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홍성욱·장대익·이중원의 '과학으로 생각한다'
'과학 속 사상·사상 속 과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교양과학서
위대한 과학자와 과학적 성과 속에 담긴 인문학적·사회적 함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뉴턴'. 블레이크의 이 그림은 이성의 상징인 컴퍼스의 간단한 작도로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책 본문 중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뉴턴'. 블레이크의 이 그림은 이성의 상징인 컴퍼스의 간단한 작도로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책 본문 중에서>

"나는 촌에서 태어나, 촌에서 공부하고, 촌에 있는 기업에 취직해 노벨상을 탔다."

나카무라 슈지 교수는 며칠 전 노벨물리학상 공동수상자로 확정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벨상' 자체보다 정작 부러운 것은 이런거다. 물론 그 역시 청춘을 바쳐 개발한 청색 LED의 성과를 회사에 모두 빼앗기는 억울한 일도 당했다. 심지어 '연구를 중단하라'는 압력도 받았다. 하지만 일본의 이런 환경이 노벨상 배출의 힘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에둘러 말하지 말자. 그냥 이런 게 선진국이다.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한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노벨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덜거덕거리는 세탁기를 고치고 있다가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일본 국민들은 또 한 번 웃었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일본 각료 16명이 1만 엔씩 갹출해 야마나카 교수에게 세탁기를 선물하기로 했다는데 실제 전해줬는지는 모르겠다. 노벨상에 편승해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며 여론의 반응이 싸늘했기 때문이다. 어디가나 정치인들의 '밉상짓'이란 비슷하지만, 노벨과학상을 한 명도 배출 못한 우리로서는 이런 밉상짓도 부러울 뿐이다.

과학은 문화다. 수 조원의 예산을 쏟아붓고, 수많은 정책을 쏟아내고, 이런저런 조직을 만들어도 문화로서의 과학, 교양으로서의 과학이 뿌리 내리지 않으면 열매를 맺기 어렵다. 노벨상은 그런 토양에서 숨죽여 자라다가 때가 되면 만개하는 꽃이다. 뿌리없이 줄기가 자랄 수 없으며, 줄기가 부실한데 열매 맺고 꽃 피기 바라는 것은 부질없다.

가끔 '왜 우리는 노벨상을 받지 못하냐'는 질책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마치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한테 그만큼 지원해주고, 응원해주는데 왜 월드컵에서 우승을 못하냐는 질책과 같다. 브라질이 매년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이유는 축구가 문화이기 때문이다. 

괴델과 아인슈타인(오른쪽). 이 두 학자는 수십 년 동안 삶을 함께 한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사진=책 본문중에서>
괴델과 아인슈타인(오른쪽). 이 두 학자는 수십 년 동안 삶을 함께 한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사진=책 본문중에서>
이상욱 한양대 교수는 강의실에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큰 자괴감과 실망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근데요, 자연대나 공대 학생도 아닌데 우리가 왜 과학책을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뭐 재미는 있지만 그렇게 전문적인 것까지 꼭 알아야 하나요?" 하지만 학생들만 탓할 수는 없다. 이 교수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그 친구를 탓할 생각은 나질 않았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그랬다. 세상에는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이 있고, 문과적 주제와 이과적 주제가 있다고 배웠다. 이과생들은 교양을 쌓기 위해 역사나 철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지만, 문과생들은 요약정리 이상으로 자세하게 과학이나 기술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왔다. 역사나 철학은 대학 교양과목으로 자리를 잡았지만(이마저도 최근에는 흔들리고 있지만), 과학이나 기술을 교양과목으로 채택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이 교수는 유럽에서 공부할 때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유럽에서 과학은 문화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과학책이 소설책만큼 잘 팔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과학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드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아주 가끔 1위를 차지하기도 하는데 그 일을 두고 야단법석하는 일도 없다. 학구적인 사람이라면 빅토리아 시기의 풍습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그 시기의 사람들이 몰두했던 박물학적 관심으로, 그리고 다윈의 비글호 여행과 그 이후 전개된 사상사적 소용돌이로, 거기서 다시 수잔 바이어트의 소설 '소유'의 감동적인 로맨스로 옮겨간다."    

'과학으로 생각한다(동아시아 刊)'는 과학을 연구하고, 과학을 따졌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야말로 '과학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과학에 대한 친숙함은 그들이 살던 시대,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일반적으로 갖추고 있던 소양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자신의 과학 연구가 갖는 인문학적, 사회적 함의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이 과학적으로 본 세계관은 하나의 '사상'이 되기도 했다.

실제 뉴턴은 자신의 만류인력 법칙에서 신의 뜻을 읽으려 했다. 다윈은 자신의 자연선택 이론에서 제국주의의 냉혹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계층 갈등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의 생각은 그 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공지능에 대한 튜링의 생각은 컴퓨터의 발전과 마음과 물질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유전자가 인간의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도킨스와 굴드, 그리고 르윈틴의 논쟁은 정부주도적 사회정책의 효과에 대한 논쟁으로도 이어진다.

