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박용기 UST 교무처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문연구원

아내와 나는 둘째 딸의 휴가에 맞추어 외손녀를 대리고 거제도로 가기로 하였다. Pentax K-3, 10 mm with 10-20 mm, 1/500 s, F/11, ISO 100.
아내와 나는 둘째 딸의 휴가에 맞추어 외손녀를 대리고 거제도로 가기로 하였다. Pentax K-3, 10 mm with 10-20 mm, 1/500 s, F/11, ISO 100.

여름이 절정을 이루는 8월 초순이다. 7월 말과 8월 초는 흔히들 바캉스의 계절이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바캉스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 내가 대학생이었던 1970년대 초반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느 날 매스컴에서 그 때까지는 생소하였던 '바캉스'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하더니 유행처럼 퍼지기 시작하였다. ‘여름 휴가’라는 우리 말도 있었지만 뭔가 새로운, 그러면서도 건강 음료의 이름과 유사하여 청량감을 주면서 폼이 나는 것 같은 프랑스어를 사람들은 즐겨 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어느 신문 기사를 보니 근로자들에게 긴 유급 휴가가 주어지기 시작한 것이 1936년 프랑스에서부터라고 하니 바캉스의 원조 냄새가 나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캉스(vacance)라는 말은 라틴어인 바카티오(vacatio)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영어의 vacation도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어원인 바카티오는 '자유', '비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일상의 바깥으로 나가면 자유로워진다는 우리말과도 통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하며 혼자 웃어보았다. 그런데 때로는 바캉스가 어원과는 다르게 꼭 어딘가 근사한 곳을 다녀와야 하는 또 다른 일이 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렇게라도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출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좋은 일이겠지만 가능하다면 어원에 충실한 바캉스가 되면 좋겠다.

돌고래를 만져보고 싶어하는 외손녀를 엄마와 함께 돌고래 쇼에 다시 들여보내고 쇼를 보는 동안 아내와 나는 근처 마트에서 짧은 데이트를 즐겼다. 아이 없이 마트에 가는 일도 아내에게는 휴식이었다. Pentax K-3, 18 mm with 16-50 mm, 1/250 s, F/3.5, ISO 100.
돌고래를 만져보고 싶어하는 외손녀를 엄마와 함께 돌고래 쇼에 다시 들여보내고 쇼를 보는 동안 아내와 나는 근처 마트에서 짧은 데이트를 즐겼다. 아이 없이 마트에 가는 일도 아내에게는 휴식이었다. Pentax K-3, 18 mm with 16-50 mm, 1/250 s, F/3.5, ISO 100.

7월 말과 8월 초 나도 일상의 바깥으로 나가 자유와 비움을 잠시 즐길 기회가 있었다. 내가 만난 이 여름 바캉스 두 개를 소개하기로 한다.

◆바다와 하늘이 함께 한 아내의 휴가

아내와 나는 둘째 딸의 휴가에 맞추어 외손녀를 데리고 거제도로 가기로 하였다. 하지만 둘째 딸이 해야 할 일이 밀려, 출발하기로 한 날 대전으로 합류하지 못하고 말았다. 조금 실망스러워하는 외손녀를 데리고 우리는 거제도를 향해 출발하였다. 휴가철이기는 하였지만 평일의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는 한가하였다. 대전을 벗어나면 곧 금산, 무주 그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여러 통로의 입구들을 지나는 이 길은 아름다운 산 경치가 끝없이 이어져 아내가 참 좋아하는 길이다. 아내에게는 늘 껌 딱지처럼 붙어 있는 외손녀를 대리고 가야 하는 휴가이어서 바캉스의 원래 의미대로 '자유'나 '비움'을 느끼기에는 함량이 부족한 휴가이지만 그래도 일상의 집안일을 놓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트이는 일일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 들어가 조금 휴식을 취한 후 저녁 먹을 곳을 찾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직 어린 외손녀가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고르는 일이 만만치가 않았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또 얼마 전 그 곳을 다녀간 큰 딸의 추천을 받아 숙소 근처 마을에 있는 생선구이집에 가기로 하였다. 음식점에 들어서니 작은 마을인데도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꽤 알려진 맛집인 것 같았다. 그런데 자리를 잡고 앉으려고 하자 외손녀가 울기 시작하였다. 이유인즉슨 그 음식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집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하고 아이의 눈에 깔끔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일이 물론 처음은 아니니 우리도 더 이상 아이와 승강이를 벌이지 않기로 하고 그 집을 나오고 말았다.

