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박용기/ UST 교무처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문연구원

9월로 접어들면 어느새 가을이 성큼 내 마음에 발을 들여놓는다. 아침 이슬 맺힌 풀들은 제법 서늘해진 바람결이 스칠 때마다 가을을 속삭이기 시작한다. Pentax K-3, 100 mm macro, 1/200 s, F/4.5, ISO 100.
9월로 접어들면 어느새 가을이 성큼 내 마음에 발을 들여놓는다. 아침 이슬 맺힌 풀들은 제법 서늘해진 바람결이 스칠 때마다 가을을 속삭이기 시작한다. Pentax K-3, 100 mm macro, 1/200 s, F/4.5, ISO 100.

9월로 접어들면서 어느새 가을이 성큼 내 마음에 발을 들여놓는다.  아침 이슬 맺힌 풀들은 제법 서늘해진 바람결이 스칠 때마다 가을을 속삭이기 시작한다. 초저녁 창밖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세 살배기 외손녀는 무슨 소리이냐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에게 묻고는 '풀벌레 소리'라는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을 일러주자 신기한 듯 혼자서 '풀벌레'를 되뇌곤 한다.

가을이 막 시작되는 9월 초에 갑자기 독일로의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미리부터 계획된 출장이 아니기도 하였지만 출장이 임박할 때까지 확정이 되지 않아 막판에서야 준비를 하느라 조금 분주하였다. 사실 최근 3년여 동안 외국 출장을 가지 않았고 더욱이 연구소를 정년퇴직한 후에는 이제 외국 출장을 다시는 가지 않겠구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마음에 준비가 좀 덜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행기는 막 몽고를 벗어나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부근의 바이칼호에 접근하고 있었다. 창 밖을 보니 꾸깃꾸깃 접힌 산들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강물이 굽이치며 달리고 있었다. Pentax K-3, 34 mm with 16-50 mm, 1/400 s, F/7.1, ISO 100.
비행기는 막 몽고를 벗어나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부근의 바이칼호에 접근하고 있었다. 창 밖을 보니 꾸깃꾸깃 접힌 산들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강물이 굽이치며 달리고 있었다. Pentax K-3, 34 mm with 16-50 mm, 1/400 s, F/7.1, ISO 100.

연구소를 퇴직하기 전에는 거의 일 년에 한 번 이상 외국 출장을 다녔기 때문에 비교적 출장 준비 시 챙겨야 하는 것들이 프로토콜처럼 머리 속에 잘 정리 되어 있어 짧은 시간에도 어려움 없이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출장을 떠나오기 전날 몇 가지 크고 작은 '구멍' 들이 발견되어 가슴을 쓸어 내리거나 잠을 설치게 하였다. 출장 전날 퇴근을 하다 말고 갑자기 차 안에서 출장을 가서 해야 할 업무와 관련된 자료 등이 들어있는 봉투와 폴더를 책상 위에 두고 나온 것이 생각났다. 다행히 바로 생각이 나서 돌아가 들고 오긴 하였는데 이건 몇 가지 구멍의 시작이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 가방을 꺼내놓고 가져갈 옷가지 등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외손녀를 재우러 들어간 아내는 외손녀와 함께 그만 잠이 들어버렸고, 나는 혼자서 나름 꼼꼼히 챙겼다고 생각이 되어 가방을 닫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누워서 생각하니 한 두 가지 더 가져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추가로 챙겨 넣기를 두어 번 하였다. 다시 자리에 누워 이전에 외국 여행 준비를 할 때의 프로토콜을 하나씩 점검해 보았다.

조금 뒤에는 수면 위에 초가을의 햇빛이 부서지는 바이칼호의 남쪽 끝 부근을 날고 있었다. 바이칼호는 가장 깊은 오지에 있어 지구 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로 남아 있으며 최대 깊이가 1,621 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라고 한다. 또 주변은 2,000 m급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전 세계 민물의 1/5이 담겨 있다고 한다. Pentax K-3, 22 mm with 16-50 mm, 1/1000 s, F/7.1, ISO 100.
조금 뒤에는 수면 위에 초가을의 햇빛이 부서지는 바이칼호의 남쪽 끝 부근을 날고 있었다. 바이칼호는 가장 깊은 오지에 있어 지구 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로 남아 있으며 최대 깊이가 1,621 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라고 한다. 또 주변은 2,000 m급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전 세계 민물의 1/5이 담겨 있다고 한다. Pentax K-3, 22 mm with 16-50 mm, 1/1000 s, F/7.1, ISO 100.

'그래, 외국에 가면 동전들을 많이 사용하니까 동전지갑이 필요했었지?'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동전지갑을 찾기 시작하였다. 보통 내가 보관해 두었던 서랍을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여기 저기 서랍들을 열어 동전지갑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 서랍을 열면서 정말 '큰 구멍'을 발견하였다. 여권이 떡하니 그곳에 놓여있는 게 아닌가? 전 날까지만 해도 여권을 챙겨두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짐을 챙기면서는 잊고 말았던 것이다. 만일 동전지갑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지갑이 보통 보관하던 서랍에 그대로 있었다면 나는 여권도 안 들고 공항까지 늠름하게 갈 판이었다. 동전지갑은 찾지 못했지만 '큰 구멍' 하나가 메꿔지면서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며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 있었다. 동전 지갑은 아침에 아내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다시 자리에 들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다시 이전의 여행 프로토콜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또 하나의 '큰 구멍'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로 비행기 표였다. 물론 출장일정과 비행기 편 및 출발 시각은 알고 있었지만, 보통 여행 보험 증서와 함께 일정이 적힌 e-티켓이 있었던 것 같은 데 아무 것도 전달 받은 게 없었다. 물론 요즈음은 e-티켓이기 때문에 공항에서 체크가 가능하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좀 불안하였다. 시계를 보니 이미 너무 늦은 시각이라 준비를 해 준 동료직원 정선생에게 연락할 수도 없었다. 아침 일찍 연락하여 확인하기로 하고 잠을 청하였다.

