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과학단지 공간' 자랑스럽지만 미래는 담보못해
'방치 공간'이 특구미래 숨통 막는다…"글로벌 특구로 상상해야"

정부출연연구소들이 대거 몰려있고, 기술중심 벤처기업들이 집중돼 있는 곳. 바로 대한민국의 과학중심 대덕연구개발특구다. 과학기술인들의 일터이자 삶터, 놀터인 대덕이 어느덧 조성된지 42년(1973년 설립)이 흘렀다. 70년대 연구학원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기획된 밑그림대로 우수한 연구환경을 자랑하며 거대한 연구단지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제 방치된 공간들이 곳곳에 생기고, 낡은 건물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며 특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기존 공간의 주먹구구식 개발로 특구의 미래가 밝게 보이지 않는다. 대덕넷(HelloDD.com)은 대덕의 미래공간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기 위한 [긴급진단 - 특구를 특구답게] 기획시리즈를 추진한다. 현재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공간들의 현장을 취재하고, 특구가 특구답게 발전하려면 앞으로 어떻게 공간을 활용해 나갈지에 대해 현장 목소리를 담을 예정이다. 글 싣는 순서는 1부 ▲대덕특구 공간 재편 시급 ▲공동관리아파트, 목원대 대덕문화센터 공간 ▲동부기술원, KAIST 문지캠퍼스 공간 ▲TBC, 민간연 공간 2부 ▲타 도시 현장 벤치마킹 ▲긴급좌담회 순이다.[편집자의 편지]

대덕테크비즈센터와 목원대 대덕문화센터의 모습. <사진=강민구 기자>
대덕테크비즈센터와 목원대 대덕문화센터의 모습. <사진=강민구 기자>

40년 가까이 대덕연구단지 과학기술자로 살아 온 K 원로 과학자가 최근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대덕인들 사이 교류의 상징이었던 舊 롯데호텔(목원대 대덕문화센터)이 얼마전 지상 19층짜리 주거용 오피스텔 건축심의가 내려지면서 본격적인 특구의 난개발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K 과학자는 "대덕이 일반 주거용이나 상업용으로 건물들이 채워질 거라면 무엇하러 특구로 지정했는가"라며 "가뜩이나 부족한 특구의 공간을 효율화하는 동시에 진정한 미래를 위한 공간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이같은 K 과학자의 의견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라는 데 있다. 대부분의 대덕 과학자들과 기업 종사자들은 공통적으로 연구단지 난개발을 걱정하며 R&D특구로서의 특성을 살린 공간 재편을 염원하고 있는 분위기다.

더군다나 연구현장에서 꼽는 대덕특구의 공간 문제는 단순히 舊 롯데호텔 사례만 있는게 아니다. 유휴 공간이 적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개발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특구 공간 재편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다.

연구단지의 중심부 유성구 도룡동 사거리 인근에는 36년된 공동관리아파트라는 건물이 있다. 전체 면적이 1만1300평 규모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건물의 모습은 대덕의 공간 재편의 시급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변 건물들은 현대화되고 있지만, 공동관리아파트는 30년 넘게 시간을 보내며 연구단지 중심부에 여전히 생존해 있다.

일각에서는 이해관계가 얽혀 개발계획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개발되기 전까지만이라도 지역의 부족한 공간문제 개선을 위해 임시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어느 누가 나서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한 때 이 곳이 거주공간이었던 정부출연연구소 과학자들은 매번 길을 지날때마다 '옛 추억' 보다는 하루빨리 '재활용'되길 바라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 1993년 개관한 舊 롯데호텔은 완전히 폐허가 됐다. 연구단지 한복판에 위치해 있는 舊 롯데호텔의 2003년 목원대 매각에 이은 최근 주거용 오피스텔 건축심의 허가 사건은 20년 넘게 특구인들이 다양하게 모임을 이뤄왔던 '추억의 종식'과 같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덕테크비즈센터(TBC), KAIST 문지캠퍼스, 동부기술원, 일부 민간연구소 건물 등 대덕특구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공간들이 특구 미래 발전상에 맞게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드세다.

과학동네의 척추처럼 연결된 이들 공간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면서 '대덕특구가 기존 공간을 혁신적이고 글로벌하게 재편하지 않으면 특구의 미래는 없다'는 의견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한 쪽에선 텅빈 공간…기업, 연구소들은 '공간부족' 아우성

여러 공간들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점점 흉물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행정적인 이유 등으로 출연연이나 기업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마련도 거의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선 특구 전체 공간 문제를 책임지고 개편해 나갈 구심점도 뾰족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KAIST 문지캠퍼스는 창업기업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기로 했으나, 공간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으면서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도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TBC 역시 공간 중 일부가 만 5년이 넘도록 비어있어 운영비만 가중되고 있는 상황으로,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한 상태다.

그런 가운데 정부출연기관과 기업들은 공간부족으로 대전을 떠나는 일이 줄을 잇고 있다. 출연연과 기업의 공간 부족문제는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은 가까운 곳에 활용할 수 있는 부지나 공간을 두고도 활용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아 대전 인근의 세종시나 충남·충북으로 보금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대덕의 공간 활용방안에 대해 관계기관들이 손 놓고 있는 사이 세종시를 비롯해 인근 지역이나 타 지자체에서는 입지 보조금, 값싼 토지 등을 파격적으로 제공하는 조건으로 기업과 출연연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양상이다. 

공동관리 아파트의 모습. <사진=강민구 기자>
공동관리 아파트의 모습. <사진=강민구 기자>

◆ "주먹구구식 개발 벗어나 미래 창조공간 개념으로 재설계를"

연구현장에서는 특구공간 재창조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전시나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등 관계기관이 조속히 나서 미래 공간계획을 세워야 함은 기본이고, 이 과정에서 현장 구성원들의 의견이 담겨 특구의 미래를 공동체가 함께 상상하고 가꿔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출연연의 L 박사는 "공동관리아파트나 이전 롯데호텔 등의 공간들은 한 개별 기관의 공간이 아니라 대덕특구의 미래를 좌우할 공간"이라며 "40년된 특구 전체 인프라 공간에 대해 재점검하고, 글로벌하면서 국가 미래를 책임질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구성원들이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IT벤처기업의 한 CEO는 "대덕의 적지 않은 기업들이 공간부족 문제로 하소연하고 있다"며 "대덕특구가 진정한 기술사업화 중심지가 되려면 기업환경의 기본인 공간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공동관리아파트에 거주했던 한 과학자는 "애초에 공동관리아파트가 세워진 취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연구단지 과학자들의 공동 공간이란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공동관리아파트 공간이 새로운 미래형 과학자들의 교류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바랬다.

민간연구소에 근무하는 한 대덕인은 "국가의 대표적인 R&D특구가 주변 환경이나 공간을 둘러 보면 보통구로 전락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특구가 특구다워야 한다. 각 공간들이 창조적이고 미래를 향한 꿈이 담길 수 있도록 구성원들의 참여와 에너지로 재설계를 펼쳐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과학계 한 인사는 "42살된 대덕특구가 앞으로 국가 발전을 위해 30년 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며 "대덕특구가 지역, 국가를 넘어 명실상부한 글로벌 특구가 되도록 공간을 상상하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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