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박용기/ UST 교무처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문연구원

2월은 절기상으로 보면 새 봄의 문턱에 들어서는 시기인 것 같다. 초순에 입춘이 자리하고 있으며 중순에는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수는 보통 음력 정월에 들게 되는데 이번 해에는 아예 설날과 겹쳐 있었다. 음력에서 정월은 계절상 봄에 해당하니 이제 분명 봄에 들어선 것이라 하겠다.

설 직전 대천 바다를 잠시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대천을 가다보면 언제나 나를 유혹하는 장소가 한 군데 있다. 보령의 청라저수지이다. 이날도 유혹을 못 이겨 길가에 차를 잠시 세우고 물 속에 잠긴 나무와 갈대가 만들어 내는 겨울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봄을 기다리는 풍경. 초봄의 기운마저 느껴지는 2월 중순인데도 아직 가을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겨울 풍경을 지니고 있는 청라저수지Pentax K-3,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1/200 s, F/16, ISO 100.
봄을 기다리는 풍경. 초봄의 기운마저 느껴지는 2월 중순인데도 아직 가을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겨울 풍경을 지니고 있는 청라저수지Pentax K-3,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1/200 s, F/16, ISO 100.

불행히도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어 석양빛에 물든 멋진 장면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비교적 따뜻해 초봄의 기운마저 느껴지는 2월 중순에 아직 가을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겨울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일 때문에 찾은 대천이기에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 볼 기회는 없었지만 다음 날 아침 잠시 아침바다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대천 바다는 탁트인 수평선과 넓은 모래사장이 있어 서해안의 해수욕장으로는 좋은 곳이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아기자기한 면이 없어 좀 밋밋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다를 쉽게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침 바다. 바다를 쉽게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Pentax K-3,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200 s, F/16, ISO 100
아침 바다. 바다를 쉽게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Pentax K-3,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200 s, F/16, ISO 100

멀리 봄소식이 들려 올 것 같은 2월의 바닷가에서 모래사장에 놓여 있던 소라껍질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 녀석이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기로 하였다. 안에 들어 있던 주인은 이미 간 데 없고 집게마저도 집으로 사용하기에는 쓸모가 없게 구멍나 모래위에 버려져 있는 소라껍질이었다. 나는 모래 사장에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그 녀석과 하나가 되어 바다를 바라 보았다.

흰 물거품을 만들며 가까이 다가왔다 멀어져 가는 파도가 마치 흐르는 세월처럼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이미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날 아침 나에게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만은 그녀석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나도 언젠가 저 녀석처럼 쓸모없는 존재가 되겠지?' 하는 좀 서글픈 생각이 들면서 나는 갑자기 그녀석과 동질감마저 느끼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 봄이 오면 다시 바다로 돌아갈 꿈을 꾸기를 바라며 그 녀석과 헤어졌다.

새봄이 오면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까? 흰 물거품을 만들며 가까이 다가왔다 멀어져 가는 파도가 마치 흐르는 세월처럼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이미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날 아침 나에게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만은 그녀석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250 s, F/3.5, ISO 100
새봄이 오면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까? 흰 물거품을 만들며 가까이 다가왔다 멀어져 가는 파도가 마치 흐르는 세월처럼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이미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날 아침 나에게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만은 그녀석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250 s, F/3.5, ISO 100

숙소로 돌아 오면서 오래 전 대학시절 동아리의 단합대회를 대천에서 한 적이 있어 그 시절이 잠시 떠 올랐다. 그리고 내가 참 좋아했던 박인희라는 가수의 '하얀 조가비'라는 노래도 떠 올랐다. 2절 가사 중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귓가에 대어 본다/하얀 조가비/옛 친구 노랫소리/ 다시 그리워/……."

소라껍질을 귀에 대보면 바닷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을 경험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갑자기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연히 바다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닌데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설이 몇가지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공기가 소라껍질 속을 흐르면서 만드는 소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방음이 되어 있는 방에서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이 설은 맞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소라껍질을 귀에 대면 우리의 귀에 있는 혈관에서 혈액이 흐르는 소리가 증폭되어 파도소리 같은 소리가 들린다고도 한다. 하지만 운동을 한 후 혈액의 흐름이 보다 왕성해 진 후에도 소리가 더 커지지 않기 때문에 이 설 또한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가장 그럴듯한 설은 주변의 잡음이 소라껍질과 공명을 일으켜 그런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소라의 크기에 따라 고유한 진동수가 있어 그 진동수와 같은 주변의 잡음이 증폭되어 크게 들린다는 것이다. 소라의 크기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설로 보인다. 연구해 보았자 돈이 안되는 주제라서인지 오래된 호기심의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근처에 있는 개화예술공원이라는 곳을 잠시 들렀다. 야외에는 커다란 까만 돌을 깎아 조각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비석에 시를 새겨 전시도 하고 있었다. 또 작은 미술관과 허브식물원도 있어 잠시 들러볼만 곳이었다.

야외에 있는 분수대에서는 겨울인데도 분수가 뿜어지고 있어 작은 무지개가 만들어 지기도 하였으며 주변은 온통 얼음이 되어 마치 겨울왕국의 미니어처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식물원에 들어서자 벌써 노란 수선화와 앙증맞은 아기별꽃 등 봄꽃들이 피어 봄을 느끼게 하였다.

겨울왕국. 야외에 있는 분수대에서는 겨울인데도 분수가 뿜어지고 있었으며 주변은 온통 얼음이 되어 마치 겨울왕국의 미니어처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Pentax K-3,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800 s, F/7.1, ISO 100
겨울왕국. 야외에 있는 분수대에서는 겨울인데도 분수가 뿜어지고 있었으며 주변은 온통 얼음이 되어 마치 겨울왕국의 미니어처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Pentax K-3,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800 s, F/7.1, ISO 100

수선화. 식물원 내에 피어있는 노란 수선화에는 벌써 봄이 와 있었다.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500 s, F/3.5, ISO 100
수선화. 식물원 내에 피어있는 노란 수선화에는 벌써 봄이 와 있었다.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500 s, F/3.5, ISO 100

아기별꽃들의 인사. 돌계단 틈에서도 필어날 작은 풀꽃의 생명력 속에서 놀라움을 느끼고 모든 생의 몸짓을 소중히 여기는 새봄을 맞을 준비를 하는 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800 s, F/3.5, ISO 100
아기별꽃들의 인사. 돌계단 틈에서도 필어날 작은 풀꽃의 생명력 속에서 놀라움을 느끼고 모든 생의 몸짓을 소중히 여기는 새봄을 맞을 준비를 하는 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800 s, F/3.5, ISO 100

까만 돌 위에 새겨져 있는 시들 중 김후란 시인의 '존재의 빛'이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막 겨울을 벗고 생명이 돋아나는 초봄을 준비하는 2월에 어쩌면 어울리는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돌계단 틈에서도 필어날 작은 풀꽃의 생명력 속에서 놀라움을 느끼고 모든 생의 몸짓을 소중히 여기는 새봄을 맞을 준비를 하는 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존재의 빛 / 김후란

새벽별을 지켜본다
사람들아
서로 기댈 어깨가 그립구나
                  적막한 이 시간                  
깨끗한 돌계단 틈에
어쩌다 작은 풀꽃
놀라움이듯
하나의 목숨
존재의 빛
모든 생의 몸짓이
소중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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