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막사이사이상 수상…170여개 산간 마을 무선인터넷 보급과 일자리 창출
푼 박사 "네팔에 창조혁신센터 설립해 국가발전 이끌 것"
아시아 최빈국 네팔의 국가적 발전을 꿈꾸고, 산골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무선인터넷 보급과 함께 수익산업 창출에 나서고 있는 이가 있다. 히말라야 산골지역 주민들의 영웅 마하비르(Mahabir Pun) 푼 박사 얘기다.
푼 박사의 활동은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2007년 네팔에 무선인터넷을 보급한 공로를 인정 받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수상과 함께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작년에 존 포스텔 인터넷 서비스상도 수상했다.
EWB-KAIST 활동을 동행 취재하면서 푼 박사의 인생과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안나푸르나 고산마을인 난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전통적으로, 주민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대부분의 남자는 영국 구르카 용병으로 참여한다. 푼 박사도 마찬가지로 그의 유년시절을 소와 양을 방목하면서 보냈고, 종이나 연필, 교재, 선생님도 부족한 마을 학교를 다녔다.평범했던 삶은 그의 부친이 구르카용병을 은퇴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부친이 은퇴자금으로 가족들과 함께 남쪽 고원으로 이사하고, 그를 위해 교육에 투자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푼 박사는 "고등학교를 마쳤으나, 돈이 없어서 대학교에 갈 수 없었다"면서 "그래서 12년동안 네팔 남쪽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고 말했다.
교사활동을 하면서 그는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다. 그는 "2명의 남동생과 3명의 여동생이 있는데 그들을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결혼도 미루고, 많은 것을 포기했던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교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는"네팔의 교육시스템은 잘 알기 때문에 해외 선진국에서의 교육을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학비는 그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따라서, 그는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 보기 위해 미국, 영국 등의 대학에 추천서, 지원서를 제출하는데만 1년 반을 소요했고, 마침내 네브래스카 대학교로부터 입학통지를 받을 수 있었다.
푼 박사는 "1989년 미국으로 가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컴퓨터와 경영학도 배웠다"고 말했다.
1992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난기 마을 주민들로부터 고등학교 설립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에 응한다. 24년만에 고향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는 난기마을이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한 지역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푼 박사는 미국 지도 교수의 도움을 받아 2000년에 히만찰교육재단(Himanchal Education Foundation)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지역공동체 기반의 교육 개발을 위한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난기 마을의 히만찰 고등학교를 지원하고 있으며, 전세계의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고, 유치원부터 12학년(고등학교 3학년)까지 가르치는 종합 교육기관으로 발전했다.
그는 히만찰 고등학교를 설립하면서 컴퓨터 교육과 수익창출에 집중했다. 미국에 있는 동안 그는 IT 기술이 네팔의 교육과 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말레이시아, 호주, 싱가포르 등 해외 국가로부터 받은 중고 컴퓨터를 활용해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교육과 함께 고산 마을 간 무선인터넷 연결도 시도했다. 그렇지만, 현지의 기술로 인접 도시인 포카라까지 인터넷을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에 따라, 푼 박사는 BBC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서 아이디어를 물었고, 이러한 사연이 공론화되면서 유럽, 미국 등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모였다.
2001년 기부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난기와 이웃 마을인 람체 지역에 작은 수제 TV 안테나를 나무에 연결하면서 무선인터넷을 연결에 성공했다. 각 마을의 학교와 진료소를 중심으로 무선인터넷이 확산되어 170개 마을에 무선인터넷망이 구축됐다.
또한, 그는 또한 주민 자생적 발전과 학교 운영을 위해 캠핑, 치즈제조, 야크 농장, 잼 제조, 종이 제조 등 다수의 수익창출형 사업도 함께 진행하면서 자생적 발전을 지휘하고 있다.
히만찰 고등학교에서 회계, 경제, 체육 교사로 일하고 있는 토야(Toyaram Bariyar) 씨는 히만찰 재단을 통해 수혜를 받은 대표적 사례다. 토야 씨는 난기에서 4시간 거리에 있는 카팔단다(Kaphaldanda) 마을 출신이다. 그는 포카라 소재 프리스비 나라얀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재단의 도움으로 교육학 석사를 마쳤다. 그는 학생들과 종종 농구를 하거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등의 열성을 가졌고, 시종일관 유쾌한 모습이다. 토야 씨는 "히만찰 재단을 통해 교사가 될 수 있었다"며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어서 다시 마을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위한 목표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학생들이 사회에서 기여할 수 있는 독립적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네팔도 한국처럼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한국과는 꽤 인연이 있는 편이다. 그는 포카라에 파견된 KOICA 지원단, IT 봉사단 등과 함께 일하기도 했으며, 이들을 통해 EWB-KAIST를 이끌고 있는 송태호 기계공학과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푼 박사는 EWB-KAIST 활동에 대해 재정적, 기술적 2가지 측면을 강조했다. 그는 "함께 일하고 서로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좋다. 학생들은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배울 수도 있으며, 농부가 대부분인 마을 주민들은 태양렬, 소수력 발전 등 공학적 기술에 대해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난기 마을의 성공사례는 네팔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는 카트만두 공대에 방문해서 EWB-KAIST 사례를 소개하고, 네팔 학생들도 주변 마을에 가서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는 "EWB KAIST 종료까지 2년이 남았는데, 앞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기를 원한다. 이 마을의 사례가 네팔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네팔 정부에서는 과학, 기술 개발을 비롯한 혁신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
푼 박사는 "네팔의 우수한 인재들이 한국, 미국, 호주, 일본 등 해외로 떠나면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적 자원들을 계속 놓치고 있다"며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일하는 환경이 없어서다. 혁신센터를 통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그들을 통해 네팔 발전을 이끌고 싶다"고 밝혔다.
아직 자금 확보 등 해결할 문제가 남아 있다.
푼 박사는 지난 3년 동안 혁신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했다. 경제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연례적으로 4million 달러의 수익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10MW 수력발전소 건설하고, 연간 전력을 국내 전력회사에 팔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는 네팔 정부와 지속적으로 20million 달러의 총 건설 비용 중 정부 측에 5million 달러 차관 관련 계속 협의중에 있고, 어느정도 설득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 먼저 투자를 받고, 나머지 부분을 투자은행을 통해 빌리자는 것이다.
푼 박사는 "한국도 혁신을 위해 과학기술과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한 것을 알고 있다. 과학기술이 중요한데 네팔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수도인 카트만두에 사무실이 있고, 가족들도 포카라에 있지만 오늘도 고산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고 있다. 그의 꿈은 대학교를 갈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대학교를 만드는 것과 지역산업을 통해 국가 발전을 이끄는 것. 앞으로 그의 행보에 따른 네팔의 변화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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