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대덕벤처 E&P '소형 풍력발전기'로 세계시장 도전
출연연과 공동 개발…최남현 대표 "세계시장을 보라…IT+제조업이 대세"

제품전시회에 참가한 E&P의 홍보부스에서 해외 바이어가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인 풍력발전기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E&P 제공>
제품전시회에 참가한 E&P의 홍보부스에서 해외 바이어가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인 풍력발전기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E&P 제공>

정보통신기술(ICT)과 제조업의 융합이 대세다. 구글, 애플 등은 이미 ICT와 제조업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구글은 이제 인터넷 서비스 회사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만들고 무인자동차와 무인항공기를 만든다.

반면 우리나라는 ICT와 제조업의 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경계가 뚜렷하다. '창조경제'를 국정운영으로 내세우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구조를 외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구호'로만 들릴 뿐이다. 

이런 가운데 대덕의 한 신생 벤처기업이 ICT를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SW)와 제조업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소프트웨어 회사지만 고부가가치의 기계 제품으로 국내는 물론 전세계 신재생 에너지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업종 변경 고민하다 '기계제조업'의 세계 발견

화제의 주인공은 대덕테크노밸리에 입주해 있는 '이앤피(E&P).

E&P의 주력 제품은 풍력발전기다. 하지만 회사는 분명 소프트웨어 업체다. 풍력발전기를 만드는 소프트웨어 회사?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남현 대표에게 '도대체 어떤 회사냐'고 돌직구를 던졌다.

"소프트웨어 회사인 동시에 제조업체로 보시면 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소프트웨어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죠."

E&P는 2013년 3월 설립됐다. ICT 기반의 소프트웨어 개발·서비스로 시작했다. 기업·기관 홈페이지나 CMS(컨텐츠관리시스템) 등 각종 웹시스템을 개발하고 구축해 제공한다. 지난해 우리마이크론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프로젝트 관리의 공정차트 설계시스템 특허를 출원한데 이어 올해는 아이캔, 문화산업진흥원 스마트벤처창업학교 홈페이지 등을 만들었다. 현재 한국기계연구원 중소기업지원 통합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제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최남현 대표는 "이제야 기업을 운영하고 사업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사진=김형석 기자>
제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최남현 대표는 "이제야 기업을 운영하고 사업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사진=김형석 기자>

"우리나라가 IT 강국이고, 우리 회사의 개발자들이 우수하기 때문에 크지는 않아도 이 분야에서 꾸준하게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로는 기업 성장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분야로의 진출을 계속 모색했고, 그래서 찾게 된 것이 기계분야입니다. 일단 하나의 제품만 성공하면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죠."

E&P는 우선 '도로변에 설치되는 집풍형 풍력발전장치'와 '집풍형 풍력발전장치'의 국내외 특허를 확보했다. 또 한국기계연구원과 공동 연구개발사업에도 착수했다. 특허기술과 회사의 강점인 소프트웨어 기술을 결합해 소형풍력발전기를 개발했다.

풍력발전의 가장 큰 문제는 소임이다. E&P에서 개발한 풍력발전기는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기존의 풍력발전기가 바람을 자르는 방식으로 동력을 얻는데 반해 E&P의 제품은 바람을 안고가는 '집풍형' 방식이다. 풍력발전기 날개(블레이드)도 내구성 강한 신개념 소재로 만들었다.   

"지원사업에 수차례 지원했지만 번번히 탈락했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무슨 기계제품을 만드냐는 거죠. 기계제품을 가동시키는 것이 결국 소프트웨어고, 그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는 만큼 기존의 기계제품에 적용하면 더 우수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믿어주질 않더군요. 결국 그것을 이해해준 것은 출연연 박사들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야 우수한 기계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확신했고, 그걸 믿어주는 사람들을 만난겁니다."

◆'석유가 물보다 싼 나라'에 신재생에너지 발전기기 수출

E&P는 아예 처음부터 시장을 해외로 잡았다. 국내는 시장이 작은데다 회사 인지도도 높지 않아 진입장벽을 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지원으로 시행하는 해외전시회 등에 꾸준히 참여해 제품의 특징을 설명하고, 무엇보다 소프트웨어를 전문으로 했던 회사이기 때문에 풍력발전기 설치 이후 가동과 운영 면에서 안정적이라는 장점을 부각했다.