길을 가다 잠시 휴게소에 들려 바라본 거가대교는 푸른 하늘과 바다와 어울려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Pentax K-3, 70 mm with 70-200 mm, 1/250 s, F/16, ISO 100, 파노라마 합성.
길을 가다 잠시 휴게소에 들려 바라본 거가대교는 푸른 하늘과 바다와 어울려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Pentax K-3, 70 mm with 70-200 mm, 1/250 s, F/16, ISO 100, 파노라마 합성.

어찌 하다 보니 시간도 늦어져 다시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기도 좀 어려워 보여 우리는 근처에 있던 마트에 들러 김밥과 라면 등을 사 들고 방으로 들어와 저녁을 때우기로 하였다. 3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와서 피곤하기도 하고 또 엄마가 함께 오지 못해 조금 심통이 나 있던 외손녀는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잠자리에 들고 말았다. 다행히 둘째 딸은 일을 마치고 그날 저녁 비행기로 김해 공항까지 온 후 밤늦게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소 삐걱거리며 시작된 우리의 휴가는 다행히 다음 날부터는 비교적 순조롭게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가능한 돌아다니지 않고 숙소에서 바다와 하늘을 바라 보면서 지내기로 한 아내의 방침 때문이리라. 하지만 외손녀를 위한 돌고래 쇼는 필수코스였다. 원래 2박 3일 일정으로 숙소를 예약하였지만 둘째 날 저녁이 되자 외손녀를 포함한 모두가 아쉽다고 하며 하루를 더 있자고 하였다. 일단 대기 상태로 숙소 연장 신청을 하여 두었는데, 다음 날 아침 다행스럽게 하루를 더 머무를 수 있게 숙소가 배정 되었다. 비록 취사가 안 되는 방으로 옮기게 되었지만 높은 층이어서 전망은 훨씬 좋았다.

다음 날은 외손녀와 아내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돌고래를 만져보고 싶어하는 외손녀를 엄마와 함께 돌고래 쇼에 다시 들여보내고 쇼를 보는 동안 아내와 나는 근처 마트에서 짧은 데이트를 즐겼다. 아이 없이 마트에 가는 일도 아내에게는 휴식이었다. 오후에는 둘째 딸과 내가 외손녀를 대리고 물놀이 시설이 있는 오션 파크에 들어가고 아내에게는 자유시간을 주었다.

물놀이가 끝난 뒤 아내에게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니 그냥 숙소에서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쉬었다고 한다. 아마 아내는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이 들려준 여름 이야기를 들으며 모처럼의 자유와 비움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휴가를 다녀 온 후 2년마다 하는 정기 진료가 있었다. 담당의사는 검사 결과를 훑어 보고 간단한 촉진을 하더니 “이제 정기적인 검진은 하지 않아도 되니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때 오라”는 말을 하였다. 위암 수술을 받은 지 14년째에 이제 병원으로부터 완전히 졸업장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휴가를 다녀 온 후 2년마다 하는 정기 진료가 있었다. 담당의사는 검사 결과를 훑어 보고 간단한 촉진을 하더니 “이제 정기적인 검진은 하지 않아도 되니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때 오라”는 말을 하였다. 위암 수술을 받은 지 14년째에 이제 병원으로부터 완전히 졸업장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스마트폰 촬영 후 다중노출 효과 처리.
휴가를 다녀 온 후 2년마다 하는 정기 진료가 있었다. 담당의사는 검사 결과를 훑어 보고 간단한 촉진을 하더니 “이제 정기적인 검진은 하지 않아도 되니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때 오라”는 말을 하였다. 위암 수술을 받은 지 14년째에 이제 병원으로부터 완전히 졸업장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휴가를 다녀 온 후 2년마다 하는 정기 진료가 있었다. 담당의사는 검사 결과를 훑어 보고 간단한 촉진을 하더니 “이제 정기적인 검진은 하지 않아도 되니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때 오라”는 말을 하였다. 위암 수술을 받은 지 14년째에 이제 병원으로부터 완전히 졸업장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스마트폰 촬영 후 다중노출 효과 처리.

