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NHK 土 저녁 '스고 와자'…일본 기술 저력에 '서늘'
제조업 경쟁력 소멸되는 한국…몇 년뒤 모습은?

토요일 저녁 8시. 저녁을 먹고 가족들이 둘러 앉아 TV 보기 좋은 시간이다. 이른바 황금시간대.

이러한 때 한국과 일본의 프로그램이 다르다.

한국은 예능이 대세다. 리얼 예능의 절대강자인 무한도전을 비롯해 불후의 명곡, 놀라운 대회 스타킹 등이 방영된다. 종편도 비슷하다. 공영방송인 KBS1만이 교양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일본은 대담과 특집 등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 가운데 주목을 끄는 프로그램의 하나가 NHK의 '超絶凄技(ちょうぜつ すごワザ)'. 기절초풍 초정밀 기술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http://www4.nhk.or.jp/sugowaza/)

이 프로그램은 토요타 자동차가 소재한 나고야 NHK에서 만들어 일본 전역에 소개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로 치면 울산 KBS 프로그램이 전국 방송이 된 사례라 하겠다.

주된 내용은 제조업에 쓰이는 초정밀 기술을 두 개의 팀이 나눠 겨루는 것이다.첫 번째 방영된 진구(眞球)란 프로그램은 완벽한 쇠구슬을 만드는 대결이다. 베어링 등에 쓰이는 쇠구슬은 산업 거의 전분야에 활용된다. 이 구슬의 완벽한 동그란 모양은 효율성 향상에 절대적 역할을 한다. 그래서 완벽한 쇠구슬을 만드는 것은 제조업에 있어 중요하다. 하지만 말이 쉽지 완벽한 구체(球体)를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둥글함을 검증하기 위해 폭 7.5cm, 길이 20m의 레일 위에 구체를 굴린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당구공은 나름 동그랗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당구공이 레일 위에서 구른 거리는 3m 남짓. 베어링 회사의 전문가가 자신들의 기술로 만든 5백g 정도의 쇠구슬이 구른 길이는 16.25m.

이를 놓고 두 회사가 완벽한 쇠구슬을 만들기 위해 1달 동안 준비를 한다. 한 회사는 인공 고관절에 쓰이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 다른 한 회사는 포크레인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 다같이 일정한 부분의 구체는 만드는 회사이다. 두 회사 모두 종업원 규모는 20여 명 남짓.

한 번도 완벽한 구체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가운데 1달 동안 갖가지 궁리를 짜내며 씨름한 끝에 드디어 공개 녹화장에서 각자 만들어 온 쇠구슬을 갖고 실력을 겨룬다.

2013년도 12월 연말에 파일롯 프로그램이 방영되며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정규방송화가 되어 지금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프로그램의 특징은 일본 제조업의 초정밀함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 장인들의 손감각과 젊은이들의 능숙한 기계 조작, 대학 교수의 정밀 제조에 대한 열정 등등이 전해진다. 만드는 것은 팽이, 종이비행기, 로프,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 냄비, 퍼터 등 다양하다. 하나의 주제를 전편과 후편으로 만든다. 전편은 제작 과정을, 후편은 만들어 온 것을 갖고 벌이는 대결과 대결 이후 기술을 더욱 연마하기 위해 다시금 도전하는 모습 등을 전한다.

대결도 하지만 함께 힘을 뭉쳐 기네스북에 도전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물건 만들기의 진수를 다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가운데 인상적인 것이 출연자들의 연령대와 모습. 대부분의 출연자가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기능인들이다. 현장에서 기름밥을 먹은 지 20여년 가까워 한창 물이 올라 정상의 상태에 올라 있는 사람들. 이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자신들의 실력을 더욱 쌓는 과정이 많이 포함된다.

우리 나라 비슷한 프로그램에 sbs의 달인이 있다. 달인들이 주로 자영업이나 수공업 단계에서 숙련도를 그리고 있다면 이 프로그램은 제조업에서의 정밀도를 다룬다. 현장에서 입는 작업복을 입고 나와 자랑스럽게 자신의 기술을 펼쳐보이는 모습은 그 나라의 기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얼마전 조선일보에서는 생산현장에서 젊은이가 사라지고 있고, 젊은 사람들은 제조업에 미래가 없어 현장을 기피한다고 보도했다. 제조업이 시들어져가는 듯한 우리 현실에 비춰볼 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증권시장은 그 나라 경제력의 잣대이기도 하다. 2015년 1월 현재 도쿄 증시에는 3천4백70개의 기업이 상장됐다. 한국 증시 상장사수는 1천8백59개. 기업수는 약 1.8배가 많은 셈이다. 하지만 시가총액은 일본이 4조3천7백79억 달러이고,한국이 1조2천1백27억 달러. 일본이 우리에 비해 3.6배가 많은 셈이다.

