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식 기초지원연 부원장이 밝히는 국가 분석과학 청사진
"첨단 국산 장비 개발로 국가 과학발전 견인차 역할"

 

"한국 과학기술계가 그동안 연구장비를 구입하는 데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자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직접 우리 손으로 첨단 연구장비를 개발해 나갈 것입니다. 국산 연구장비 개발의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겠습니다."

분석과학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원장 정광화)이 사활을 걸었다.

국가적으로 연구장비 활용 효율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기초지원연이 올해부터 '첨단 연구장비 개발·실용화 진흥'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더 이상 외국산 장비를 수입만 해오지 말고 직접 우리가 주요 핵심 장비를 개발하자는 미래창조과학부의 뜻이 담긴 프로젝트다. 미래부는 지난 26년간 첨단 연구장비를 활용해 산·학·연 연구지원과 공동연구를 수행한 기초지원연을 연구장비 개발 중심기관으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 과학계는 장비의 중복구매와 불요불급(不要不急)구매 등 연구장비의 비효율적 투자에 대한 우려가 심화돼 왔다.

우리나라 연구장비는 전체 장비 중 외산이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해외 의존도가 높다. R&D 예산 1조가 장비를 구입하는 데 쓰인다면 그중 7000억이 해외로 흘러나가는 것이다. 나머지 30%도 ICT 계측장비 비중이 크다.

'첨단 연구장비 개발' 특명 받은 기초지원연. "제대로 해보자"<사진= 김요셉 대덕넷 기자>
'첨단 연구장비 개발' 특명 받은 기초지원연. "제대로 해보자"<사진= 김요셉 대덕넷 기자>

범부처 연구시설·장비의 총괄전담기구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NFEC)에 따르면 2005년부터 현재까지 구축해 운영중인 3000만원 이상 장비 투자규모는 현재(2015년 3월) 기준 총 10조8440억원(8만8334점)이다. 최근 10년간 매년 장비투자로 거의 1조원씩 비용을 들인 셈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국가 연구시설장비 누적 투자규모는 총 3조5944억원(2만5653점)으로, 국가 연구개발 사업 투자규모 대비 평균 5.7%에 달한다.

국가 R&D 및 인프라 투자현황.<그래픽= 박옥경 대덕넷 선임>
국가 R&D 및 인프라 투자현황.<그래픽= 박옥경 대덕넷 선임>
연구장비 예산은 갈수록 증가하고, 장비활용 효율성 문제가 계속되자 정부는 연구장비를 구입하는 데 낭비되는 예산을 줄이고 직접 연구 장비를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초지원연에 '국산연구장비 개발'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이광식 기초지원연 부원장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첨단 연구장비 개발을 통해 국가 분석과학의 역량을 키워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첨단 연구장비 개발은 국가 과학발전의 핵심"

"일본 연구실에 가보면 자국에서 개발한 연구장비가 많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연구원들이 필요한 장비가 있다고 말하면 금방 조달되는 산업구조입니다.

우리나라는 연구장비와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연구자들의 자존감이 떨어지는 상황이죠. 이럴때 정부가 연구장비 개발에 발벗고 나선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원장은 "연구장비를 개발하는 것은 몇 개의 장비개발기업만 살리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초지원연이 연구장비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초지원연은 ▲탁상용 TEM(투과전자현미경) ▲이차이온질량분석기 ▲무냉매 NMR(고감도 핵자기 공영 시스템) 등 크게 3가지 연구장비 개발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이 장비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는 10대 장비 중 핵심 장비들이다. 그만큼 수요가 보장돼 있기 때문에 다른 연구장비들 보다 개발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이 이 부원장의 설명이다.

이러한 장비 개발을 위해 기초지원연은 최근 4개팀을 묶어 임무수행형 조직인 '연구장비개발사업단'을 신설했다. 현재 22명의 인력이 포진돼 있으며, 앞으로 지속해 조직과 인력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예산은 5년간 총 28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올해는 45억원이 배정됐다. 

국산 연구장비가 개발됐다 하더라도 유지와 관리를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아직까진 부족한 현실이다. 기초지원연은 연구장비 개발에만 그치지 않고 현장에 꼭 필요한 장비관리 전문인력을 교육하는 일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이 부원장은 "국내 연구장비 개발 기업들도 자력으로 생산하는 국산 장비가 많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 때문에 국내 연구자들의 수요가 적은 게 사실"이라며 "기초지원연은 국산 장비의 수요를 늘리는 데 기여하고자 연구자들이 연구소에서 직접 국산 장비를 직접 사용해 보고 홍보가 되도록 플랫폼을 구축해 국산 연구장비의 인지도를 높이는 활로 역할을 하겠다"고 역설했다.

◆ "분석과학으로 사회 문제 해결"…한국 과학계 '분석과학 활성화' 강조

분석과학에 대한 기초지원연의 주력 영역이 연구장비 개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 부원장은 간단한 예를 들며 분석과학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병원에 가면 MRI나 CT를 촬영하는데 이전에는 직접 수술해야만 인체 내부를 볼 수 있었던 것을 이제는 수술 없이 장비를 바로 볼 수 있게 됐다. 그 비결이 바로 분석과학의 힘이다. 의료기술의 혁명을 불러온 것이 바로 분석과학인 것이다.

이 부원장은 "분석과학의 핵심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만들어 주는 과학"이라며 "분석과학이 발전해야 과학이 발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최근 기초지원연에서 노로바이러스 농축기술을 개발해 기술이전 한 성과도 분석과학의 좋은 사례다. 이번 성과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식품 오염 여부를 파악하고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는 기술이다. 노로바이러스를 빠르게 농축할 수 있는 첨단 분석과학 기술을 적용해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이 부원장은 "기초지원연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제해결형 분석과학 연구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며 "그동안 쌓아온 연구역량을 바탕으로 문제해결형 분석법에 초점을 맞춰 건강·보건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에너지, 환경, 안전 등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부원장은 "우리 사회가 분석기술 자체를 빵찍는 기계처럼 단순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분석과학=연구'"라며 "연구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분석과학 기술을 총괄 지휘하며 원하는 결과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빠르게 진화하는 연구장비를 보급하고 연구하려면 한 차원 높은 분석과학 연구를 우리 과학계가 활성화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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