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풍경은 아마도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유채꽃이 만발한 것이리라. 쪽빛 바다에 대비된 무리지은 노란 꽃은 보는 이들에게 몽환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이런 유채를 다른 종으로부터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이 있다. 바로 배추와 양배추의 교배를 통해서다.  배추와 양배추는 엄연히 다른 종이므로 일반적인 교배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콜치신이란 물질을 이용하여 배추와 양배추의 염색체수를 배가(倍加)시킨 후에 교배하면 배추의 핵형(核型) 'AA'와 양배추의 'CC'가 온전히 합쳐진 'AACC'의 유채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염색체(혹은 유전자)의 새로운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단순 교배(이 경우 핵형은 'AC')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양쪽의 염색체를 완전하게 구비한 '종의 합성'이다. 이 현상을 처음 실험적으로 증명한 분이 바로 우장춘 박사이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이 간과한 다른 차원의 진화 메카니즘을 밝힌 매우 훌륭한 과학자였다.

융합연구란 서로 다른 영역의 교집합을 찾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두 영역의 합집합을 추구하기 위하여 한 영역을 다룰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교집합을 찾는 요령을 부려서 큰 성과를 얻는 비법이 융합연구라고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융합연구는 마치 배추와 양배추의 합집합에 의해 양친에게서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양의 식용유를 생산할 수 있는 유채가 되는 것에 비유된다.

KAIST 물리학과의 박용근 교수는 융합연구영역에서 최근 일련의 세계적 성과를 쏟아내는 젊은 과학자로서 주목받고 있다. 서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MIT 기계공학대학원과 하버드 의대를 모두 이수해야 하는 하버드-MIT 연합 의공학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은 융합연구자이다.

박교수와 약속한 커피숍에서 처음 만나본 나의 시선은 그의 삭발머리에 머물렀다.  '괴짜인가?'라는 생각을 억누른 것은 초면인 나에게 나타낸 친절함이었다.  흔히 연구에 몰두하는 이들이 비전공자들과의 교류에 선을 긋는 것과는 매우 달랐다. 또한 그는 짐작한 대로 매우 훌륭한 커뮤니케이터였다. 박교수는 KAIST KI 빌딩의 융합연구원에 위치한 자신의 연구실과 실험실을 안내하며 나의 적지 않은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 주었다.

박교수와의 두 번째 만남은 2주 후 레스토랑에서였다. 박교수에게 융합연구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에 그 역시 융합의 교집합적인 이해를 경계하였다. 그의 융합은 합집합적 접근이었고 이를 위하여 일반 연구자들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연구에 몰두하는 그에게서 나는 구도자의 모습을 엿보았다. 

왜 그가 삭발을 하고 있는지 나는 끝까지 묻지 않았지만 짐작컨대 시간을 아끼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런 박 교수에게 주말을 어찌 보내는지를 물으니 아내를 돕고 아이와 함께 놀아준다고 했다.  역시 그는 균형잡힌 인격의 소유자였다.  가정을 팽개치고 연구에 몰두하는 괴짜가 아니라 오히려 귀감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연구자임에 틀림없었다.

'융합연구란 무엇인가?'라는 퀘스트를 붙들고 있었던 지난 1년 10개월을 되돌아보며 과연 나는 10번의 칼럼시리즈에서 융합연구에 대해 얼마만큼이나 밝혀내었는지를 자문해 보면 능력의 한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융합연구에 대하여 다각적인 분석과 이해를 돕는 어낼러지를 제시하려고 하였지만 본질적 접근에 크게 미치지 못하였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첫 번째 칼럼에서 다룬 바른 대화법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바른 대화법은 융합연구의 알파와 오메가라고나 할까?

이 마지막 칼럼은 오히려 나의 융합연구 퀘스트의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연구현장에서 젊은 연구자들과 효과적인 융합적 접근을 위한 방법론을 찾는 노력을 새롭게 펼칠 것이다. 그 동안 부족한 글에 큰 지면을 할애해 준 대덕넷에 감사한다.  아울러 주위에서 글에 대한 코멘트와 의견을 주고 전화로 격려해 준 여러분들에게 감사한다.

◆유장렬 박사는

유장렬 박사.
유장렬 박사.
융합과학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접목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유장렬 박사는 서로 별개라고 여겨지는 다양한 분야가 모여 합목적인 새로운 성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장렬의 융합과학 첫걸음'을 통해 연구자들의 고민을 파헤쳐보고 실현가능한 방법을 함께 모색해 볼 예정입니다.

유장렬 박사는 서울대 식물학 학사, 캘리포니아주립대 생물학 석사을 거쳐 미시간주립대에서 농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85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한국식물생명공학회 회장, 한국생물정보시스템생물학회장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SCI 등 주요학술지에 128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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