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의 최전선에서 탐구한 의식의 기원과 본질
저자 크리스토프 코흐 역자 이정진

◆실증적 과학으로 의식의 본질을 연구한 낭만적 환원주의자! 
  
선구적 신경생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의 학문과 삶에 관한 매혹적인 회고록

'물리적 실체가 없는 의식을 어떻게 실증적 과학으로 연구할 수 있단 말인가?'

위와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의식의 과학'은 가장 최근에 연구가 시작된 과학 분야 중 하나이면서 짧은 시간 동안 인상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말 그대로 현대과학의 최전선이다. '과학 만능'의 시대로 불릴 만큼 과학이 세상을 설명하는 강력한 체계로서 역사상 가장 큰 권위를 누린 20세기였음에도, 마지막까지도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난제Hard Problem가 바로 주관적 감정, '의식'이었다.

과학이 유효하지 못했던 그 자리에서, 의식을 탐구하는 주체는 철학이었다. 지난 2000년 동안 그래왔듯 철학자들은 안락의자에서 논증을 통해 의식을 설명해왔다."실험은 '의식'이라는 난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없다"라는 회의가 철학자는 물론이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뿌리 깊었다.

도대체 어떻게 물리적인 형태를 지닌 어떤 물체가 비물리적이고 주관적이며 의식적인 상태를 발생시킬 수 있단 말인가? 불과 30년 전만 해도 신경과학자의 역할이란 의식이 과학적 실험의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그칠 뿐이었다.

이처럼 과학적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던 '의식'을 본격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젊은 개척자, 의식의 본질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 선구자가 바로 크리스토프 코흐다.

◆현대과학의 최첨단에서 펼쳐진 인상적인 연대기!

크리스토프 코흐의 과학적 여정은 곧 의식 연구의 역사와도 같다. 코흐가 연구를 시작했던 1980년대는 의식을 연구 주제로 삼는 것 자체가 "인지기능이 저하된 것 아니냐"라고 조롱받던 시절이었다.
오늘날 마음과 뇌의 연결 문제가 철학, 심리학, 물리학, 뇌과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제 간 융합 연구의 대상으로 주목받는 것에 비춰보면 의식 연구가 짧은 역사 속에 얼마나 폭발적으로 성장했는지 알 수 있다.

뇌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과 개개인이 겪는 현상적 경험 사이의 간극은 도저히 이어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크리스토프 코흐는 이 간극을 메우는 데 삶의 대부분을 헌신해왔다.

그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DNA 이중나선구조 발견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의식에 관한 혁신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일련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특히 그들이 제안한 ‘의식의 신경상관물neural(or neuronal) correlates of consciousness, NCC’은 의식을 신경생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기초 개념이 되었다.

의식의 신경상관물은 '특정한 의식적 지각을 위해 공통적으로 충분한 최소한의 신경 메커니즘'으로 정의된다. 의식의 실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데서 비켜서서 코흐와 크릭은 의식을 생성하고 촉발하는 특정한 시냅스, 뉴런, 회로를 찾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그동안 철학의 대상이었던 의식이 과학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였다. 조심스럽게 최소한으로 제한된 물리적 기초에서부터 실증적으로 과학적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을 확립한 것이다.

코흐는 자신의 지난 연구를 종합적으로 돌아본 이 책 《의식》을 통해 의식을 연구하는 현대과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동안 어떤 흐름으로 발전해왔는지를 생생하게 개관한다.

의식 연구의 진전을 이루어낸 동료인 프랜시스 크릭을 비롯해 네드 블록, 데이비드 찰머스, 줄리오 토노니, 볼프 싱어 등 수많은 과학자 및 철학자의 활약, 그리고 그들과의 교유를 때로는 애정을 담아, 때로는 비판적으로 그리면서 의식 과학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전달해냈다.

또한 '자유의지는 실재하는가' '개는 의식을 가지는가' '식물인간상태인 환자의 의식을 어떻게 계량할 수 있는가' 등 의식과 관련한 쟁점을 실증적 방법론을 통해 설명하며, 나아가 의식 연구의 미래를 전망한다. 이 책은 도전적인 과학자로 살아온 코흐 자신의 일대기인 동시에 한 권으로 개관할 수 있는 첨단 의식 과학의 연대기다.

◆낭만적 환원주의자, 자신의 삶과 과학을 고백하다

신경심리학자인 마르셀 킨즈본은 코흐를 '낭만적 환원주의자romantic reductionist'라 불렀다.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와 수만 개의 시냅스 속에서 의식을 계량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그는 분명 '환원주의자'다.
그러면서도 그는 먼 우주와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서 세계의 의미를 포착할 수 있다는 '낭만적'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과학이 신과 영혼의 신비로운 가치를 걷어내고 인간을 차가운 고독으로 몰아넣으리라는 불안에 맞서, 코흐는 과학을 통해 삶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낭만적 환원주의자로서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크리스토프 코흐가 자신의 과학적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자서전'의 문체다. 건조한 학술적 문장으로 쓰인 전작 《의식의 탐구》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다. 학계에서 요구하는 '주관을 배제한 3인칭 글쓰기'를 거절하는 데서 나아가, 이 책 《의식》에서 코흐는 내밀한 사적 고백까지도 거리낌 없이 풀어놓는다.

결과는 매력적이다. 삶에 대한 사적 고백을 통해 평생을 헌신한 과학에의 열정을 드러내는 부분이야말로 이 자서전적 글쓰기의 백미다. 방황하는 청년, 야심 찬 젊은 연구자, 박학다식한 교수, 딸을 잃은 아버지, 빈둥지증후군을 견뎌야 하는 중년 남자…, 코흐는 갈등하는 연약한 내면을 담담히 드러낸다.

이 내밀한 삶의 장면들을 통해 의식의 기반을 발견하도록 코흐를 이끈 과학적 충동을 엿볼 수 있다. 신경생물학자로서 그가 왜 범심론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개인적인 경험을 비추어 행간을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오스카 와일드, 단테, 영화 <매트릭스> <블레이드 러너>를 종횡무진 인용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깊은 철학적 사유도 놓칠 수 없다.

자서전이 흔히 범하기 쉬운 자기 과시적인 어조를 경계하는 그의 글은 때로 거칠지만 솔직하다. 어떤 장르이건 결국 읽는 이를 사로잡는 것은 내면을 가득 채우고 넘쳐 나오는 진솔한 목소리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주관적인의 힘, ‘의식’의 증거다.

<출처: 교보문고, 출판사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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