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간 함께 연구하던 ETRI 연구원들 '뉴라텍' 창업
IoT 필수품 '와이파이 칩' 국산화…브로드컴·퀄컴과 경쟁
7개월 만에 60명 규모로 확대…150억원 투자유치도 성공

이석규 뉴라텍 대표(오른쪽)가 연구원들과 함께 '802.11ac' 기반으로 개발된 WiFi 칩 필드테스트 결과를 살펴보고 있다. 뉴라텍은 2015년 12월까지 '802.11ac' 기반 WiFi 칩의 필드테스트를 마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사진=최동진 기자>
이석규 뉴라텍 대표(오른쪽)가 연구원들과 함께 '802.11ac' 기반으로 개발된 WiFi 칩 필드테스트 결과를 살펴보고 있다. 뉴라텍은 2015년 12월까지 '802.11ac' 기반 WiFi 칩의 필드테스트를 마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사진=최동진 기자>
10여 년 간 함께 연구를 진행하던 출연연 연구실 팀원들이 통째로 창업에 나섰다. 앞으로 펼쳐질 사물인터넷(IoT) 시대 새로운 산업을 잡기 위해서다. 출연연 연구원들인 만큼 기술과 인력을 갖춘 것은 물론 창업 3개월 만에 150억원의 투자까지 유치해 '기술·인력·자본' 등 3박자를 갖췄다.

지난 2월 설립된 '뉴라텍(NEWRATEK. 대표 이석규)' 이야기다.

뉴라텍은 ETRI(원장 김흥남)에서 무선랜 칩을 연구하던 무선랜접속제어연구실과 무선랜전송연구실 연구원 28명이 창업한 회사다. 2개 연구실 총원 31명 중 개인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3명을 제외한, 사실상 연구실 전체가 '스핀-오프'한 사례다.

연구원 창업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창업 모델이란 점에서 출연연은 물론 과학기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벤처가 한국 법인 설립과 미국 법인(뉴라컴) 설립을 동시에 진행한 것도 독특하다. 뉴라텍과 뉴라컴은 'New Radio Communication for New Era'의 약자다.

16일 KAIST 문지캠퍼스 내 사무실에서 만난 이석규 대표는 "우리나라는 모바일산업에 있어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제조 강국인데 비해 근거리 무선통신의 핵심인 와이파이(이하 WiFi) 칩 설계와 제조는 전무하다"면서 "글로벌 5개 업체가 세계 시장의 90%를 독점하고 있다. 이들과 경쟁하고자 연구원들이 뜻을 모았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김서균 ETRI 기술사업화팀장은 "WiFi 연구인력의 대거 이탈에 따른 우려로 내부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면서도 "그동안 기술사업화는 중소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간접적 방식이 주를 이뤘다. 보다 부가가치와 성공가능성을 높여 새로운 기술사업화 트렌드를 만들어보자는 의지에서 적극 지원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김 팀장은 이어 "출연연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인 원천기술 개발이다. 우려가 몰린 부분"이라며 "그동안 협업해온 다른 부서 인력들을 중심으로 WiFi 등 무선통신 원천기술 개발 조직을 만들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WiFi 칩 시장은 IoT 확산에 발맞춰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WiFi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란 예견도 나오고 있다. 가트너 등 시장조사전문기업에 따르면 2015년 26억7000만개의 WiFi 칩이 필요하고, 2018년에는 35억2000만개의 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뉴라텍이 1차 개발을 끝낸 '802.11ac' 기반 WiFi 칩. 새끼손톱만한 작은 크기지만 IoT 시대 도래에 따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전망되는 핵심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된다. <사진=최동진 기자>
뉴라텍이 1차 개발을 끝낸 '802.11ac' 기반 WiFi 칩. 새끼손톱만한 작은 크기지만 IoT 시대 도래에 따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전망되는 핵심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된다. <사진=최동진 기자>

◆국제표준 선도하는 기술력…IP 제공으로 고수익 창출

뉴라텍의 주제품은 'WiFi 칩 설계기술'이다. WiFi 칩 전문회사지만 칩을 양산·판매하기 보다는 고객 맞춤형 칩 설계기술을 반도체 업체나 모바일기기 제조업체 등에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이다.

