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박쥐학자의 날조된 '자연'을 향한 유쾌한 도전장
저자 댄 리스킨

부드러운 풀밭이나 폭포수가 떨어지는 물웅덩이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모델들이 한 올도 흐트러짐 없는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뛰어다닌다. 이런 광고에는 꽃과 나비, 심지어 말까지 등장하지만 말벌이나 전갈, 거머리는 보이지 않는다. '비호감' 생물들은 판매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보는 자연의 형상은 언제나 반쪽짜리다. _ 서문 중에서

현대인에게 자연은 먹거리나 제공하는 풍요의 땅일 뿐, 욕실 곰팡이나 개미, 촌충의 서식지가 아니다. 이 책의 저자 댄 리스킨은 인류가 진화할수록 엄연한 자연의 구성원들이 단지 '비호감'이라는 이유로 되레 침입자 취급을 받고, 자연이 생존을 위해 행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잔인함조차 기업의 상술로 미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생물학자로서 '오로지 꿀만 있고 침을 쏘는 벌은 없는' 기형적인 자연은 그저 인간의 환상 속에 존재할 뿐이라고 역설한다.

책은 '자연적'인 것을 추구하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의문을 던지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온화한' 대자연의 이면을 수백 종의 다양한 동식물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 준다. 특히 탐욕, 색욕, 나태, 탐식, 질투, 분노, 오만이라는 인간의 7가지 죄악을 자연에 투영해 자연의 욕망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했다. 독자들은 흡혈박쥐를 직접 보겠다는 일념으로 걸쭉한 박쥐 배설물의 진창 속을 기어 다니고, 자신의 두피에 자리를 잡은 말파리 애벌레와 친구가 되고, 아들을 출산하는 부인 곁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저자와 함께 자연의 예기치 못한 순간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자, 이제 수백여 종의 매혹적이고도 섬뜩한 생물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 보자. 이 책은 혹독한 자연이 우리를 어떻게 인간답게 만들었고, 우리가 보금자리라 부르는 이 끔찍하고도 경이로운 지구에 대한 인간의 책무는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

◆ 자연이 온화하고 풍요로운 존재라는 인간 중심적 사고의 모순을 파헤치다

자연은 아름다운 한 장의 풍경 사진이 아니다. 그곳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이기적인 행위가 난무하는 잔인한 전쟁터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속에서 전형적으로 묘사되는 자연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연을 떠올릴 때, '평화롭고 온화한' 이라는 수식어가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는 대개 우리에게 뭔가를 팔고자 하는 광고회사와 기업들의 상술 때문이다. 그들은 자연을 '늘 행복한 삶을 선사하는 자애로운 어머니'로 포장하고 날조하며 이득을 챙긴다.

저자는 이처럼 자연의 양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인간은 더 '자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진짜 '자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는 유행처럼 번지는 '자연적인' 섭식, 운동, 의학을 비롯한 생활 전반에 걸친 강요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진화했으니 다시 수천 년 전 인류가 했던 방식대로 먹고 행동하면 쉽게 해결될 것'이라는 안일하고 불완전한 발상에서 시작되었다고 역설한다.

책은 우리의 환상을 깨는 추하고 잔혹한 자연 세계를 소개하는 한편, 한 인간이 또 다른 한 인간에게 느끼는 감정, 이를테면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사적인 여정도 보여 준다. 한 인간이 타인을 향해 갖는 좋은 감정을 사람들은 흔히 '선' 혹은 '사랑'이라 표현하지만, 저자에게 아들 '샘'의 탄생은 DNA를 후대에 남기려는 생물학적 욕구를 인정하며 살아온 생물학자로서의 자신과, 한 인간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된 아버지로서의 자신 사이에서 마주하게 된 모순 그 자체였다. 이는 저자 스스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리처드 도킨스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의 주제와도 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샘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나의 DNA를 보호하고 남기려는 생물학적 욕구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지극히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선이나 악이라는 개념을 적용해야 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우리가 부성애라고 느끼는 것은 사실 다음 세대로 전달된 자신의 DNA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말파리의 행동이 '악'이 아니라면, 샘에 대한 내 감정을 '순수하다'거나 '선하다'고 할 이유도 딱히 없다. 내가 뭔가 굉장한 경험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내 DNA가 뇌를 속여 믿게 만든 것일 뿐이다. _ 본문 23쪽

인간이 사회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날조된 자연의 이면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책은 대자연이 인간보다 7대 죄악을 더 악랄하게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의 답과, 자식을 향한 넘치는 감정의 정체를 찾기 위해 '이기적 자연'의 밀림 깊은 곳으로 향한다.

사기, 절도, 강간, 유혹, 불륜, 배신, 복수가 뒤엉킨 생존과 번식을 위한 막장 드라마

자연은 삶과 죽음이 복잡하게 뒤얽힌 역동적인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전적으로 에너지를 얻기 위한 이기적인 전쟁에 의해 굴러간다. 에너지는 숙주에서 기생생물로, 피식자에서 포식자로, 부패한 사체에서 청소동물로 살아남아서 DNA를 전달하기 위해 끝없이 전쟁을 벌이는 생명체들 사이를 흐른다.