드디어 착륙지인 독일 푸랑크푸르트 가까이에 접어들었다. 열린 흰 구름 사이로 도심이 모습을 드러내고 파란 하늘 위에는 한가위를 향해 살쪄가고 있는 흰 달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한다. Pentax K-3, 28 mm with 16-50 mm, 1/320 s, F/11, ISO 100.
드디어 착륙지인 독일 푸랑크푸르트 가까이에 접어들었다. 열린 흰 구름 사이로 도심이 모습을 드러내고 파란 하늘 위에는 한가위를 향해 살쪄가고 있는 흰 달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한다. Pentax K-3, 28 mm with 16-50 mm, 1/320 s, F/11, ISO 100.

불안했던지 알람을 맞추어 둔 시각 보다 훨씬 일찍 잠이 깨었다. 새벽 6시 반이 되기를 기다려 정선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아직 자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였지만 마음이 좀 급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즉답이 왔다. 다행히 그는 바로 나에게 e-티켓을 이 메일로 보내주었고 내 스마트폰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하였다. 또 하나의 '구멍'이 메꿔졌다. 확인 한 후 정선생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어떻게 이렇게 바로 답을 해주었느냐고 묻자, 그 전날 휴가여서 일이 밀려 그 시각에 출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답신이 왔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덕분에 이 이후에는 구멍이 뚫리지 않고 큰 어려움 없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비행기로 이동을 할 때 하늘 사진을 찍기 위해 창가를 선호한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맑은 날이면 멀리까지 내려다 보이는 산과 강을 사진에 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는 오직 비행기를 탈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창가에 바짝 붙어 앉아 창 밖을 자주 내다 보곤 한다. 하지만 비행이 시작되고 식사 시간이 끝나니 창문의 차광막을 모두 내리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차광막을 내린 후 앞에 있는 모니터에 표시되는 운항정보를 보면서 현재의 비행기 위치를 확인하고 산맥 위를 지나거나 강이나 큰 호수 위를 지날 때에 살짝 차광막을 열고 사진을 찍었다.

노을에 비친 풍력발전기의 날갯짓이 독일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강국임을 느끼게도 하지만, 낭만적 풍경을 연출하는 데에도 한 몫을 하였다. Pentax K-3, 50 mm with 16-50 mm, 1/500 s, F/3.5, ISO 100.
노을에 비친 풍력발전기의 날갯짓이 독일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강국임을 느끼게도 하지만, 낭만적 풍경을 연출하는 데에도 한 몫을 하였다. Pentax K-3, 50 mm with 16-50 mm, 1/500 s, F/3.5, ISO 100.

비행기는 막 몽고를 벗어나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부근의 바이칼호에 접근하고 있었다. 창 밖을 보니 꾸깃꾸깃 접힌 산들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강물이 굽이치며 달리고 있었다. 조금 뒤에는 수면 위에 초가을의 햇빛이 부서지는 바이칼호의 남쪽 끝 부근을 날고 있었다. 자료(네이버 지식백과)를 찾아보니, 이 호수는 가장 깊은 오지에 있어 지구 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로 남아 있으며 최대 깊이가 1621 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라고 한다. 또 주변은 2000 m급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전 세계 민물의 1/5이 담겨 있다고 한다. 바이칼 호의 표면적은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있는 5대호의 13%밖에 안 되지만 물의 양은 5대호를 합친 것보다 3배나 더 많아 '세계의 민물 창고'라고 불린다고 한다.

드디어 착륙지인 독일 푸랑크푸르트 가까이에 접어들었다. 열린 흰 구름 사이로 도심이 모습을 드러내고 파란 하늘 위에는 한가위를 향해 살쪄가고 있는 흰 달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한다. 공항을 빠져 나와 마중 나온 차를 타고 자르브뤼켄까지 가는 아우토반 길가에서 저녁노을이 물든 독일의 풍경을 만났다. 생각해 보니 내가 27년 전쯤 연구소에 들어가 외국 학회에 처음 참석하기 위해 출장을 온 곳이 바로 자르브뤼켄이었다. 그 때는 서베르린을 통해 비행기로 이곳에 왔던 것 같은데 감회가 새롭다. 노을에 비친 풍력발전기의 날갯짓은 독일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강국임을 느끼게도 하지만, 낭만적 풍경을 연출하는 데에도 한 몫을 하였다. 마지막 붉은 노을 빛을 뒤로 하고 우리가 탄 차는 빠르게 자르브뤼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붉은 노을 빛을 뒤로 하고 우리가 탄 차는 빠르게 자르브뤼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제 9월이다. 안도현 시인이 노래하듯 이 9월에는 우리 모두가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모르는 남에게도 남겨줄 그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 Pentax K-3, 50 mm with 16-50 mm, 1/20 s, F/3.5, ISO 100.
마지막 붉은 노을 빛을 뒤로 하고 우리가 탄 차는 빠르게 자르브뤼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제 9월이다. 안도현 시인이 노래하듯 이 9월에는 우리 모두가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모르는 남에게도 남겨줄 그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 Pentax K-3, 50 mm with 16-50 mm, 1/20 s, F/3.5, ISO 100.

이제 9월이다. 안도현 시인이 노래하듯 이 9월에는 우리 모두가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모르는 남에게도 남겨줄 그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 (독일 자르브뤼켄에서)

9월이 오면/ 안도현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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