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문홍규 천문연 책임연구원

21세기 들어 우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동안은 '스타워즈'로 대표되는 SF 영화의 무대로, 신비와 동경의 대상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우주개척이 보다 실제적인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록 공상과학영화 수준이기는 하지만 온난화와 자원고갈 문제 등과 연계돼 미래 인류의 주거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미래 지구를 대체한 인류의 거주지로 언급되는 최우선 행성이 지구와 같은 태양계에 있는 화성이다. 우주 속 행성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비록 가상이지만 화성에 대해 그리고 화성의 환경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화성에서의 인류의 모습을 담은 상상도. <이미지=NASA/Pat Rawlings, SAIC>
화성에서의 인류의 모습을 담은 상상도. <이미지=NASA/Pat Rawlings, SAIC>

◆비율
여기에 오기 전까지 필자는 동료 세 명과 8년간 현지 적응훈련을 받았다. 모듈 수리, 작물재배 뿐 아니라 근육의 파열과 골절에 관한 진단과 치료도 과정에 포함됐는데, 이 훈련은 3개월간 세상과 단절된 채 이뤄졌다. 그 후 가족들과 보낸 나날도 꿈같았지만, 학생들과 함께 한 프로그램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지구하고 달을 1억분의 1로 줄이면 어떻게 될까?"
"음…. 10의 -8승을 곱하면 지구는 12.8cm, 달은 3.5cm가 되겠죠?"
"그래! 지구-달 평균거리가 38만km이니까 두 놈을 3.8m만큼 떨어뜨려 볼까?"

아이들은 지구와 달이 그려진 종이를 가위로 잘라내고 교실 바닥에 그 간격만큼 떨어뜨려 놨다. 이번엔 화성.

"화성은 6.8cm인 원으로 똑같이 만들면 되겠다. 거기엔 달이 둘 있거든. 포보스, 데이모스라고 했지? 자…. 비율에 맞게 화성에서 9cm, 23cm 떨어뜨려 놓자."

화성은 지름이 지구의 1/2, 공교롭게도 지구 육지 면적과 화성 전체 면적은 거의 같다. 지구와 비교하면 화성을 이해하기 쉽다. 이웃 행성의 크기와 온도, 대기는 지구와 전혀 다르지만, 그 표면에서 일어나는 지질변화는 놀라우리만치 닮았다. 아이들은 재미있어 했고, 이 경험은 사실, 임무를 준비하는 내게도 도움이 됐다.

◆접근
지구 떠난 지 일곱 달. 처음엔 별처럼 보였지만,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각 크기를 재보면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착륙을 이틀 앞둔 그제 아침, 타르시스고원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한쪽에서 그 반대쪽 끝까지 장장 5000km에 달하는 고원지대! 아르시아, 파보니스, 아스크리우스와 같은 순상화산들은 마치 열병을 위해 도열한 부대 같았다. 다른 팀들과는 달리 우리는 화성 표면 위를 바싹 붙어 비행했다. 출발 전, 올림푸스몬즈와 마리너계곡 상공을 저공 활공해 아마존평원에 착륙하는 임무를 배정받자, 다들 부러움과 질투 섞인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올림푸스몬즈는 하와이 마우나로아(10km)의 2.7배, 에베레스트(9km)보다 3배 높은, 태양계에서 가장 거대한 화산이다. 지구에서 이런 지형은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다. 결국 중력 때문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테니까.

우리는 마리너계곡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길이와 깊이가 각각 그 1/10, 1/4에 불과한 그랜드캐년은 총연장 4000km, 폭 200km인 이 계곡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태양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 협곡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 DC까지의 거리와 맞먹는다. 창밖으로 까마득한 벼랑을 내려다보니 잠시 숨이 멎는 듯 했다.     

◆착륙 
일행을 실은 착륙모듈은 속도를 줄여 천천히 하강했다. 행성 표면에서 일어나는 먼지 때문에 선실 밖은 시계가 단 몇 미터도 되지 않았다. 표면중력은 지구의 1/3, 먼지 가라앉는 속도가 유난히 더디게 느껴졌다. '5, 4, 3, 2, 1. 터치다운!' 7개월 동안 좁은 선실에 '감금'됐던 우리는 에어록을 열고 땅을 밟자마자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러댔다. 몸무게는 28.1∼28.2kg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떠나기 직전에 잰 체중은 74kg! 100kg인 거구가 화성에 오면 38kg이 된다.

