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박용기/ UST 교무처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문연구원

5월이 시작되었다. 5월은 계절상 아직 봄이지만 4월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의 봄이라는 생각이 든다. 4월이 간간히 꽃샘추위와 봄바람 그리고 정신없이 피어나는 꽃들로 인해 어수선한 느낌이었다면, 5월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보다 원숙해진 느낌이 아닌가 생각한다. 4월이 사춘기의 소녀였다면 5월은 막 화장을 시작한 대학 초년생 정도라 할까? 그래서 나는 5월을 참 좋아한다.

아내와 내가 외손녀를 돌보기 시작하기 이전인 몇 년 전만 해도 매년 5월이 되면 우리는 금산의 산안리라는 마을에 가곤 하였다. 이 마을은 산벚꽃으로 유명하지만 우리가 이 마을을 찾는 시기는 산벚꽃축제가 끝난 뒤인 5월 초였다. 작은 계곡과 야산 사이로 난 평탄한 산길을 따라 걸으며 한적한 자연을 즐길 수 있고 더욱이 길 옆 야산을 조금만 올라도 취나물이 많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종류는 많지 않지만 야생화들도 피어 있어 취나물 뜯기를 좋아하는 아내뿐만 아니라 꽃사진을 찍는 나에게도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산안리의 꽃 – 각시붓꽃(좌), 구슬붕이(우). 아내와 내가 외손녀를 돌보기 시작하기 이전인 몇 년 전만 해도 매년 5월이 되면 우리는 금산의 산안리라는 마을에 가곤 하였다. 산에는 각시붓꽃, 구슬붕이, 둥글레, 병꽃 등이 피어 있기는 하였지만 야생화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125 s, F/4.5, ISO 100,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200 s, F/3.5, ISO 200
산안리의 꽃 – 각시붓꽃(좌), 구슬붕이(우). 아내와 내가 외손녀를 돌보기 시작하기 이전인 몇 년 전만 해도 매년 5월이 되면 우리는 금산의 산안리라는 마을에 가곤 하였다. 산에는 각시붓꽃, 구슬붕이, 둥글레, 병꽃 등이 피어 있기는 하였지만 야생화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125 s, F/4.5, ISO 100,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200 s, F/3.5, ISO 200

그런데 며칠전에 외손녀를 데리고 그곳에 가보기로 하였다. 이제 만 3살이 지나 아직 좀 어리다는 생각은 했지만 워낙 꽃과 나비와 새 등 자연을 좋아하는 아이여서 함께 가보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외손녀는 그곳을 너무 좋아하는게 아닌가? 평소에는 혼자 잘 놀지 않던 아이가 그곳에서는 자연을 만끽하면서 너무도 즐겁게 뛰어놀았다.

꽃보다 외손녀. 야생화는 그리 많지도 않고 상태나 배경으로 보아 좋은 사진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즐겁게 놀고 있는 외손녀의 사진을 찍기로 작전을 변경하였다.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125 s, F/4.5, ISO 200
꽃보다 외손녀. 야생화는 그리 많지도 않고 상태나 배경으로 보아 좋은 사진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즐겁게 놀고 있는 외손녀의 사진을 찍기로 작전을 변경하였다.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125 s, F/4.5, ISO 200

그 덕에 아내도 모처럼 아이로부터 약간의 자유를 얻어 취나물도 뜯고 산길을 걷기도 하면서 무척 즐거워하였다. 산에는 각시붓꽃, 구슬붕이, 둥글레, 병꽃 등이 피어 있기는 하였지만 야생화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간간히 보이는 은방울꽃은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그 곳에 유난히 많은 백선이라는 꽃도 이제 막 꽃망울이 맺혀 있어 좋은 사진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즐겁게 놀고 있는 외손녀의 사진을 찍기로 작전을 변경하였다. 5월의 연두빛 신록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오솔길 위에서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은 어떤 꽃 보다도 사진으로 담기에 아름다웠다.

양손에 꽃을 들고.5월의 연두빛 신록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오솔길 위에서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은 어떤 꽃 보다도 사진으로 담기에 아름다웠다.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160 s, F/4.5, ISO 200
양손에 꽃을 들고.5월의 연두빛 신록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오솔길 위에서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은 어떤 꽃 보다도 사진으로 담기에 아름다웠다.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160 s, F/4.5, ISO 200

아이가 뛰어노는 예쁜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아 아이의 엄마 아빠에게도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딸과 사위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바빠서 그러려니 하면서 우리는 모처럼 자연 속에 묻혀 오후 내내를 보내고 돌아왔다. 그런데 나중에 딸과 통화를 하던 중 딸이 사진을 받고 바로 전화를 했더니 우리가 둘 다 안받더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핸드폰을 살펴보았지만 부재중 전화 기록이 없었다. 내가 카톡으로 보낸 사진은 전달되었는데 딸이 건 전화는 오지 않은게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아마 그곳이 약간 오지여서 전화 신호가 수신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 사이에 우리는 디지털 세상과 잠시 분리되어 조용히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에 있었던 것 같다.

최근 읽은 한 외국의 칼럼에서 무언가 중압감을 느낄 때 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일들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전기코드를 뽑고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으라'였다. 늘 우리와 함께 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끄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거나 쉴 수 있는 장소를 찾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등나무꽃. 5월은 등나무꽃, 아카시꽃 등이 가득 피어나는 향기로운 계절이다.Pentax K-3, 87.5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400 s, F/3.5, ISO 200
등나무꽃. 5월은 등나무꽃, 아카시꽃 등이 가득 피어나는 향기로운 계절이다.Pentax K-3, 87.5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400 s, F/3.5, ISO 200

이팝나무꽃. 이팝나무의 흰꽃도 5월을 대표하는 꽃이다. Pentax K-3, PENTAX-D FA 100mm F2.8 MACRO, 1/50 s, F/3.5, ISO 100
이팝나무꽃. 이팝나무의 흰꽃도 5월을 대표하는 꽃이다. Pentax K-3, PENTAX-D FA 100mm F2.8 MACRO, 1/50 s, F/3.5, ISO 100

5월엔 금낭화, 매발톱, 둥글레, 은방울꽃이 피어나고, 등나무, 이팝나무, 아카시 등이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면서 꽃의 아름다움을 이어가겠지만, 무엇보다도 5월은 신록의 아름다움이 가장 빼어난 계절이다. 시인이며 수필가였던 피천득 선생의 '오월'이라는 시의 한 귀절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다. 신록을 바라다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느티나무의 5월. 5월은 신록의 아름다움이 가장 빼어난 계절이다. 시인이며 수필가였던 피천득 선생의 ‘오월’이라는 시의 한 귀절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닫는다. 신록을 바라다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Pentax K-3, 130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1600 s, F/3.2, ISO 200
느티나무의 5월. 5월은 신록의 아름다움이 가장 빼어난 계절이다. 시인이며 수필가였던 피천득 선생의 ‘오월’이라는 시의 한 귀절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닫는다. 신록을 바라다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Pentax K-3, 130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1600 s, F/3.2, ISO 200


오월/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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