책은 가장 무자비한 자연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특히 저자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7가지 죄악을 길잡이로 삼아, 자연이 실로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탐욕: 얼룩말을 죽이는 것은 사자가 아니라 얼룩말이다
샌드타이거상어는 어미의 자궁에 있는 난낭 속에서 발생한다. 난낭 속에 들어 있는 각각의 배胚들은 발생에 필요한 에너지를 각자의 난황으로부터 공급받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계란 노른자와 비슷한 이 난황은 상어가 태어날 준비가 되기 전에 다 고갈되어 버린다. 그러면 발생이 가장 빠른 첫째 새끼 상어는 자궁 속을 헤엄쳐 다니면서 다른 난낭과 그 안에 들어 있는 형제들을 먹어 치운다. _ 본문 35쪽

사실 이 새끼 상어는 아무 난낭이나 닥치는 대로 먹는 게 아니라 가장 큰 난낭을 찾아 먼저 먹어 치운다. 그렇게 함으로써 훗날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자라날 형제의 싹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나와 같은 부류의 일원들은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장소에 살고 싶어 하고, 나와 같은 먹이를 먹고 싶어 하고, 나와 같은 장소에서 자식을 낳고 싶어 하고, 내가 자식에게 먹이고 싶은 것을 그 자식에게 먹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위협적인 동물은 자신과 가장 닮은 동물이다.

이처럼 자연계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행위들은 대부분 배고픔이나 성욕보다는 자신의 DNA를 남기려는 단계에서 주로 관찰된다. 예를 들어 보석말벌은 새로 태어날 자식들이 좀 더 신선한 상태의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먹이를 살려두고, 잔인하게도 매일 조금씩 뜯어 먹게 한다.

나태: 기생충 낙원의 평범한 하루
보석말벌에게 쏘인 바퀴벌레는 아무 의지가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면 말벌은 바퀴벌레의 더듬이를 잡아 개처럼 끌고 자신의 굴로 들어가 바퀴벌레의 몸속에 알을 낳고 땅에 묻는다.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곧장 바퀴벌레의 몸을 파먹기 시작한다. 애벌레는 가능한 한 바퀴벌레를 신선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바퀴벌레의 몸 곳곳에 항균 물질을 분비하고 치밀한 순서에 따라 바퀴벌레의 장기를 갉아먹는다. 이런 전략 덕분에 말벌의 애벌레는 바퀴벌레를 몇 주에 걸쳐 먹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끔찍한 사실은, 애벌레가 성체 말벌이 되어 바퀴벌레의 몸을 뚫고 굴 밖으로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퀴벌레가 살아 있다는 점이다. _ 본문 114쪽

살아 있는 숙주의 몸에 알을 낳는 것 역시 생물학적으로 드문 현상이 아니다. 살아 있는 숙주의 몸에 알을 낳는 동물을 '포식기생자'라 부르는데, 곤충의 약 10퍼센트가 여기에 속한다. 예를 들어 전 세계 모든 파리종의 약 5분의 1이 포식기생자에 해당한다. 우리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평화롭고 온화한' 자연

곳곳에 사는 수많은 동식물이 이런 고문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운 면만 보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자연의 실상은 썩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그 모든 이기적이고 교활한 행위들은 자신의 DNA를 후대로 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잡아먹거나 독살하고, 우리 몸에 기생하면서 알을 까려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 자연의 추악함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자연적'인 삶을 사는 길이다

사람들이 '자연'이라는 단어에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그런 인식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인류가 자신을 동물의 한 종일 뿐이라고 인정하는 대신, 자연을 성스럽고 영적인 반열로 끌어올렸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연이 경이롭고 완벽하다고 말함으로써, 인류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도 자연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을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DNA를 복제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놓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성스런 피조물이 아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하나의 이미지일 수 있지만, 막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살겠다고 몸부림 중이다. 이처럼 자연은 때로는 아름답지만 대체로 잔인하고 추악한 피바다이며, 인류는 그 한복판에서 진화해 왔다.

하지만 저자는 자연이 아무리 무자비하다 해도, 인간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인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백 종의 동식물과는 다른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눈앞의 먹이에 급급해 멸종 위기에 처하고 만 고프 섬의 생쥐를 예로 들며, 인간의 자연적 본능이 마치 지적 행동의 출발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멈추고, 인간다움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만약 이 생쥐들이 자신들이 향하고 있는 길을 깨달아서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행동을 당장 멈추고, 집단적으로 욕구를 조절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그들은 그럴 수 없다. 생쥐는 생쥐이기 때문이다. 육식을 멈추고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는 자연선택에 의해 도태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모든 생쥐가 적게 먹거나 새끼를 덜 낳는 전략이 집단 전체에 유익하다고 해도, 양심적인 생쥐보다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생쥐들이 우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진화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처리하지는 못한다. 고프 섬의 생쥐는 결국 본능을 따르다가 불운을 맞게 될 것이다. _ 본문 308쪽

저자는 '공존'이 아닌 '생존'을 이야기한다. 사실 자연은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다. 단지 우리가 꾸며낸 거짓된 환상이 우리를 배신했을 뿐이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찾아 오랜 시간을 헤맨 인류에게, 우리 손으로 자연을 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자부심'이라는 저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생쥐가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대자연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찾아야 할 진정한 '생존 전략'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가 동물보다 한 단계 높은 곳에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출처: 인터파크도서, 출판: 부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