여기에 하나 더 하면 1백년된 장수기업이 일본이 3만여개인데 우리는 단 두 개.

한마디로 기업 경쟁력이 일본에 비해 우리가 상대가 되지 않는 것.

이달 초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벤처축제라 불린 SXSW에서는 일본의 스타트업들이 눈길을 끌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3/18/2015031804335.html)

일반적으로 벤처붐이 우리보다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전시회 참가기업수는 한국의 4배인 20개 기업이 참가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대부분이 하드웨어 기업들이라는 것. 우리가 아이디어 중심의 SW기업들이 많다면 일본은 제조 기반의 로봇, 웨어러블, 가상현실 기기 등등이 많은 것이다. 그 기반에는 스고와자 같은 프로그램이 밑받침이 된 것이다.

경제의 기조는 여전히 강함에도 한눈 팔지 않고 더욱 정밀한 기술을 연마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나라가 있다. 경제 기조가 절정기를 지난 것이 완연함에도 긴장은 안보이고 과거의 영광에 탐닉하며 기술에는 관심이 없고 예능에만 신경을 쓰는 나라가 있다. 두 나라의 5년뒤, 10년뒤 운명은 어떻게 갈라질까?

광복 70년을 맞았다. 지난 영광을 노래하지만 미래는 안보인다. 적은 외부에 더 강하게 존재함에도 바깥은 안보고 내부에서 치고 받고 싸운다. 국론은 찢겨져 있고, 미래에 대한 공감대는 없다. 한민족의 고질병은 눈앞 내부의 적만을 보고, 세상의 흐름은 무시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조총을 비롯해 세계의 흐름에 무지했고, 대한제국 말기에는 제국주의의 밀물을 외면하고 문을 걸어잠갔다. 그 결과 국토는 피폐해졌고, 나라도 잃은 바 있다. 피해는 문물이 발전할수록 더 커진다. 임진왜란 보다는 식민지 시대가, 그 때 보다는 한국 전쟁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의 피해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나라를 그냥 도와주지 않는다. 오히려 먹거리가 되면 사정없이 덤벼든다. 주변국들은 자중지란으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넘어지기를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은 우리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차이는 강자와 약자의 차이이기도 하다. 강자는 위험 요소가 없도록 주변을 정리한다. 위험이 없도록, 위기가 닥쳐도 대비가 가능하도록 한다. 이전에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고 미 항모가 서해에 진입하겠다고 할 때 중국은 실탄을 써서라도 저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 항모가 진입하면 북경까지 레이더로 다 훑어지기 때문에 반발한 것이다. 최근의 사드 논란도 그 연장선상이다. 결국 미 항모는 서해에 진입하지 못했다.

칼에 찔리기 전에 그 위험 요소 자체를 위기로 여기고 대응하는 것이다. 중국이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에 개입한 큰 이유의 하나가 강대국과 바로 국경을 맞대는 것이 아니라 완충지대를 설정하기 위해서 였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약자는 칼에 찔려야만 그것을 위기로 느낀다. 그것도 애써 합리화를 시킨다. 천안함이나 연평도 포격처럼 직접 맞아야 화들짝 놀라고 대비책을 세운다. 하지만 그도 오래가지 않는다.

사드와 AIIB, 메르켈 독일 수상의 방일, 미셸 오바마의 방일, 아베 수상의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 등등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상황이 팽팽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평안하다. 우리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서 듣고 세계도 그런 듯 여긴다. 인터넷이 그렇게 발달해 세계의 정보를 다 접할 수 있음에도 우리 것만 챙기는 유아독존적 의식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TV 프로그램 하나를 이야기하며 너무 논리가 비약하고, 상황을 비관적으로 전망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꽃이 피고, 바람이 따뜻해지면 봄이 온 것이듯, 주변의 움직임들이 우리를 긴장하게 하고 그에 비해 너무 태연한 모습들이 불안하게만 여겨진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일까?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나중에 후손들로부터 욕 먹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보수, 진보 무관하게 우리 모두가 풀어야할 공통의 숙제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스고 와자의 4월부터 시작하는 시즌 3는 독일의 중소기업과 함께 정밀도를 겨룬다. 최고는 최고를 알아보고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며 더욱 강해지는 것이 순리라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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