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양동렬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단지가 대덕에 들어선지 4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정부는 대덕연구단지에 대해서 새로운 평가를 하고자 하고, 새로운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를 하고 있다. 왜, 우리는 선진국들의 연구기관들처럼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지속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고 있지를 못하는 것인가? 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덕의 연구기관들의 새로운 역할이 거론되는가? 또, 대덕에 수많은 국책 그리고 민간 연구기관들이 있는데 기관간 시너지가 없다는 이야기들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인가?

연구단지에 시너지가 있는가하는 질문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기술융합시대를 맞아 기관간, 내부조직간, 팀간, 그리고 연구자 개인간의 협력과 시너지가 진정한 기술혁신과 세계적인 원천기술창출에 중요하다는 것은 오랫동안 논의된 화두였다. 그런데 왜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논의되고 있는가?

여기서 시너지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빌 비숍은 그의 저서 '관계우선의 법칙(The Strategic Enterprise)'에서 진부한 낡은 성공방정식에 의존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성공에 이르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제품의 성공은 '잘 나가는 제품 X 커다란 숫자'라는 식에 좌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것을 제품우선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연구계에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할 수 있겠다.

연구의 성공 = '잘 나가는 프로젝트 X 커다란 숫자'

얼마나 수많은 기업이 이러한 낡은 사고에 빠져 기업의 경쟁력을 잃고 추락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연구자들이 경쟁력 없이 연구정치인으로 전락했는가? 그러면 현재의 정치환경에 부합하는 몇 개의 잘 나가는 프로젝트를 많이 확보하고자 하는 게 연구기관의 성공인가? 과연 연구기관이 원하는 프로젝트만 많이 따오면 진정한 기관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가?

빌 비숍은 이에 반해 진정한 성공이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쾌하게 설파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관계우선의 법칙에 의한 성공은 "독특한 가치를 가진 제품" X "고객과의 긴밀한 관계"로 설명된다. 이것을 연구계로 적용해 바꾼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다.

연구계의 성공은 "독특한 가치를 가진 기술" X "연구수요자와의 긴밀한 관계"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해준다. 우선 다른 기관과는 차별화되는 고유한 독특한 기술들을 연구 개발해한다는 것이고 또 예컨대 기업이 수요자인 연구기관은 기업과 보다 즉 기업현장과 더 가까이 밀착한 연구를 진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방정식은 지속가능성이 있는가? 답은 이것으로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연구계의 성공방정식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지속가능한 성공 = '독특한 가치와 비전을 가진 인력과 시스템 X 연구수요자 및 연구협력자와의 긴밀한 시너지관계'

다시 말해서 프로젝트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사람 및 관계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여기서 독특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란 원천기술 및 혁신기술을 창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창의적인 인력을 말하며 시스템은 그러한 사람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운용하는 시스템까지를 포함한다. 여기서의 비전이란 팀 또는 조직 내의 모든 참여자들이 공유된 비전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시스템은 비전공유를 가능케 하고 참여자들이 강한 동기가 부여되도록 구조화된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앞에서 관계란 협력마인드를 가진 시너지관계를 말한다.

여기서 시너지관계란 '핵심역량 X 협력마인드'인데 중요한 것은 특히 연구협력자와의 관계에서는 당사자 각각의 탁월한 핵심역량이 성공에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정치적인 구호에 불과하고 아무런 실효도 있을 수가 없다. 핵심역량을 갖추지 못한 당사자들이 협력을 부르짖는 것은 결국 정치적인 관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연구자들이 프로젝트를 따면 그것이 이미 큰 성공인양 의기양양하고 팀을 이룬 척 하지만 실제로는 독자적으로 연구를 하고 나중에 융합과 시너지 없이 결과만 합치는 프로젝트연합정도로 끝나는 경우는 없는가? 진정한 시너지를 불러 오지 못하는 무늬만의 협력이 얼마나 많은가? 모여서 각종 거창한 행사들과 협약식을 하고 박수치고 손을 들어 구호를 외치지만 진정한 사람중심 그리고 시너지 관계중심의 정신과 실행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일일 뿐이다.

오늘날 빠른 기술혁신속도와 기술의 융합성격과 복잡성은 각각의 핵심역량과 협력마인드만 가진다고 해서 지속가능한 성공적인 시너지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동적인 특성과 복잡성은 새로운 지속가능한 시너지의 창출을 위한 조건을 필요로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이 새롭게 정의 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시너지 = 핵심역량증진 x 상생전략 x 긍정적 관계가치 창출

여기서 새로운 팀과의 협력은 상호소통과 교류를 위한 새로운 공통된 지식을 각각의 핵심역량으로 확장시키는 일이 필수적이다. 지속가능한 협력이 되기 위해서는 협력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이 거창한 대의보다는 상호간에 win-win이 되는 상생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울러 협력의 새로운 관계가 긍정적 가치를 새로이 창출한다면 양자간의 시너지 관계는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한 팀이나 기관이 단순히 다른 팀 또는 기관의 핵심역량을 이용하여 상대팀의 실제적인 발전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의 목적만을 이루고자 한다면 일시적으로는 협력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관계를 형성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상생전략방안이 마련되고 상호간에 긍정적 관계가치가 창출되려면 조직내에 여러 관련 조직들을 포괄하는 단지의 인적지원 인프라와 기술지원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고 문화적, 사회적 인프라도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연구단지에 그간 있어 왔던 기관장의 잦은 교체 또한 인적지원인프라가 제대로 갖추도록 만들어 주지 못하는 큰 원인들 중 하나다.

독일, 미국과 같은 연구선진국에서 유능한 기관장들이 일관된 정책으로 오랜 기간 시너지를 만들며 기업에 대한 기술선도적 역할을 수행한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연구단지내의 연구기관들과 학교들에서 새로운 원천기술과 혁신기술이 끊임없이 나오고 이로부터 우리 기업들을 도우며 한 편 새로운 벤처기업들과 신산업이 창출되는 진정한 상생구조의 문화와 생태계가 만들어져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져야만 진정한 시너지가 가능한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정부에 기대어 생존하는 연구단지가 아니라 이제부터는 연구단지 내부의 시너지를 스스로 창출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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