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월드컵 경기는 끝났고 우승컵은 독일 팀에게 돌아갔다. 그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이기고 싶다'는 욕망이 솟아오른다. 2002년에 맛보았던 그 감동과 감격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이겼을까? 그들의 장점은 무엇이고 우리의 단점은 무엇일까? 상대를 알고 우리를 안다면 (知彼知己) 우리도 언젠가 독일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축구를 보노라면 독일의 문화와 독일 국민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독일 팀은 무엇보다도 조직력이 강하다. 메시나 호날두 같은 축구천재는 없지만 독일 선수들은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조직력이 발휘된다.

선수 개개인의 역할 지정을 통한 조직력 확보는 감독의 몫이다. 상대편에 따라 전략을 세우고 선수의 역할을 변경하는 것 또한 감독의 몫이다. 독일 팀의 뢰브 감독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오늘의 승리를 위해서 10년을 준비했단다. 코치 시절부터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면서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의 용인술을 빛나게 한 요인이다.

선수들의 탄탄한 기본기는 빼 놓을 수 없다. 선을 긋듯이 이어지는 패스는 상대편을 지치게 만들고 그것에서 일찌감치 승리는 예감된다. 독일은 선수들에게 어릴 적부터 교과서적인 축구를 가르친다고 한다. 기본기에 충실한 교육은 축구만이 아니라 독일의 전 교육과정이 그런 것 같다.

유럽에서 독일이 제일 껄끄러워하는 상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번에 16강에서 탈락한 이탈리아 팀이라고 한다. 공식경기에서 맞붙었을 때 이탈리아를 이겨본 적이 없단다(사실여부는 불명확). 독일은 정형화된 축구를 하기에 독일 축구를 이탈리아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팀의 축구는 예측할 수 없기에 독일에게 어려운 상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독일은 이탈리아에 대해 일종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단다. 중국이나 일본이 한국 팀에 대해 공한증(?)이 있는 것처럼….

마테호른(정상: 4478 m),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왼쪽>. 고르너그랏(해발 3089 m)에서 바라본 마테호른.
마테호른(정상: 4478 m),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왼쪽>. 고르너그랏(해발 3089 m)에서 바라본 마테호른.

승리의 요인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일 국민들의 축구 사랑이다. 큰 도시를 중심으로 구성된 18개 분데스리가 프로 축구팀에 대한 주민들의 응원은 대단하다. 거의 매 경기가 매진이며 평균 관중 수는 4만 명이 넘는다.

그리고 작은 동네에 이르기까지 축구장을 갖추고, 생활체육으로서의 축구는 선수층을 두텁게 한다. 3개 프로 리그 외에도 수십 개의 아마추어 리그가 있다. 이런 국가적 축구 인프라로 인해 독일은 앞으로도 월드컵에서 상위 랭킹에 계속 포함될 것이다.

16강 진입에 실패한 한국은 홍명보 감독을 물러나게 했다. 패배에 따른 국민들의 실망감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다분히 감정적으로 결정된 듯하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미래를 위해 바른 결정일까?

옛날 로마제국은 전쟁에서 패배한 장군에게 반드시 한번더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패배한 장군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 (second chance)는 명예회복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열심히 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우리는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승리할 수 있는 감독을 내보낸 것이다.

한국에도 프로 축구팀이 있다. 붉은 악마로 대변되는 열렬한 팬들도 있다. 지역마다 조기 축구회, 직장마다 축구 동호회도 많다. 축구의 인프라가 결코 독일보다 못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기지 못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그림자의 모양이 같다고 본체가 같은 것은 아니다. 겉모양보다는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독일 팀에는 있지만 우리에게는 없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독일 사람들이 건물 공사나 도로 공사하는 것을 보면 공정 매뉴얼이 있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도로 공사의 경우 공사 시작 전에 반드시 속도 제한 표지판, 우회도로 표시판, 야간에도 보이는 위험표지판 등을 설치한다. 이런 것을 모두 지키면서 시작되는 공사는 대부분 느리게 진행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정 하나하나에서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다. 일이 끝난 후 보면 정말 깔끔하게 완성되고 마무리 되었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독일 축구는 마치 이런 매뉴얼을 가진 듯하다. 가장 최적화된 매뉴얼을 따라 하면 큰 실수 없이 안정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다. 그래서 화려하진 않지만 결코 지지 않는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과 독일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비교하면 우리가 결코 못하지 않다. 아니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가 월등한 것도 있다. 그렇지만 단체로 움직이게 될 때 우리에게서는 부족한 것이 나타난다. 바로 조직력이다.

조직력 확보를 위해서는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에 대한 신뢰와 복종이 필수적이다. 독일 사람들이 국가 지도자와 공권력에 대해 갖는 복종심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정부와 지도자들이 그만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어떤 사람이든 지도자로 일단 선출되면 그 지도자를 따라야 한다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이런 문화가 형성되기까지 그들 나름대로 역사적 배경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과학기술분야 연구는 곧잘 한국 축구와 비교된다. 투자를 많이 하지만 성과가 없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런데 연구와 축구는 비교하기엔 그 특성이 너무 다르다.

연구에서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다. 누구나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연구는 연구로서 가치가 없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주제에 대해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어려운 주제(난제) 일수록 성공확률은 낮기 때문에 실패는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 대신 성공했을 때 그 가치와 파급효과는 훨씬 크다.

그러므로 연구에서 실패를 용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연구에서는 두 번째 기회가 아니라 200번째 기회도 주어져야 한다. 우수한 연구결과는 수많은 실패를 바탕으로 얻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연구회가 출범했고, 새 미래부 장관이 취임했다. 과학기술계에서 존경받고 능력을 인정받은 분들이 그 자리를 맡으셨다. 앞으로 한국의 과학기술분야가 좀더 발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지만 길어야 3년의 임기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너무나 한정되어 있다. 그 기간 동안에 빨리 성과를 내려고 한다면 과학기술 정책은 또 졸속으로 추진될 것이 뻔하다.

새로 선출된 지도자들은 먼저 지난번 연구회나 장관이 추진하던 과제에서부터 시작하길 바란다. 정책과 업무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마치 이어달리기에서 바통을 넘겨받는 것과 같다. 진행방향이 같고, 또 바통 연결이 잘 된다면 마라톤을 혼자서 달리는 것보다 단거리 선수들이 이어서 달리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인들은 새 지도자를 믿음으로 따라야 한다. 그들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길 때 그들은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지도자를 중심으로 조직력을 갖추어야만 과학기술계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언젠가 독일을 이기게 되길 바란다. 축구에서건 과학기술에서건….

◆이호성 KIST 유럽연구소장은

이호성 KIST 유럽연구소장.
이호성 KIST 유럽연구소장.
대한민국 4.0시대를 여는 시기로 성숙된 의식과 시스템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이에 이호성 KIST 유럽연구소장은 독일의 과학기술과 그 발전의 바탕이 되는 사회·문화적인 환경에 대해 생생하게 전달해 줄 것입니다.

이 소장은 독일에서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편지나 일기 형식으로 쓸 예정입니다. 이호성 소장은 KAIST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바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근무를 시작, 17년 동안 시간·주파수 표준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광펌핑 세슘원자시계를 개발해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2003년 이후에는 표준연의 주요보직을 맡아서 후배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연구재단에서 나노·융합단장으로 2년간 근무한 바 있습니다. 2012년 9월 KIST유럽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해 한국과 유럽연합을 잇는 가교역할을 위한 국제협력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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