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금형업계 기술산파 ‘태우’…센서·필터 케이스 제품 주력 생산
이선호 대표 IMF·암판정 두차례 위기 극복하고 '금형 살리기' 앞장

태우의 공장 전경. 뿌리산업인 금형업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첨단기기들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태우의 공장 전경. 뿌리산업인 금형업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첨단기기들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80년대 중반, 대전은 열처리 금형의 불모지와 다름없었다. 뿌리산업인 금형·사출 업체 대부분은 손으로 직접 작업하는 수공업 형태였다.

대전 테크노밸리에 둥지를 틀고 있는 플라스틱 금형·사출 전문업체인 태우의 이선호 대표는 이 때 대전에 내려왔다. 당시 지역의 큰 기업에 대량으로 납품할 금형제품이 있었는데 대전에는 해당 기술을 갖고 있는 업체가 없었다.

이를 위해 수도권의 금형 전문 엔지니어 3명이 1년간 계약을 맺고 대전에 내려왔다. 그들과 함께 일하며 열처리 금형을 배운 사람들이 지금 대전 금형업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대표 역시 그들에게서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금형기술을 배웠다.

"대전에서 금형·사출의 2세대가 그 때 탄생했죠. 1세대가 그야말로 혼자서 모든 과정을 손으로 했다면 2세대는 열처리 금형에 발전된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지금은 3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내수공업 형태의 뿌리산업에서 벗어나 첨단산업으로 전환하는 중이죠. 곧 4세대가 활동하는 시대가 될 겁니다. 그야말로 차세대 첨단금형이라고 할 수 있겠죠."

◆대전금형RIS사업단 시제품 생산 지원사업으로 신제품 출시

이 대표는 80년대 중반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1990년 태우를 설립했다. 주력제품은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센서 케이스와 기능성 샤워기에 사용되는 필터 케이스. 센서 케이스는 글자 그대로 TV나 청소기 등의 센서를 장착하는 케이스다. 태우를 키운 효자제품이었지만 역시 저가로 시장을 파고드는 중국 업체들의 공세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장이 줄고 이윤도 줄었다. 하지만 플라스틱 사출 제품인 센서 케이스는 지금도 한 달에 100만~200만개를 생산할 정도로 수요가 있다.

태우에서 생산하고 있는 금형사출 제품. 왼쪽이 대전금형RIS사업단의 시제품 생산지원사업을 통해 개발한 기능성 샤워기 필터 케이스. 오른쪽은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센서 케이스.
태우에서 생산하고 있는 금형사출 제품. 왼쪽이 대전금형RIS사업단의 시제품 생산지원사업을 통해 개발한 기능성 샤워기 필터 케이스. 오른쪽은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센서 케이스.

최근 태우가 집중하고 있는 제품은 필터 케이스다. 물을 틀면 향이 나오는 기능성 샤워기가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 제품의 핵심은 향을 내는 필터다.

이 필터를 담고 교환할 수 있는 케이스를 태우가 플라스틱 사출로 만든다. 특히 이 제품은 대전금형RIS사업단의 시제품 생산지원사업을 통해 개발됐다. 지난 6월부터 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필터 케이스 뿐 만 아니라 튤립형 기능성 샤워기를 자체 디자인하기도 했다.

최청림 대전금형RIS사업단 부단장(한남대 산학전담교수)은 "태우의 경우 대전의 금형·사출 업체 중 기술과 신제품 개발을 통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라며 "제품개발은 완료했지만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의 금형업체와 금형관련 기업을 지원하는 시제품 생산지원사업을 통해 제품을 상용화하고 매출을 높이고 있는 모범사례"라고 설명했다.    

◆IMF 때 문닫고 재기 성공할 때쯤 ‘혈액암’ 판정

태우는 창업 이후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회사를 크게 키울 수도 있겠다는 부푼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그것도 남들은 극복하기 힘든 큰 시련을 두 번이나 겪었다. 첫 번째 위기는 IMF. 태우와 같은 작은 업체로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잠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 대표는 재기하기로 결심했다. 기술력과 신뢰도가 높아 회사는 빠른 시간 내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병마가 이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 7년 전 '혈액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힘들게 다시 문을 열었던 만큼 이번에는 그냥 접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회사운영을 맡기고, 이 대표 자신도 병원에서 항암제를 맞으며 회사 업무를 챙겼다.

