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획-下]위기극복의 결정체 '소통'으로 정면돌파

KIT 혁신 선봉장에 선 이상준 소장<사진 = 대덕넷 김요셉 기자>
KIT 혁신 선봉장에 선 이상준 소장<사진 = 대덕넷 김요셉 기자>
 
가을단풍의 결정체 내장산을 병풍삼아 위치해 있는 안전성평가연구소(KIT) 정읍 분소. 
적막이 흐르는 산자락에 오가는 인사 소리가 유독 크고 힘차다.

"안녕? 잘 지내지? 나 보고 싶지 않았어?"
"네, 건강하셨어요? 당연히 보고싶었죠. 하하~"

동료 직원들끼리 오간 인사가 아니다. 신입사원과 기관장의 인사가 전혀 거리낌없다. 권위도 거리감도 없다. 그저 따뜻하게 진심이 묻어난 인사가 오간다.

KIT의 변화 현장이다. 인사는 커녕 갈등의 골이 깊은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봤던 연구원들이 이제는 밝게 인사를 나누며 연구소를 거닌다.

경영 악순환의 고리에서 3년 만에 고객 만족도가 높아져 수탁고가 늘고, 연구인력이 늘어 핵심 독성연구 시험을 집중할 게 있게된 연구소의 변화는 인사잘하기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IT가 위기에서 변화의 성공궤도에 올라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힘은 'KIT 기관장' 이상준 소장의 활약이었다.
 
◆ 365일 아침 7시 50분 '굿모닝~' 인사…진심 소통으로 신뢰경영 완성

KIT의 위기극복은 기관장의 '소통'으로 정면돌파한 케이스다. 

이 소장은 2011년 12월 26일 취임 이후 지금까지 매일 아침마다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인사다. 아침마다 굿모닝 이벤트를 펼쳤다. 

7시 50분부터 연구소를 누비며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좋은 아침~' '굿모닝~'을 크게 외치며 인사했다. 대덕 본원에서 뿐만 아니라 요즘 상주해 있는 정읍 분소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하 17도에 가까운 매서운 겨울날에도 빠짐없이 인사하러 연구소 정문을 오갔다. 처음엔 '저러다 말겠지'하던 직원들이 마음이 바뀌면서 어느 순간에는 이 소장의 손을 감싸며 장갑까지 끼어 주는 날도 생기게 됐다. 

취임하자마자 또 시작한 일은 모든 직원들과 밥먹는 것이었다. 당시 270명 전 직원들과 5~10명씩 차례로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매점에서 '먹고 싶은것 다 골라라'하면서 과자 음료수를 곁들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전에 없던 구내식당 예약제도가 이 소장의 점심식사 소통이 전개되고부터 생겨 났다. 

간부들은 아예 부부동반으로 집에 초청했다. 아내에게는 상만 펴놓으면 자기가 회 떠오고, 매콤갈비를 사와서 상을 차리겠다고 해놓고 간부 부부들에게는 각자 밑반찬을 가지고와서 먹자는 제안을 했다. 총 25쌍 가족들을 4번에 거쳐 부부동반 식사를 나눴다.
 
크로스 피자 사주기, 동료책상 치워주기, 고객 전화 걸어주기, 즉석 사다리 음료수 사기 등 창립기념일 전후의 100일 이벤트도 직원들의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됐다.
 

전 직원들의 생일 축하 쪽지 편지가 모여 대문짝만한 편지가 됐다.<사진 = 대덕넷 김요셉 기자>
전 직원들의 생일 축하 쪽지 편지가 모여 대문짝만한 편지가 됐다.<사진 = 대덕넷 김요셉 기자>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진심을 담아 스킨십 경영을 펼친 덕분에 이 소장은 의심과 오해, 갈등이 깊었던 직원들과 속내를 털어놓고 때로는 농담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마음이 통하니 직원들 사이 눈에 보이는 변화가 생겼다. 일단 지각 빈번 기관에서 지각 제로 기관이 됐다. 이 소장이 취임직후 충격적이었던 것은 직원중 거의 절반이 지각했던 것이다. 파업과 조직 갈등이 뿌리 깊었던 상황에 직원들은 당시 출퇴근 개념이 없다시피 했다. 

직원들과 대화를 해나가면서 이 소장은 분명한 원칙을 내세웠다. 지각 절대 금지 원칙이다. 인사고과에 반영할테니 지각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했고, 결국 현재 지각은 없어지게 됐다. 

여러 갈등도 해결해 나갔다. 무엇보다 테크니션과 연구원의 갈등이 컸다. 불협화음이 생길때마다 이 소장은 '하는 일이 다를 뿐 누구나 동일하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면서 서서히 갈등에서 배려의 문화로 접어들도록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도 직원들끼리 서먹한 분위기가 흐르는 문화를 타파하고자 '진정한 대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도 가졌다. 나서는 문화, 배려하는 문화, 대화하는 문화 캠페인을 벌였다. 이른바 체인지 DNA 3년 프로젝트다. 2013년은 Change DNA 올해는 Creating DNA, 마지막 2015년은 Expressing DNA 운동을 벌이며 내부 결속을 다져 나가고 있다. 
 