"내 뭐랬어, 지구에서 3m 덩크슛 하면 여기선 9m까지 뛸 수 있다니까!"
한 동료가 엄지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지금은 화성 북반구의 여름, 화성 시간으로 막 오후 2시를 넘긴 한낮이다. 여기서 하루(쏠=sol)는 24시간 40분. 1년은 지구에서 687일, 670쏠에 해당한다. 필자는 만 서른 둘, 화성 나이로는 열일곱 살이다.

팀원들과 오후 내내 실험모듈에 온습도, 구름 센서와 풍향풍속계, 전천카메라를 설치한 뒤 데이터가 잘 들어오는지 점검했다. 그리고 지질학자인 동료가 암석과 흙 시료를 채취하는 일을 도왔다. 그녀는 2주 동안 이 지역의 표토에 미소운석이 얼마나 포함됐는지, 우주환경 때문에 그 특성이 변했는지 조사하게 된다.

나사가 2005년 10월 22일 관측한 화성의 모래(먼지)폭풍. <사진=NASA>
나사가 2005년 10월 22일 관측한 화성의 모래(먼지)폭풍. <사진=NASA>
  

◆대기
우리가 안착한 지역은 아마존평원 남단. 표면은 섭씨 21도까지 올라가지만 머리 위는 0도다. 발밑은 여름, 머리꼭대기는 겨울인 이 낯선 세계! 표면기압 8밀리바, 지구의 1/100에도 못 미친다. 그 때문에 우주복을 입지 않으면 온몸의 장기들이 살갗을 밀어내, '고스트 버스터즈'에 나오는 괴물들처럼 온몸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거나, 아니면 더 끔찍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게다가 대기는 95%의 이산화탄소와 3%의 질소, 1.6%의 아르곤에 극미량 산소로 이뤄져 온도, 기압이 적당하다고 해도 우주복이 없으면 당장 호흡곤란을 느끼게 된다.

화성 우주복은 시설물을 짓거나 정교한 작업을 하는 우주인이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또 화성 표면기압은 지구 25km 상공과 같기 때문에 이에 맞춰 설계됐고 적도지방의 최고기온(섭씨 27도)과 극지 최저기온(섭씨 ?143도)에도 물론 견딜 수 있다. 

우주복을 입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산소는 적혈구에 실려 인체 구석구석까지 운반되는데, 화성 대기에 몸이 노출될 경우, 이산화탄소가 산소를 대체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이 때 사람은 3분 안에 숨을 거두지만 그보다 먼저 저온으로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 러시아에서 네 명의 자원자가 이산화탄소 대신 산소를 채우고 화성과 같은 비율로 아르곤을 충전시킨 탱크에서 지냈는데 건강상 아무 문제없었다는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한 두 시간 전부터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자전축이 25도 기울어진 화성에도 계절변화가 있으며, 국지적인 온도차로 인해 생기는 모래폭풍(먼지폭풍이라고도 말한다)은 여름철 남반구에서 더 심하다. 이 돌발적인 현상은 단 몇 시간 만에 일어나, 며칠 새 화성 전역을 뒤덮기도 하는데 이 상태는 수 주간 계속된다.

하지만 화성은 기압이 낮아 폭풍이라 해도 실제로는 미풍에 가깝다. 모래먼지 때문에 태양전지판의 출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인체나 전자기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사실,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일출
저녁 7시. 어느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장밋빛 하늘을 배경으로 두 개의 위성이 시야에 잡힌다. 포보스는 지구로 치면 정지위성보다 낮은 궤도(5989km)를 돌기 때문에 모행성이 자전하는 것보다 빨리 공전하며 화성의 관측자시점에서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인다.

포보스와 데이모스의 공전주기는 각각 11시간과 30시간. 하지만 데이모스는 화성 자전과 자신의 공전으로 인해 2.7일을 주기로 동쪽에서 떴다 서서히 서쪽 지평선으로 지는 것처럼 보인다.

화성의 낮 하늘은 오렌지에서 진홍색을 띠지만, 일출과 일몰 때는 차라리 장밋빛에 가깝다. 이때 태양 주변은 푸른색으로 보이는데, 얼음입자가 떠 있으면 빛의 산란으로 인해 보라색으로 변한다.

긴 하루가 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포보스는 지구에서 보는 달의 1/3 크기다. 모래바람이 어느새 포보스를 집어삼킬 기세다. 교범에 따르면 '화성에서 보는 태양'은 '지구의 태양'보다 5/8만큼 작고 40% 어둡다. 내일 아침 화성에서의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나는 일찍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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