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연구경영③]현장경험 전문가 터부시 '사농공상' 의식 만연일부 출연연 수십년간 테크니션 채용 안해…기술 승계 단절 우려연구지원인력 중요성 커지는 흐름에도 이론중심 연구분위기 치중

"우리 부서 기술원 막내가 40대 초반이다. 그 친구가 대학을 마치고 연구원 왔으니 지난 15년간 기술원을 뽑지 않은 셈이다. 기술 노하우는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경험하고 체험하며 쌓이는 것인데 앞으로가 큰 걱정이다."(M 출연연 34년차 L 책임기술원)

"출연연 인력이 연구직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박사학위 취득자가 기술원으로 오기도 하는데 인식이나 대우에서 차이가 커 남아있지 않는다. 연구원은 이론으로 안다면 테크니션은 실무중심이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테크니션의 경험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인데 경험은 무시하고 이론만 강조하니 출연연 몰락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N 출연연 30년차 J 책임기술원)

연구자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테크니션이 사라지고 있다. 연구현장에서 수십년씩 과학자들과 호흡을 맞추며 성과창출에 기여해온 이들이 역할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테크니션 인력 단절로 축적된 기술 노하우도 사장될 공산이 크다.

1981년 출연연 기술원으로 합류한 L 책임기술원은 올해가 정년이다. 지난 15년간 기술원이 채용되지 않으면서 현장에서 쌓아온 기술들을 제대로 전수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마음이 크다. 그는 급한 생각에 공대에 다니는 아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하나씩 지도하고 있다.

그가 근무하는 연구소에서 그동안 기술원을 채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박사까지 마치고 온 기술원의 경우 연구직에 비해 떨어지는 처우와 낮은 인식때문에 연구직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L 책임기술원은 "더 나은 자리를 찾아가는 후배들을 잡을 수는 없었다"면서 "기술원이 부족하면서 연구자들은 외부에서 샘플을 만들어오는데 연구성과가 구체화 되려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봐야하는데 그런 과정이 빠지니 창의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의 연구직은 이론과 현장 경험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지는데 우리나라는 연구직의 경우 이론만 머리에 채워온다. 현장 감각이 없다"면서 "더 큰 문제는 기술원을 뽑지않으면서 연구기반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력 30년차의 J 책임기술원 상황은 더 열악하다. 1984년 그가 테크니션으로 출연연에 몸담았을 때만 해도 특진제도도 있어 나름 일할맛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소속된 출연연도 연구직 중심으로 분위기가 쏠리면서 테크니션은 인사평가에서도 소외되기 일쑤였고 여러가지에서 찬밥신세가 되는 일이 많아졌다.

J 책임기술원은 "지난해 12월 퇴직후 임금피크제로 후배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데 위촉 기술원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서 "기술을 제대로 알려면 10년정도 걸리는데 걱정이다. 사명감이 아니라면 시간 낭비만 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벌써 뛰쳐나갔을 것"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또 "우리 연구소도 90년대 초반부터 테크니션 인력을 뽑지않고 있다. 출연연이 연구직 중심으로 가면서 테크니션 인력 비중을 줄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 출연연마다 연구직만 급증 부실연구 속출

 

1991년부터 2008년까지 연구개발현장의 연구직, 테크니션, 행정직의 변화. 전체 인원의 증가속에서 테크니션 인력만 감소했다.<이미지=STEPI 자료>
1991년부터 2008년까지 연구개발현장의 연구직, 테크니션, 행정직의 변화. 전체 인원의 증가속에서 테크니션 인력만 감소했다.<이미지=STEPI 자료>

"처음 출연연에 왔을 때만해도 연구직과 테크니션의 비율이 일대일 정도였다. 학사 출신으로 와서 연구하며 석박사 공부하고 같이 하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박사 중심으로 선발하면서 실제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 부실과제가 많고 논문으로만 대체하는 상황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실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2013년 12월 발표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지원 인력 현황'에 따르면 연구인력은 큰폭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테크니션 인력은 제자리 걸음 현상을 보이고 있다.

1991년부터 2008년까지 우리나라 연구직의 증가는 2.9배(293%), 행정인력은 3.2배(320%) 증가한 것에 비해 테크니션은 답보상태(101%)이다. 부족한 테크니션 인력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연구 성과는 연구비, 연구자의 아이디어, 기술원의 기획과 구체화, 기능직의 장비 활용을 통한 실험, 행정직의 지원 등이 톱니처럼 제대로 맞물릴 때 우수성과로 이어지기 마련. 각각 역할이 다를뿐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일 수 없는 것이다.

출연연 설립 초기 단계에서는 연구비가 연구성과 창출의 중요 요소로 작용했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지금은 GDP 대비 1위를 기록한다. 하지만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 부재로 그에 맞는 연구인력시스템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면서 연구현장은 인력의 고급화를 외치며 연구직이 중심이 됐고 기술원 인력은 채용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출연연별 인력구조 취재결과 국가핵융합연구소(연구직 49% 기술직 31% 행정직 20%)를 제외한 대부분의 출연연의 경우 연구직이 80%, 행정직이 13%, 기술직은 6~7% 내외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술원 비율이 10%를 넘지 못한다.

기술인력이 부족하고 연구자들은 논문과 특허건수로 평가하는 정부정책에 따라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노력보다 평가기준을 맞추는데 급급한 연구에 치우치고 있다는 현장의 평가가 많다.