◆서울로 간 짧은 여행

휴가를 다녀 온 후 2년마다 하는 정기 진료가 있었다. 서울 강남에 있는 병원에 가기 위해 모처럼 고속버스를 탔다. 한잠을 자고 났는데도 아직 한 시간 가량을 더 가야 했다. 하지만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이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 읽기 시작하였다. 사진기자 출신의 임민수씨가 쓴 "카메라로 명상하기"라는 책이다. 사진을 통해 세상을 낯설게 맞닥뜨리고 나를 돌아보는 방법과, 사유를 위한 사진 찍기 등 카메라를 사유의 도구로 사용하는 독특한 저자의 생각이 담긴 책이다. 몇 년 전 일련의 강의로 구성된 임작가의 강의 프로그램을 직접 들은 적이 있어서 더욱 친근한 느낌으로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담당의사는 검사 결과를 훑어 보고 간단한 촉진을 하더니 “이제 정기적인 검진은 하지 않아도 되니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때 오라”는 말을 하였다. 위암 수술을 받은 지 14년째에 이제 병원으로부터 완전히 졸업장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8월은 자연 속에서 꽃들이 한창 여름을 노래하는 계절이다. 아름답게 피고 있는 뚱딴지꽃. Pentax K-3, 100 mm macro 1/800 s, F/3.5, ISO 200.
8월은 자연 속에서 꽃들이 한창 여름을 노래하는 계절이다. 아름답게 피고 있는 뚱딴지꽃. Pentax K-3, 100 mm macro 1/800 s, F/3.5, ISO 200.

서울 강북에 또 다른 일이 있어 그곳을 들러 일을 본 후 돌아올 때에는 기차를 타기로 하였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 그만 꺼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날만은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하며 다시 아까 읽던 책을 꺼내 마저 읽었다. 그리고 모처럼 음악을 듣기로 하였다. 다행히 가지고 있던 아이패드의 배터리는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연결하지 않고 음악 재생장치로만 사용하기로 하였다. 몇 년 전 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기내에서 거금을 투자해서 샀던 이어폰을 모처럼 꺼내 귀에 꽂았다. 볼륨을 조금 키우자 귀 안으로 아름다운 선율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곤 갑자기 가슴 속에 자유와 비움의 시원한 바람이 몰려옴을 느꼈다. 한동안 이러한 여유를 잊고 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비록 짧은 하루의 여행이었지만 나에겐 이 여름을 식혀 줄 기분 좋은 바캉스였다.

8월은 자연 속에서 꽃들이 한창 여름을 노래하는 계절이다. 또한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바다와 하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스마트폰을 끄고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겨보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비우는 여유를 가져보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 여름에는 또 하나의 일로서 여겨지는 바캉스가 아니라 ‘자유’와 ‘비움’을 찾아 떠나는 진정한 의미의 바캉스를 즐겨보기 바란다.

8월은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바다와 하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스마트폰을 끄고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겨보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비우는 여유를 가져보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 여름에는 또 하나의 일로서 여겨지는 바캉스가 아니라 ‘자유’와 ‘비움’을 찾아 떠나는 진정한 의미의 바캉스를 즐겨보기 바란다. 벌개미취꽃 속에서는 벌써 가을의 손짓이 느껴진다. Pentax K-3, 100 mm macro, 1/500, F/3.5, ISO 200.
8월은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바다와 하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스마트폰을 끄고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겨보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비우는 여유를 가져보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 여름에는 또 하나의 일로서 여겨지는 바캉스가 아니라 ‘자유’와 ‘비움’을 찾아 떠나는 진정한 의미의 바캉스를 즐겨보기 바란다. 벌개미취꽃 속에서는 벌써 가을의 손짓이 느껴진다. Pentax K-3, 100 mm macro, 1/500, F/3.5, ISO 200.

8월의 시/ 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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