이 책은 이상욱 한양대 교수, 홍성욱 서울대 교수, 장대익 KAIST 교수, 이중원 서울시립대 교수 등 4명의 과학철학자가 지난 2005년 한겨레신문에 '과학 속 사상, 사상 속 과학'이라는 기획으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10년 전에 썼는데도 글의 메시지와 지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지금의 어지러운 시대상황에 부합한다. 책 속에서 다룬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괴델, 비트겐슈타인, 칼 포퍼, 스티븐 제이 굴드, 토머스 쿤 등의 과학적 사상과 철학은 시대에 관계없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리한 과학적 체계는 그 시대뿐 아니라 지금도, 앞으로도 자연과 인간, 사회와 세상, 지구와 우주, 삶과 인생을 논하는데 강력한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다.

특수 상대성이론에서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 자동차가 수축되어 보이는 현상(오른쪽)을 보여주는 시물레이션. <사진=책 본문 중에서>
특수 상대성이론에서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 자동차가 수축되어 보이는 현상(오른쪽)을 보여주는 시물레이션. <사진=책 본문 중에서>

물론 익히 들었던(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얘기들이다. 근대 과학 혁명은 아이작 뉴턴으로 완성된다. "1665년 어느 가을날 저녁,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달을 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바로 그때 사과 한 개가 떨어졌다. 뉴턴은 떨어진 사과를 쳐다보며, 받쳐주는 것이 없으면 모든 물체는 떨어지기 마련인데, 왜 달은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했다." 너무도 유명한 이 '뉴턴의 사과' 일화는 현재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이 일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바로 사과의 운동과 행성의 운동을 만유인력 아래로 포섭해 가는 뉴턴의 상상력이다.

다윈은 문제아였다. 심지어 아버지로부터 "사냥질, 개, 쥐잡기에나 관심 있는 너는 가족과 네 자신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될 거다'라는 폭언을 듣기도 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신학을 공부하러 갔지만 그의 마음은 늘 다른 곳에 있었다. '어떻게 해야 영국을 떠나 생명이 우글대는 열대림을 탐험할 수 있을까?'. 인류에게 '적응'이라는 화두를 처음으로 던진 다윈이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주변환경과 늘 불화한 '부적응자'였던 셈이다. 다윈은 우여곡절 끝에 비글호에 승선했고 갈라파고스 군도를 탐험한다. '종의 기원'은 그렇게 탄생했다.

17세기 과학혁명에 뉴턴이 있었다면 20세기 과학혁명에는 아인슈타인이 있다. 뉴턴이 근대 과학혁명을 완결하고 고전물리학을 확립해 모든 과학의 전형을 창출했다면, 아인슈타인은 300년간 지속되어 온 뉴턴 패러다임을 종식시키고 20세기 현대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지난 세기의 과학적 연구성과들을 송두리째 뒤흔들 세 편의 논문을 스위스 '물리 연감'에 발표했다. 광양자 가설, 브라운 운동 이론, 그리고 특수 상대성 이론이 그것이다.

과학으로 생각한다. 이상욱 外. 동아시아.
과학으로 생각한다. 이상욱 外. 동아시아.
놀라운 사실은 당시 아인슈타인은 박사학위도 받지 못하고, 뛰어난 학문적 업적도 없었으며, 스위스 특허국에서 검사관으로 일하던 26살의 젊은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 청년의 논문은 세상을 놀래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저명한 물리학자였던 루이 드보로이는 그의 논문을 읽고 "한밤의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로켓이 광대한 미지의 영역에 짧지만 강력한 광채를 갑자기 드리웠다"고 술회했다. 아인슈타인의 논문들이 고전물리학에서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책은 뉴턴과 다윈, 아인슈타인, 괴델을 거쳐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선, 스티븐 제이굴드, 리처드 르윈틴, 토머스 쿤, 부뤼노 라투르, 도나 해러웨이로 이어진다. 근대 과학혁명으로부터 출발해 진화론, 상대성 이론, 양자 이론, 분자생물학, 논리 실증주의, 유전학과 우생학, 사회구성주의, 정치생태학을 거쳐 '과학 전쟁'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과학'이라고 배웠지만, 저자들은 이것을 '교양'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인물과 논쟁을 누구나 읽고, 즐기고, 배우는 사회. 그것이 저자들이 꿈꾸는 '과학이 문화인 사회'다.   

노벨상 시즌, 이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과학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 될 것이다. 위대한 과학자들의 남긴 업적이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해석하는데도 한국에서 이들의 업적은 '교과서'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만 알면 되는 내용이라고 치부된다. 그렇게 해서는 '문화로서의 과학'은 불가능하다. 과학이 문화인 곳이 선진국이다. 그런 곳에서 노벨상이 나온다. 교양으로서의 과학, 문화로서의 과학 읽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감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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