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책 판매량은 여름이 최다
휴가지·잠못드는 여름밤, 과학책 한권 어떨까?
유익하고 검증받은 책…무엇보다 술술 쉽게 읽히는 책으로

휴가계획은 세우셨나요? 이미 휴가를 떠나셨습니까? 본격적인 무더위라고 하니 누구나 마음만은 시원한 계곡이나 산에 있을 듯 합니다. 이 때쯤이면 출판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단골 뉴스가 있습니다. '휴가지에서 읽을 만한 책 10선', '더위 식힐 수 있는 책 10선' 등이 그것입니다. 무시해도 됩니다. 휴가지에서 읽을 책의 '가이드라인'을 왜 출판계에서 정해줍니까? 그리고 어디 그 책 뿐이겠습니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가을에는 오히려 책 판매량이 떨어진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낙엽은 붉게 물들어 마음까지 붉게 만들고, 바람은 불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그 좋은 때 어찌 책에만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놀랍게도 독서의 계절은 여름이랍니다. 실제 여름이 되면 다른 계절에 비해 책 판매량이 15% 정도 올라간다고 하네요. 

휴가지에서 읽을 만한, 혹은 무더운 밤 잠이 오지 않을 때 읽을 만한 책 몇 권을 소개합니다. 마찬가지로 무시하셔도 됩니다. 꼭 여름에 읽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나름대로의 기준은 정했습니다. 일단은 쉽게 읽히는 책, 그러면서도 유익하고 어느 정도 검증받은 책.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용도 좋지만 글이 좋은 책. 과학 분야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책도 이런 기준을 적용해서 책을 고르는 것도 '여름나기 독서법'의 하나겠지요.   

휴가 가서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고, 게다가 과학책을 읽을 여유가 어디 있냐고 타박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아는 사람은 압니다. 계곡에 발 담그고 앉아 잠깐이라도 독서삼매경에 빠지면 그만한 피서가 없다는 사실을. 긴긴 밤 선풍기 바람이 넘겨주는 책갈피 속으로 들어가면 끈끈한 무더위까지 잠시나마 책갈피와 함께 넘어간다는 사실을.

'홍성욱의 과학에세이'는 과학으로 인간과 사회를 말합니다. 홍성욱 교수는 그것을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이라 부르더군요. 인간과 사회의 부분집합으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교집합으로서 과학을 바라보는 그의 글은 늘 재미와 교양이라는 즐거움을 동시에 선물합니다. 2008년이던가요? 처음으로 과학 분야를 담당하게 되면서 그래도 기본적인 과학 용어는 알아야지 대화가 되지 않겠느냐는 나름대로의 '필요성'에 의해 고른 게 이 책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잡종적 지식인'이라고 칭하는데서 알 수 있듯 그의 관심은 문학과 철학, 영화, 정치, 사회, 역사, 문화을 넘나들더군요. 책을 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이런 문구에 (과장을 조금 섞자면)무릎을 치기도 했습니다.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로맨스 코미디는 본 적이 없다. 왜 그런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중략). 두꺼운 안경을 쓰고, 하얀 실험실 가운을 입고, 더부룩한 머리를 한 중년의 과학자는, 다른 영화는 몰라도 로맨스 코미디에는 적격이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사실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구요. 거꾸로 인문·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지금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이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크고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구요. 이 책은 철저히 그런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나타난 다양한 사회현상은 물론이고 괴테와 영화 '우주전쟁'까지 글감의 소재로 삼았으니 책의 재미를 더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윈 지능'은 꽤나 화제가 됐던 책입니다. 저자인 최재천 교수 자체가 워낙 출판계의 '우량주'이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다작(多作)입니다. 2010년 이후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최 교수가 책을 좀 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절대 그렇진 않겠지만 언젠가부터 그가 전하는 메시지와 컨텐츠 보다는 '그'가 팔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다윈주의자'인 최 교수가 다윈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그에게 1809년은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1809년은 인류 역사상 참으로 대단한 해였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왜냐구요? 일단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이 사망하고 멘델스존이 탄생했다네요. '검은 고양이'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와 러시아 소설가 고골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인류 역사의 방향을 뒤바꿔 놓은 대표적인 두 인물, 에이브러햄 링컨과 찰스 다윈이 태어난 해이기 때문이랍니다.

책은 2012년 출간됐지만 2009년부터 준비했던 모양입니다. 2009년은 또 어떤 의미를 갖느냐구요? 찰스 다윈이 탄생한 지 200년이자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년이 되는 해였답니다. 관심은 있지만 '종의 기원'이 너무 어려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독자들이 간접적으로 다윈과 진화론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이 책은 제공합니다. 다윈이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나구요? 제임스 왓슨의 말로 대신합니다. "다윈은 이 지구상에 살다 간 사람 중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 첫 번째 인간이다." 

'과학콘서트' 역시 사족이 필요 없을 듯 싶습니다. 초판 나온 게 2001년입니다. 그로부터 꼭 10년 뒤인 2011년 개정증보판이 나왔구요. 초판을 쓸 때 정재승 교수의 나이는 28살이었습니다. 정 교수는 낮에 연구하고 밤에 글을 정리할 당시를 회고하며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어디에선가 말한 적 있습니다. 왜 안그렇겠습니까. 

정 교수 이전, 혹은 동시대에도 많은 선배 과학자들이 과학을 실험실에서 꺼내와 바깥 세상으로 내놓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성과도 있었구요. 무엇보다 어렵고 딱딱한 과학을 일상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는데 기여한 공로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 교수 만큼 과학을 '낮은 곳'으로 끌고 내려와 사람들에게 '과학적 세상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 사람은 찾기 힘듭니다.

이 책은 그야말로 대중이 궁금해 할 만한 지점에서 시작해 그곳에서 끝을 냅니다. 생각해 보세요. 누가 O.J 심슨 살인사건에서 통계학의 오류를 찾아내고 토크쇼 방청객은 왜 여자가 많은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을까요? 또 서태지의 머리에서 '프랙털 이론'을 발견하고, NASA의 로켓 물리학자들이 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는 지 얘기할 생각을 했겠습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13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정재승 교수의 과학콘서트를 '듣는' 즐거움은 여전합니다.

'세계대전 Z'는 사뭇 다른 책입니다. 우선 과학책이 아니죠. 그리고 소설입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이 책은 '좀비 소설' 걸작으로 거론됩니다. 이 책의 저자 맥스 브룩스는 방송작가였습니다.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묘사한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로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고 하니 이 정도면 '좀비 전문가'로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계대전 Z는 좀비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져 인류 최대의 위기를 맞는 가상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소설입니다. 이 책을 한여름 무더위를 식힐 만한 책으로 감히 권해드리는 이유는 단순한 '좀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류 전체가 멸종될 상황에 처한 전지구적 위기 상황에 세계의 각 나라들은, 그리고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장엄하면서도 '과학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재난이나 위기상황 앞에서의 인간은 비슷합니다. 죽음의 공포와 살고싶다는 욕망이 동시에 교차하겠지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하나 밖에 남지 않은 구명보트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또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인간과 좀비는 그 순간에 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아직 좀비에게 물리지 않았다고 방심하지 마세요. 자신의 삶을 위해 타인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시선을 놓쳐버린다면 우리도 '살아있는 시체'와 별반 다르지 않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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