태우를 운영하고 있는 이선호·김지수 대표 부부. 이 대표는 한 때 혈액암 판정을 받고 5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했다. <사진=김형석 기자>
태우를 운영하고 있는 이선호·김지수 대표 부부. 이 대표는 한 때 혈액암 판정을 받고 5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했다. <사진=김형석 기자>

"당시 입원해 있던 의사들이 저에게 묻더군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병원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일하냐고. 병실에 누워 항암제를 맞으면서 새로 들여올 기계의 도면과 공장도면 등을 펼쳐놓고 밤늦게까지 일하곤 했으니 아마 의사들도 제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을 거예요(웃음).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그렇게 일했던 것이 암과 싸우는데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암에 걸렸다고 그냥 풀죽어 있었다면 이렇게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병세가 호전돼 항암치료를 끊은 지 이제 3년째다. 아무리 동분서주했지만 투병과 회사경영을 동시에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 때 같이 금형업계에서 주목을 받던 다른 3개 업체는 모두 합쳐 2,00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회사가 커졌다. 이 대표는 배가 아프기보다 흐뭇했다. 그게 어떤 업체가 됐든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던 금형기업들이 성장했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전 금형산업 수준을 전체적으로 높여야”

두 차례의 위기를 극복하고 도전을 반복하면서 이 대표의 '철학'도 달라졌다. 바로 ‘혼자 잘 나가기보다 같이 잘 나가기’다. 함께 커야 시장도 확대되고 기술력도 높아지고, 이것이 결국 개별 기업의 매출과 이익 증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지역 내 금형 산업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평균 매출액 50억 원, 고용인원 10명 미만의 단순생산형 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술향상에 쏟을 여력이 없다보니 수요의 90% 이상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간다. 한 두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대전지역 금형기업 전체의 매출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수도권을 비롯해 대구, 광주, 부산, 울산 등은 전자·자동차·선박 등 인접한 대기업이 많아 금형 수요가 적지 않다.  

"대전의 금형·사출 기술력은 여전히 다른 지역에 비해 그렇게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경기도 등 다른 지역에 일을 뺏겨요. 더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게 우리만 잘 살자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기술력도 높이고 시장도 넓힐 수 있도록 함께 힘과 지혜를 모으자는 거죠. 후진양성도 하구요. 대전의 금형·사출업계 전체의 수준을 높여야 개별 기업의 수준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태우는 금형가공기기를 도입해 첨단화를 꾀하고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태우는 금형가공기기를 도입해 첨단화를 꾀하고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생각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실행에 옮겼다. 뜻을 같이 하는 기업들과 함께 대전금형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곳의 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조합에서는 영업활동도 공동으로 하고, 가업을 이으려는 2세들을 모아 후진양성도 하고 있다. 대전지역 금형업계의 미래 발전방향도 공동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 대표는 "대전의 금형산업은 열처리 기술을 도입해 20년 정도 유지해 왔다. 이제는 초정밀 금형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때가 됐다"며 "우리 회사만 잘 나가서는 안 되고 사실 그렇게 되기도 힘들다. 이제는 대전의 금형산업 전체 수준을 높이는 일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부단장은 "이러한 이 대표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이런 공동의 노력과 함께 태우 같은 기업이 견인차 역할을 해서 다른 대전의 금형가공기업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대전금형RIS사업단도 1단계 사업을 통해 기초 다지기에 주력했다면 올해부터 본격화된 2단계 사업에서는 매출 다변화 등 성공모델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금형RIS사업단 ‘시제품 생산 지원사업’은?=한남대 산학협력단의 대전금형RIS사업단에서 대전지역 금형 및 금형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제품개발은 완료했지만 상품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게 시제품 생산 지원을 통해 상용화를 촉진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하고, 기술경쟁력과 매출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됐다.

 제품 개발을 완료하고 시제품 제작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 금형산업 관련 기업체와 본사나 사업장이 대전에 위치한 기업이면 지원신청을 할 수 있으며 5명 안팎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지원 대상을 결정한다. 사업기간은 협약일로부터 70일 이내이며 업체당 지원한도 내에서 시제품 제작비의 최대 80%, 또는 1000만원을 지원한다.

대전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태우. <사진=김형석 기자>
대전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태우. <사진=김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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