◆ 과학기술 선진국 연구직과 테크니션 비율 대등

과학기술 선진국의 경우 연구인력과 연구지원인력의 비율이 대등한 편이다.

일본은 2007년 기준 공공연구기관 연구자는 전체인력 6만58명중 3만1899명(53.1%)이고 나머지는 연구지원인력이 절반을 차지해 우리나라와 다른 양상이다.

특히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경우 2013년 기준 전체 3397명의 인력 중 연구직군은 1985명 기술직은 877명 행정직은 535명으로 연구직 비율이 58.4% 규모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의 2007년 기준 총 고용인력은 1만2600여명. 이중 연구인력은 4400여명으로 전체 인력의 34.9%만 연구인력이며 나머지는 테크니션과 행정인력이다.

기술원이 더 많은 사례도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물리연구소 2000년 인력현황에 의하면 정규직원 중 기술원이 131명 연구원이 81명 기타 28명 훈련원 6명으로 기술원이 가장 많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연구효율성을 위해 연구인력대비 연구지원인력이 절반이상을 차지하며 연구자는 연구에 집중하고 연구지원인력은 협업의 개념으로 지원에 몰입하며 실질적인 성과를 내놓고 있다.

STEPI 관계자는 "이에 비해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나라 출연연의 인력증가형태를 보면 연구인력의 연평균 증가율에 비해 연구지원인력의 증가율은 절반 수준"이라면서 "연구성과의 효율적 창출과 연구인력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위해서라도 연구지원인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피력했다.

◆ 현장 경험무시하고 물려줄 후배 없어…기술 공황 우려

연구현장의 1세대 기술원들이 하나 둘 퇴직을 앞두고 있다. 일부는 이미 퇴직을 한 경우도 있다. 이들이 30년 이상씩 현장에서 쌓아 온 경험과 전문성은 논문과 책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생생한 과학현장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하우가 후배들에게 제대로 전수되지 않으면서 우리나라는 자칫 기술 공황에 빠질 수 있다는게 1세대 기술원들의 걱정이다.

퇴직은 앞둔 K 기술원은 "예전 기술원은 공고를 거쳐 공대를 나온 인력이 대부분으로 전기 전자 기계 등 공대분야를 전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한가지 전공만 하고와서 그런지 기술 습득 시간이 더디다"면서 "특히 기술원이 근무하는 곳은 위험요소들이 많아 현장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대로 알려면 10년은 걸리는데 정부에서는 3년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국책연구소는 기업과 달리 업무가 복잡하고 위험요소도 많다. 현장은 어느 한가지만 알아서는 안된다. 앞으로 기술원 선발시 신입보다 기업에서 5~6년정도 근무한 경험자를 선발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당연히 그에 맞는 인식 전환과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현장경험이 없는 연구자들의 졸속 일처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연구현장에서 30년간 일한 경험자의 이야기는 흘려 듣고 규정에 따라 서류 작업만 하게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면서 "기관장에게 합리적인 일처리 프로세스를 제안했으나 양반집 마당쇠가 이야기 하는가 하고 지나쳐 버리더라"며 잘못된 인식을 비난했다.

L 기술원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석학도 많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처럼 기술경쟁력이 있는 전문가도 배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입안에 참여하는 기득권자들의 마인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덕넷 설문조사(4월 20~25일) 결과 연구 효율을 위해 연구직과 테크니션과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직과 연구지원인력의 역할 분담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243명중 205명이 부족하다고 답변했다.<이미지=대덕넷 자료>
연구직과 연구지원인력의 역할 분담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243명중 205명이 부족하다고 답변했다.<이미지=대덕넷 자료>

연구효율 및 활성화를 위한 연구자와 테크니션간의 협업 수준을 묻는 질문에 매우 부족하다는 답변이 23.9%(55명), 부족하다는 답변은 56.5%(130명)로 응답자의 79%이상이 협업이 안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우수하다와 매우 우수하다고 답변한 과학자는 각 18.7%(43명), 0.9%(2명) 뿐이었다.

'연구원 내에 테크니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부족하다는 답변이 48.5%(112명)로 가장 높았으며, 전혀 없다고 답변한 응답자도 16.9%(39명)에 달했다. 이에 비해 많다는 답변은 3%(7명), 적당히 있다 31.6%(73명)으로 확인됐다.

 

연구소내에 테크니션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151명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답변해 기술인력 부족의 현실이 그대로 나타났다.<이미지=대덕넷 자료>
연구소내에 테크니션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151명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답변해 기술인력 부족의 현실이 그대로 나타났다.<이미지=대덕넷 자료>

'연구직과 연구지원인력(행정 테크니션)의 역할분담이 제대로 이뤄지는가'를 묻는 항목에는 부족하다는 답변이 55.1%(129명), 매우 부족하다는 32.5%(76명)로 87% 이상이 역할분담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우수하다는 12%(28명), 매우 우수하다는 0.4%(1명)로 나왔다.

과학계 한 원로는 "한국 과학계가 머리로만 연구하는 덫에 빠졌다. 테크니션들의 공백이 앞으로 여실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10년 후가 더 큰일이다. 아이디어만 있고 이를 구체화하지 못하는 프로세스가 계속되는 한 한국 과학계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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