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목적에 자유로울 수 없었던 리위안저 박사 "영향력 때문에 많은 압박"
과기계 "수상 이후에도 연구자 모습 보여줘야"

리위안저 박사는 1986년 대만 출신 중국인 과학자중 처음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교수로 재직한 그는 화학기본반응 동력학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공로로 허슈바흐, 폴러니 교수와 함께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사실상 이 상은 미국이 받은 것과 다름없었지만 수상직후 노벨상 수상자가 누릴 수 있는 지원과 특권을 고사하고 미국 국적도 포기한 채 모국으로 돌아간 리위안저 박사는 대만의 영웅이 됐다. 

그가 대만으로 돌아간 이유는 오로지 고국을 위해 뭐든 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는 대만 중앙연구원장을 역임하면서 과학계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각 국의 젊은 과학영재를 키우는데 앞장서고 있다.

여기까지는 훈훈한 이야기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이 있다. 

그의 연구 분야에 쏠림현상이 심화됐다. 연구의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했다는 점과 무엇보다 정치에 관여한 탓에 그가 몸담고 있는 연구기관까지 그 여파가 직접적으로 미쳤다.

대만의 영웅이었던 리위안저 박사는 10여 년 전 총통 선거에서 후보자인 천수이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그러자 천수이볜의 반대세력 정치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그가 원장으로 있는 중앙연구원의 예산통과를 유보하는 등 불쾌한 심정을 드러낸 것이다.

반대 정치인들은 예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리위안저 박사를 하루 종일 추궁하는 등 정치적으로 과학기술활동을 악화시키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그 전까지는 예산 심의과정은 통상적으로 예산에 대한 설명을 청취하는 것에 그쳤었다.

결국 중앙연구원은 연구원을 채용하지 못해 10여개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없었고, 큰 예산이 요구되는 다른 일들도 올 스톱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치와는 별개로 움직여야하는 과학기술이 정치에 휘둘린 안타까운 사례이다. 그가 지지했던 총통은 임기를 마치고 감옥행을 했다.

천수이볜 총통이 행정원장과 부통령직을 리위안저 박사에 권유했지만 "과학자의 길은 따로있다"며 사양한 것을 보면 리위안저 박사는 정치에 큰 뜻은 없었던 듯하다. 그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한 연구자도 "너무 훌륭한 과학자"라는데 이견이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노벨상 수상자와 같이 슈퍼스타가 나타나면 슈퍼스타를 이용하려는 세력이 어디선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 언론매체 인터뷰에서 리위안저 박사는 "노벨상 수상자는 힘이 세다. 수상 이전에 내가 공부하는 사람이었다면, 이후에 난 대만의 과학적 상징이 됐다. 영향력 때문에 많은 압박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관료주의사회에서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밖에 없었던 과학자의 입장을 이 말을 통해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 "노벨상 수상자 오히려 독 될수도"

노벨과학상 수상의 계절이 오면 늘 나오는 말이 "우리는 언제 노벨상을 탈 수 있을까"이다. 노벨과학상은 우리가 염원하는 상이기도 하지만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스스로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다.

얼마 전 이덕환 서강대 교수와 통화를 한 적 있다. 이 교수는 "대만도 우리처럼 관료주의 사회다. 노벨상 수상자를 관료들이 이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슈퍼스타를 키워야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자칫 슈퍼스타가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처럼 관료주의 사회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면 자의든 타의든 정치적 영향력이 발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한 차례 겪은 황우석 사태를 보면 예상할 수 있다.

과거 황 교수의 줄기세포 배양소식이 전해지면서 과학계보다 정치권이 더 들썩였다. 국회는 과학기술분야 우수연구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을 만들겠다고 나섰는데 실상은 '황우석 지원 특별법'이었다. 여야는 앞다퉈 황 교수의 성과를 모든 수단을 통해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법을 개정해서라도 황 교수의 연구를 최대한 뒷받침할 것이라는 공언을 연발했다.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성과가 허위사실로 드러나면서 여야 프로젝트는 무산됐지만 변함없는 것은 그의 연구성과 하나로 정치권이 들썩였다는 점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면 어떻게 상황이 흘러갈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덕환 교수는 "이런 괴리를 해결하지 않으면 노벨상 수상자는 오히려 우리나라에 독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면서 "연구자가 아무리 훌륭해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이용하려고 하면 오히려 민폐를 끼칠 수도 있다"며 노벨과학상을 수상하기 이전 현재 우리 모습을 재점검 할 필요가 있음을 피력했다.

◆ "노벨상 수상 후에도 연구자 모습 보여줘야"

노벨상 수상자는 어떤 행보를 걸어야할까. 과학자들은 '연구자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대학 교수는 "노벨상을 수상하면 전 세계를 정신없이 뛰어다니게 된다"면서 "그러나 그분들이 연구자로서 리드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갑작스럽게 유명인사가 되더라도 학문에 있어서는 더욱 겸손한 모습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이미 과학자이자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치와 정신, 문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소에서 은퇴한 한 원로 과학자는 "노벨상 수상자 랩에서 연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귀감이 됐다"며 현장을 지키는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출연연 A 박사는 "노벨상이 목표이자 결과가 되선 안된다.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라면 수상 이후에도 연구를 지속해야한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연구원은 "노벨상 수상자의 존재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며, 과학기술계가 재도약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과기계를 이끄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리위안저 박사 사례처럼 기초분야는 롱텀이 필요한 만큼 노벨상을 받았다고 해서 특정분야로 연구가 치중되는 것을 막아야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일본 시마즈제작소의 평범한 셀러리맨인 다나카 고이치는 지난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후 관리직에 오르면 현장을 벗어나게 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적극적으로 승진을 하지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현재 시마즈제작소 소속으로 노벨상 수상을 기념해 설립된 '다나카 고이치 기념 질량분석 연구소'에 소장으로 취임했다. 

우리나라에서 평범한 셀러리맨 중 노벨과학자상 수상자가 배출됐다면 어땠을까. 노벨상을 염원하기 앞서 우리가 순수한 과학자들을 한낱 정치나 도구로 활용하지 않는 준비된 문화를 먼저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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