이들의 기술력은 그동안 ETRI 무선랜접속제어연구실과 무선랜전송연구실 성과가 입증한다. 2007년 10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정한 1Gbps보다 3.6배 빠른 무선통신기술 NoLA(New Nomadic Local Area Wireless Access)를 개발한 것을 비롯해 2011년에는 국내 유일의 WiFi 칩(802.11n)을 개발해 인증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모바일 단말기용 차세대 WiFi 칩인 '802.11ac'를 개발해 핵심기술을 확보했다. '802.11ac' 칩은 브로드컴과 퀄컴 등만이 개발한 최신기술 규격의 WiFi 칩으로 갤럭시S4와 아이폰 최신형 등에 사용되고 있다.

뉴라텍은 필드테스트를 거쳐 2015년 12월 상용화 제품을 출시한다는 목표다. 더불어 IoT 용 WiFi 센서칩 '802.11ah'를 비롯해 '802.11ax' 등 차세대 WiFi 칩 개발과 국제표준 확보에 주력할 방침이다.

특히 회사 구성원에 'IEEE 802.11/16' 표준화 의장단을 경험한 6명의 연구인력이 포진돼 있어 표준화를 통한 기술주도권 확보에 자신감이 높다.

이석규 대표는 "지난 10여 년 간 함께 연구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무선랜 관련 기술과 노하우가 있는 만큼 기술우위성을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상용기술을 개발해 세계시장을 선점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세계 시장의 5%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뉴라텍 연구원이 '802.11ac' 기반 WiFi 칩을 살펴보고 있다.(왼쪽) 연구실 곳곳에 '세계 최고 무선랜 기술로 정상에 도전하다'는 뉴라텍의 비전이 걸려 있다. <사진=최동진 기자>
뉴라텍 연구원이 '802.11ac' 기반 WiFi 칩을 살펴보고 있다.(왼쪽) 연구실 곳곳에 '세계 최고 무선랜 기술로 정상에 도전하다'는 뉴라텍의 비전이 걸려 있다. <사진=최동진 기자>

◆"ETRI 기술사업화 과정 큰 도움"…"10여 년 팀워크가 경쟁력"

앞서 언급한대로 뉴라텍은 2월 창업한 뒤 4월 15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ETRI 출신 창업멤버 28명 외에 추가로 30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했다. 6개월 만에 빠른 속도로 규모가 확대됐음에도 안정화 단계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김길원 부사장은 "지난해 8월 말 창업에 뜻을 모은 뒤 ETRI 내부의 ABC 창업단계를 거쳤다"면서 "덕분에 시작부터 기술력 외에 마케팅과 경영 분야도 챙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뉴라텍은 초기부터 변리사 2명, 법학박사 1명, 미국변호사 1명 등 특허전문인력과 마케팅 및 경영관리인력을 참여시키고 있다.

또 추가 충원된 인력 역시 퀄컴, 브로드컴, 화웨이, 삼성전자, LG전자, SKT 등 글로벌 기업 출신이다.

김 부사장은 "연말까지 직원을 70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라며 "우리도 이력서를 받고 깜짝 놀랄 정도의 인물들이 많았다. 뉴라텍이 보유한 기술력과 사업모델의 성공가능성을 인정해준 것이라고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창업 2달된 벤처에 150억원을 투자한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는 "10년 넘게 같은 분야에서 일한 연구원들이 함께 창업했다는 것을 가장 큰 경쟁력으로 봤다. 프리젠테이션을 본 뒤 그 자리에서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철 대표는 이어 "수익보다는 가치에 투자한다. 뉴라텍이 개발하고자 하는 기술은 세계적 트렌드로 반드시 가야 할 기술"이라며 "회사 가치를 1000억원으로 보고 15% 지분에 투자했다"고 부연했다.

이석규 대표는 "국내 업체들이 모바일기기 제조에는 강하지만 핵심 칩 생산기술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면서 "국산 칩 생산 가능성이 제시되는 것만으로도 국내 대기업들의 협상력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세계 시장 선도 못지않게 뉴라텍이 가진 의미"라고 강조했다.

김흥남 ETRI 원장은 "출연연 연구원들의 팀창업은 각각 연구원들이 보유한 우수 기술과 지식을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해 단기간 내 산업현장에서 우수 제품으로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뉴라텍 사례가 창조경제 실현의 대표 성공모델이 돼 다른 출연연과 대학으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ETRI 연구실에서 함께 근무하던 28명의 연구원들이 창업한 뉴라텍. 직원들이 회사가 위치한 KAIST 문지캠퍼스에서 각오를 다지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뉴라텍>
ETRI 연구실에서 함께 근무하던 28명의 연구원들이 창업한 뉴라텍. 직원들이 회사가 위치한 KAIST 문지캠퍼스에서 각오를 다지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뉴라텍>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