E&P에서 개발한 저소음·집풍형 신개념 육상 풍력개발기 모델. <사진=E&P 제공>
E&P에서 개발한 저소음·집풍형 신개념 육상 풍력개발기 모델. <사진=E&P 제공>

이 전략은 주효했다. 먼저 아랍국가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해 요르단, 이집트 등에서 러브콜을 보내왔다. 오는 10월 시제품이 나오면 우선 100대를 보내기로 계약을 맺었다. 풍력발전기 1대당 가격은 2000~3000만원. 더 욕심을 낼 수 있지만 자체적으로 양산체계를 갖추지 않고 있는 만큼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성능과 제품의 질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야말로 석유가 물보다 싼 나라들이죠. 강한 태양과 바람 등 천혜의 자연조건도 갖고 있지만 그동안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권 규제가 강화되고 이들 나라도 세계적 추세에 맞춰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일부 의무화하기 시작했어요. 풍력발전 등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거죠. 타이밍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최 대표는 벌써 다음 제품을 구상하고 있다. 그것은 자동차 분야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소프트웨어 회사가 만든 풍력발전기가 얼마나 성능이 우수하고 안정적인 운영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입증한 후의 일이다.

최 대표가 회사를 운영한 지 10년이 됐다. 처음으로 사업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는 "요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산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제야 '비즈니스'를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그동안 회사는 운영해 왔지만 사실 사업이라는 표현을 쓰기 민망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냥 '장사'를 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기계라는 새로운 분야를 찾고, 그동안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여기에 접목하면서 이제야 글자 그대로 내가 '사업'을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어요. 피곤해서 아침에 얼굴이 매일 부어요. 그래도 너무 재미있습니다."

E&P는 소프트웨어 회사다. 풍력발전기를 만들지만 전량 외주로 제작해 공장도 없다. 양산을 위한 공장은 내년쯤 설립할 예정이다. <사진=김형석 기자>
E&P는 소프트웨어 회사다. 풍력발전기를 만들지만 전량 외주로 제작해 공장도 없다. 양산을 위한 공장은 내년쯤 설립할 예정이다. <사진=김형석 기자>

◆"IT 회사가 제조업해야 성공가능성 높아"

최 대표는 창조경제니, IT와 제조업의 융합이니, 플랫폼이니 하는 용어의 뜻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런 용어들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막연하게 얘기로만 듣던 이런 일들을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니라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짧은 기간이지만 깨달은 교훈도 많다.

"IT와 제조업의 융합이라고 하면 IT 하는 업체와 제조업을 하는 업체가 손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규모가 크고 돈이 많은 회사라면 인수·합병 등의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기계적인 융합이나 결합은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해요. 둘 중의 하나입니다. 제조업을 하는 회사가 IT를 선택하든지, IT를 하는 회사가 제조업을 하든지. 그런데 업종의 특성상 IT 하는 회사가 제조업을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고 부가가치가 큽니다. 지금 세계적인 기업들의 추세도 그렇구요."

소프트웨어에서 제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E&P의 도전은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었다. 그것도 '석유가 물보다 더 싼' 아랍국가를 상대로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 제품인 풍력발전기 수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창업 1년, 전직원 7명의 작은 벤처에게 이것은 그야말로 모험이자 도전이다. 그런데도 최 대표는 자신감이 넘쳤다.  

"3년 전부터 시장의 흐름과 업계의 변화를 눈여겨 봤습니다. 구글과 애플, 삼성 등 굴지의 기업들의 어떤 제품을 어떤 과정으로 만들었는지 살펴보기도 했구요. 정답은 역시 소프트웨어와 제조업의 결합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결합을 어떻게 이뤄내느냐죠.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았다고 해야할까요? 그래서 두려움보다는 즐거움이 커요. 지켜봐주세요. 소프트웨어 회사가 어떻게 제조업 분야에서 시장을 장악해 가는지."

E&P 출입구. 지금은 테크노밸리의 한 작은 사무실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작은 벤처기업이다. <사진=김형석 기자>
E&P 출입구. 지금은 테크노밸리의 한 작은 사무실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작은 벤처기업이다. <사진=김형석 기자>

 

제품전시회에 참가한 최남진 대표. <사진=E&P 제공>
제품전시회에 참가한 최남진 대표. <사진=E&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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