◆ 핵심역량 집중체제로 전환…기관 효율화는 숙제로 남겨

이 소장의 소통 목적은 기관의 자부심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KIT가 어려웠지만 내부적으로 핵심역량을 갖춰 세계 톱5가 되어보자는 내용이 소통의 골자였다. 

이 소장은 자신감이 있었다. 시설 인프라도 우수하고, 인력이 좋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스스로 확신했다.

직원들과 격론을 펼친 끝에 4가지 핵심역량을 뽑을 수 있었다. 센터장급 연구원들을 모아 우리가 미래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 질문을 던지면서 연구과제를 도출했다. 흡입독성 특화, 신경독성 병리 심화 연구, 세포치료제 독성시험 셋업 연구, 의약품 부문을 핵심역량으로 삼고 움직이고 있다.

이 소장은 핵심역량을 잘 가꾸기 위해 특히 간부진의 외부 인력 영입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부 직원이 관리를 하고 키워야 역량이 지속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판단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조직이 아니고 일하는 재미도 없기 때문이다. 

KIT 한 직원은 "미래 방향을 설정하고 핵심역량에 집중해 대화를 나누다 보니 동료 직원들 표정에 자신감이 생기고 됐고, 자신의 역할을 찾는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이 소장의 '핵심역량 집중'과 '진심어린 소통'이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 고객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듀퐁이 신약개발 관련 독성시험을 의뢰하기 위해 인도와 한국을 비교하는 상황에서 이 소장이 나서 듀퐁으로부터 60억원의 독성시험 수탁을 유치한 사례다. 이 소장 부부가 듀퐁 책임자 부부까지 만나 깊게 교류하며 진심으로 소통한 덕분에 이뤄낼 수 있었던 성과다.
 

이 소장의 임기는 오는 12월 21일까지다. 그런 그가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분명한 성과를 냈지만 현재 그가 안타까워 하는 점이 한가지 있다. 바로 기관의 효율성이다.

독성시험, 인적자원, 예산, 구매 등 다방면에서 효율을 높여야 하는 단계에 왔지만 아직까지 직원들의 공감대가 민간영역으로만 치부해 버리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 소장은 "차기 기관장이 기관 효율화를 한단계 끌어올리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제언하면서 "3년간 지내오면서 일단 해피하게 떠나서 좋다"고 소회를 밝혔다. 
 
◆ 이상준 소장은 누구?…"원칙 잊지 않는 투명경영의 전도사"

이상준 소장은 연구원 출신에서 경영자로 자수성가한 현장파 경영인이다. 1979년부터 1996년까지 신약개발 연구자의 삶을 살았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회사의 중책을 맡으며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을 걸었다. 코오롱생명과학, 종근당, 로슈 코리아 등 국내외 제약회사에서 선임·책임연구원과 개발부장, 총괄 기술본부장, 부사장 등으로 승진을 거듭하면서 제약업계에서 경영의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중앙대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에서 약화학 석사, 양물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미주리 대학에서 박사후 연수과정을 보냈다. 

이 소장은 '투명인간'이라는 호칭을 좋아한다. 소통을 늘 강조하면서 투명함을 잊지 않는 CEO다. 투명하지 않은 소통이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직원들과 투명하게 소통하려는 원칙을 지키려 애쓰는 이유다. 

이 소장의 꿈은 과학기술계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는 해결사형이다. 어려움이 있고 자기가 기여할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그는 "과학기술계를 더욱 성장시켜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게 하는게 목표"라며 "이를 위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KIT 소장으로서 마지막 인터뷰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사실 KIT 소장 공모에 응했을 때 연구소 상황을 전혀 몰랐어요. 주변에서 정부가 돈을 안줄텐데 어떻게 운영할거냐고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저는 취임 인터뷰할 때 심사위원들에게 ‘연구소 수탁 걱정말라. 2배로 키워놓겠다’고 공언을 했습니다. 이제 전 그 약속을 이루고 3년간 소임을 다한 듯 합니다. 연구소가 효율성을 위해 더 변해야 하지만 이제 그 역할을 후임에게 넘기렵니다. 어디든 제가 기여할 곳으로 떠나려 합니다. 저같은 놈을 세상이 가만히 냅두겠습니까."
 

병리연구센터 직원들이 마음을 담아 소장에게 건넨 만병통치약. 어려울 때, 힘들 때, 슬플 때, 화가날 때 마시라고 선물했지만 이 소장은 너무 귀해 마실 수 없단다. 그저 바라만 봐도 힐링이 된다.<사진 = 대덕넷 김요셉 기자>
병리연구센터 직원들이 마음을 담아 소장에게 건넨 만병통치약. 어려울 때, 힘들 때, 슬플 때, 화가날 때 마시라고 선물했지만 이 소장은 너무 귀해 마실 수 없단다. 그저 바라만 봐도 힐링이 된다.<사진 = 대덕넷 김요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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