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성휘 기계연 책임연구원

나는 어릴 적 찌든 생활고에 특별히 놀이가 없어 같은 것이라도 실증이란 단어를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덕분일까? 무엇이든 보고 또 보고 집요하게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다행히 그런 터에서 내 모습을 그냥 지켜봐준 부모님이 있어 지금 내가 있는 것 같다.

자연은 종은 같아도 무엇인가 하나씩은 다르다. 다 같은 게 없어도 서로 버팀목이 되어 환경에 적응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의 뜻이 지금도 들과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벽돌 한 장'도 그렇다. 언제부턴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 불리어진 이 이름을 나는 참 좋아한다. 홀로는 벽돌 한 장이라는 보잘 것 없는 존재지만 여러 장이 모이면 대단하다. 거기에 시대적 예술가치와 문화적 배경이 통하면 엄청난 것이 탄생하곤 한다.

벽돌 한 장의 뜻에 더욱 공감하는 이유는 나름대로의 전문가이자 달인들이 모여 각자의 작은 힘과 아이디어를 나누겠다는 자세 때문이다.

청년기에 나의 삶은 한이라도 맺힌 듯 바쁘게 그저 앞만 보면서 달렸다. 모르면 물었고, 길이 없으면 만들었고, 기술이 없으면 연구했다. 생각이 부족하면 풀릴 때까지 몰두하면 됐다.

결혼과 더불어 차츰 생활이 안정되면서 조금씩 나의 정체성과 내가 속한 사회구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제사 돌아보면 내가 좋아하는 직업을 즐기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숨고르기란 것을 깨달았다. 늘 부족하게 여겨졌던 5%의 실체다.

최고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정작 깨달은 것은 '최고'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 함께 사랑하고 보듬어서 봉사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진정 가치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감히 인생을 알아가고 있다고나 할까?

벽돌 한 장은 그동안 늘 부족하겨 여겨졌던 5% 목마름을 풀어줬다. 삼삼오오 모여 과학동네의 앞날을 고민하는 그 진정성이 좋았다. 쪽방 같은 사무실 하나 없이 오직 풍부한 경험을 지혜롭게 배양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느라 흘리는 진땀이 감동을 준다.

뭐 그리 큰 힘이 되겠냐마는 모두가 이해 관계없이 누군가의 작은 목마름을 풀어줄기 위해 봉사자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과학기술에 대한 중요성과 개념, 좋고 나쁘고의 관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지금 내가 속한 연구단지는 겉으로 보기에 나 자신도 인정할 정도로 짜임새 있어 보인다.

하지만 조금은 부족한 과학기술에 대한 지속적 관심, 기존 기술과 서비스 관찰을 위한 방법연구, 기술수요의 반영, 특허 가능한 다양한 신제품 연구개발 지원노력, 전문기술의 아이디어 공급채널, 새로운 창의성 융합 기술을 얻을 수 있는 원천 특정연구 등은 아쉽다. 이런 모든 문제점에 '벽돌 한 장'이 모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인연은 내 인생의 훌륭한 스승이고, 그들에게서 지혜를 전수받으며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잖은가!

그런 차원에서 '벽돌 한 장'은 변혁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변화를 이루지 못했을 때의 문제점과 위기의식에 대한 경계의 발로다.

21세기 중요한 변화는 물리, 화학, 전기전자, 기계 등 전통적 전문 분야의 융복합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다. 수많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무한변화에 뒤처져 몰락한 사례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사회에서 전통적 영역과 관행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는 것. 그 길에 '벽돌 한 장'이 필요하다.

나름대로의 전문가이자 달인들이 모여 각자의 작은 힘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 철학적으로 겸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나보고 위에 놓고 배려하며 힘을 주는 것이 치열하게 살고 있는 과학마을을 따뜻하게 만들고자 하는 '벽돌 한 장'의 취지다.

모쪼록 시대의 흐름과 현장 경험이 풍부한 많은 대덕의 구성원들이 벽돌 한 장의 구성원으로 참여해, 최고의 혁신자치구를 만들어나가기를 기대한다. 모진 바람에 쭈그러져 낙엽이 되기보다, 잘 물들어서 단풍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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