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탐방]화학연 연구원 창업 대덕벤처 'ISM'
전직원 5명이지만 첨단 분광기술로 세계시장 도전장
진승민 대표 "인류에 도움되는 기술·제품 제공하는 회사로"

지난해 9월 설립된 ISM 직원들. (왼쪽부터)진승민 대표, 양일승 연구소장, 배윤미 바이오사업팀장, 박성옥 재무회계팀장, 김유식 생산관리팀장. <사진=김형석 기자>
지난해 9월 설립된 ISM 직원들. (왼쪽부터)진승민 대표, 양일승 연구소장, 배윤미 바이오사업팀장, 박성옥 재무회계팀장, 김유식 생산관리팀장. <사진=김형석 기자>

첫째, 인류에 도움이 되는 기술과 제품을 제공하는 회사. 둘째, 구성원 개인의 능력과 꿈을 펼칠 수 있는 회사. 셋째, 행복한 개인생활을 최대한 영위하며 지속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회사. 넷째, 다섯째에 이어 열번째까지 있지만 끝까지 귀담아 듣는 사람은 적었다. 반응도 시큰둥했다. 

"창업을 준비할 때 회사의 비전과 방향을 설명하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똑같더라구요.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거죠. 표현은 여러가지였지만 저한테 얘기하려는 의미는 하나였습니다. 정신 차리라는 것. 정신 차려서 제대로 된 회사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비전인데 다들 미쳤다고 하니 조금 당황되더라구요(웃음)."

진승민 ISM 대표는 이 얘기를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인터뷰는 회사의 비전 얘기로 시작됐다.

◆이상 vs 현실

10개의 비전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자유로운 생각을 서로 존중하며 토론할 수 있는 회사', '이익을 사회에 기꺼이 돌려주는 회사'. 대놓고 물어보진 못했지만 솔직히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의문이 들었다. 이게 가능할까?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진 대표는 창업에서 회사의 비전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차례 강조했다. 

"원칙을 믿어요. 기업의 가치가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입니다. 비전은 기업의 전략과도 일맥상통해요. 그래서 창업을 준비할 때 만든 회사 비전 10계명은 나아갈 방향이자 전략이기도 합니다. 전략을 세운 뒤 조직을 어떻게 만들지 구상하고 인적·물적자원인 리소스가 무엇인지 고민하니 답이 나오더군요. 10계명 가운데 이미 몇 가지는 실천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한 켠에 마련된 기업부설연구소에서 양일승 연구소장(왼쪽)과 김유식 생산관리팀장이 각종 장비와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사무실 한 켠에 마련된 기업부설연구소에서 양일승 연구소장(왼쪽)과 김유식 생산관리팀장이 각종 장비와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ISM은 첨단 분광기술로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신생 벤처기업이다. 지난 2006년부터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진 대표가 지난해 9월 설립했다. ISM은 연구원으로 일하다 회사를 설립한 전형적인 연구원 창업 회사. 이 곳 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양일승 박사도 화학연 출신이다.

창업 1년. 직원도, 회사 규모도 아직 단촐하다. 진 대표와 양 소장을 포함해 배윤미 바이오사업팀장, 김유식 생산관리팀장, 박성옥 재무회계팀장 등 5명이 전부다. 화학연 제2연구동 1층 공간을 회사 사무실로 쓰고 있다. 매출도 아직 미미하다. '주력제품' 보다는 '주변제품'에서 일부 매출이 발생했을 뿐이다. 

◆현재 vs 미래

하지만 진 대표를 비롯한 ISM 구성원들은 자신감과 활기가 넘쳤다. 무엇보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ISM은 현재 혈관탐지장치, 단색화장치, 광원정렬기구, 광학부품정렬기구 등의 제품군을 형성하고 있다. 모두 화학연에서 연구했던 첨단 분광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적용·응용 분야만 넓히면 시장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진 대표의 설명이다.  

ISM의 혈관탐지장치. 비접촉식 분광장치를 이용해 혈관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사진=김형석 기자>
ISM의 혈관탐지장치. 비접촉식 분광장치를 이용해 혈관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사진=김형석 기자>
특히 주력제품인 혈관탐지장치(VPism)는 현재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 높은 관심을 보이며 시제품 요청이 증가하고 있다. 이 제품은 비접촉식 분광장치를 이용해 글자 그대로 혈관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진 대표는 어린 조카가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들이 혈관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고 '혈관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혈관을 잘 보이게 하는 아이디어로 시작했지만 오히려 혈관을 피해야 하는 성형외과나 피부과, 한방병원 등 의료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광대역 필터를 이용해 빛의 파장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단색화장치(BFism, FMism)도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이다. 원래는 다른 용도로 개발된 장비지만 최근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는 피부미용, 화장품 업계에서 많이 쓰인다.

