 이렇다. 자주 이곳을 찾아 한 해 동안의 순환을 지켜본다. 소란 피우지 않는다. 아무것도 죽이지 않고 어떤 생물도 옮기지 않는다. 이따금 사려깊은 손길은 괜찮겠지만 파헤치거나 그 위에 엎드리지 않는다. 세부적인 방문 일정을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수시로 이 곳을 찾는다.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하지만, 생태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숲으로 들어갔다. 결국 블레이크가 노래한 것처럼 저자는 '한 톨의 흙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리라' 결심한 것이다. 

관찰 결과 숲은 소우주인 동시에 작은 지구다. 연합과 융합. 숲속 만다라의 '주민'들은 상생하는 제휴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협력이 숲 속의 유일한 관계는 아니다. 약탈과 착취도 벌어진다. 지의류 껍질로 감싼 바위 안쪽에서 낙엽 위에 꼬인 채 누워있는 연가시는 이 고통스러운 연합을 상기시킨다.

연가시의 작은 애벌레는 귀뚜라미(혹은 작은 곤충)의 먹이가 된다. 귀뚜라미 몸 속에 들어간 녀석은 뾰족한 머리를 이용해 소화관 벽을 뚫고 들어가 터를 잡고 성장을 시작한다. 더 자랄 수 없게 되면 귀뚜라미의 뇌를 조종하는 화학물질을 분비해 귀뚜라미가 웅덩이나 개울을 찾아가 스스로 몸을 던저 익사한다. 물에 닿자마자 연가시는 귀뚜라미의 체벽을 찍고 자유의 몸이 된다(이런 연가시를 소재로 국내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연가시를 지켜본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연가시가 숙주와 맺는 관계는 전적으로 약탈적이다. 희생자는 고통을 겪을 뿐 숨겨진 유익이나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한다. 하지만 기생충 연가시조차 몸속에 미토콘드리아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약탈의 원동력은 협력이다."

그리고 이끼도 본다. 누구의 눈길도 끌지 않지만 이끼는 숲속 생명의 근원이다. 또 숲은 지구의 영양 공급원이다. 비가 그치면 이끼는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었다가 서서히 내보낸다. 빗물에서 산업 폐기물을 정화하고 자동차 배기가스의 중금속과 화력발전소의 연기를 붙잡아 가둔다. 숲은 위에서 아래로 생명을 먹여 살리고, 갑작스러운 진흙 사태로부터 강을 보호하고 건기에도 유량을 유지한다. 

◆1㎥ 숲속 우주에 대한 관찰…그리고 자신에 대한 성찰

'숲에서 우주를 보다' 책 표지.
'숲에서 우주를 보다' 책 표지.
저자의 관찰은 연가시와 이끼 뿐 아니라 도룡뇽과 노루귀, 달팽이, 반딧불이, 방귀버섯, 털애벌레를 비롯해 지진과 바람, 물결, 빛, 낙엽을 넘나든다. 미미한 생물부터 동물과 식물까지 자연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삶과 진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이 책이 주목받는 것은 '글' 때문이다. 문장은 에세이나 시를 닮았다. 이를테면 이런 표현들이다. "만다라에 폭풍이 몰아친다. 머플러가 펄럭이고 턱이 아리다. 기온이 영하 20도다. 오늘의 추위는 만다라의 생명을 생리학적 극한까지 몰아갈 것이다(29쪽)."

또 이런 문장에도 밑줄을 그었다. "봄철 꽃잔치가 끝났다. 이제 벌꽃과 제라늄 몇 송이만 남아서 4월의 영광을 추억한다. 머리 위에서는 할 일을 다한 꽃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129쪽)", "굶주린 여인들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내 팔과 얼굴을 덮치더니 땅에 내려앉아 탐색한다. 내게서 풍기는 포유류 냄새를 맡고 바람을 거슬러 날아왔다(159쪽)."

빼어난 문장에 심오한 과학적 통찰을 덧씌운 그의 책을 두고 세계적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과학과 시를 넘나드는 자연문학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우주도 풀리지 않는 의문과 수수께끼 투성이다. 물론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예를 들어 암수한몸은 우리 눈에는 기이하게 보이지만, 자연에서의 생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유연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해 못할 일들은 정작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래서 가설을 검증하는 과학자이기 전에 숲속의 생명을 노래하는 시인을 자처한 저자는 '관찰'을 통한 '성찰'을 말한다. "우리들 각자는 오래된 숲 못지않게 깊숙한,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만다라에서 살아간다. 게다가 자신을 관찰하는 것과 세상을 관찰하는 것은 대립하는 활동이 아니다. 나는 숲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을 더 또렷이 보게 되었다."    

문학이든 과학이든 바야흐로 '성찰'이 필요한 시대다. '숲에서 우주를 본다'는 관찰을 통한 성찰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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