각종 광학장치들의 광원을 조절해 일정하게 정렬시키는 광학정렬기구(LAism, PRism) 역시 주력제품인 혈관탐지장치의 본격적인 판매에 앞서 매출을 올려주고 있는 ISM의 효자상품이다.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으로 ISM은 오는 2017년까지 혈관탐지장치와 단색화장치 분야에서 총 225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전 세계 관련 분야 시장은 20조에 달한다. 중장기적으로 이런 세계 시장의 1% 점유가 목표다. 액수로 환산하면 2000억원에 달한다.

◆안정 vs 도전

진 대표는 안정된 연구원 생활이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후배인 양 소장 등과 함께 '도전'을 선택했다. 이유는 하나다. '기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제품을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고 사업화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기술이전과 창업. 기술이전의 경우 제품화를 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많아요.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 기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해야 몰입도가 높고 제품화의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특히 해당 기술이 인류의 삶과 행복에 도움이 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창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연구원 창업은 쉽지 않다. 위험요소도 많다. 연구원 창업의 핵심은 결국 기술이지만 '기술'만 보면 안된다는 것이 진 대표의 생각이다. 창업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순간부터 '연구'와는 전혀 다른 프로세스를 밟아야 한다. 기술이 '1'이라면 제품은 '10', 마케팅은 '100'이다.

ISM 진승민 대표.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9월 ISM을 창업했다. <사진=김형석 기자>
ISM 진승민 대표.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9월 ISM을 창업했다. <사진=김형석 기자>

"보통 창업을 연구활동의 연장으로 생각하기 쉽죠. 자신이 연구한 것을 현장에 적용시킨다는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창업은 연구와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그야말로 '사업'을 하는거죠. 기술만 봐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으면 뭐하겠습니다. 시장에서 그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결국 연구원 창업에서 기술은 기본적인 조건일 뿐입니다.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돈과 시장이죠."

ISM의 창업 준비과정과 창업 이후 행보를 보면서 진 대표의 비전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인류에 도움이 되는 기술과 제품을 제공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것이 그냥 허투루 한 얘기가 아니라 진정한 회사의 목표라는 사실을 느끼기 때문이다.  

◆동네축구 vs 스페인축구

진 대표는 창업을 준비할 때 만든 회사의 비전과 방향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관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은 5명에 불과하지만 2016년에는 20명 이상, 2017년에는 70명 규모의 회사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현재의 회사 조직도는 이 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ISM에서 생산하는 단색화장치. 광대역 필터를 이용해 빛의 파장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장치이다. <사진=김형석 기자>
ISM에서 생산하는 단색화장치. 광대역 필터를 이용해 빛의 파장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장치이다. <사진=김형석 기자>

인터뷰를 진행한 사무실의 화이트 보드에는 회의 내용이 가득했다. 한 귀퉁이에 '동네축구 vs 스페인축구'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무슨 얘기를 하면서 이런 글귀를 썼는지 궁금했다.

"동네축구는 혼자 다 하잖아요. 잘 하는 사람이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하고, 심지어 골키퍼도 보고. 반면 선진축구는 철저한 분업화를 추구하죠. 개인의 역량에 맞는 포지션과 역할이 주어지면 선수들은 그것에 충실합니다. 그리고 그런 개개인의 역할이 팀 전체의 실력으로 발휘됩니다. 얼마 전 회의를 하다가 역할분담 얘기를 하다가 나온 내용입니다. 작은 회사라고 동네축구를 하면 안되잖아요. 5명일 때 못하면 50명, 500명으로 커져도 못해요."

한 때 막강한 개인기와 조직력으로 세계 축구를 제패했던 '무적함대' 스페인. ISM은 팀원들의 철저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스페인축구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시장'이라는 그라운드를 누비며 세계의 강팀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는 ISM의 모습이 그려졌다.

참, 서두에서 빠뜨렸다. 진 대표의 회사 비전 10계명 중 맨 마지막은 '삶을 즐길 수 있는 회사'다.

한국화학연구원 제2연구동에 자리잡고 있는 ISM. <사진=김형석 기자>
한국화학연구원 제2연구동에 자리잡고 있는 ISM. <사진=김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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