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를 가다上]한-라오스 농업·에너지 적정기술센터, 농업기술 기반 사업모델 구축 목표
김종복 CTO, "대학 졸업생 숙박업소 취직…라오스 젊은이 '직장' 만들어주고파"

[편집자의 편지]

라오스가 인기다. 일반인들은 TV프로그램에 소개돼 각광받는 여행지로 관심을 갖고 있지만, 과학산업계 전문가들은 2015년 말 출범을 앞둔 AEC(ASEAN Economic Community:아세안경제공동체)의 핵심투자처로 주목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10개국으로 구성된 AEC는 차세대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로 기대를 모으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주요 해상교통로에 위치해 지정학적 가치가 높다. 라오스는 그 중 태국, 미얀마,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5개국과 국토를 인접하고 있어 육로 교역로의 지리적 중심이다.

대덕넷은 한-라오스 농업‧에너지 적정기술센터(上편)와 코라오그룹(下편) 등 라오스에 진출한 한국의 과학, 기업을 찾았다. 현지 탐방을 통해 라오스의 잠재력과 가능성, 라오스와의 협력에서 과학기술계의 역할 등을 모색해본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제2의 도시이자 북부의 중심 루앙프라방까지의 거리는 약426km.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 30km 먼 정도. 그러나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육로로 이동은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라오스 제1의 고속도로지만 다녀온 사람들은 그 길을 '미시령을 열 번쯤 넘는 기분'이라고 한다.

건기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4월말, 작열하는 태양 아래 장기간 자동차 여행 대신 국내선을 이용하자 비행시간 40분 내내 창밖으로 보이는 배경은 온통 초록이다. 이상의 작품 '권태'가 떠오르며 라오스 국토의 80%가 산지라는 것이 실감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라오스는 대체로 이런 풍경이다. <사진=김요셉 기자>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라오스는 대체로 이런 풍경이다. <사진=김요셉 기자>

공항에서 차로 20분 정도 더 달려 라오스 제2국립 대학이라는 수파노봉대학교에 도착하자 정면으로 라오스 초대 대통령 수파노봉의 동상이 보인다. 수파노봉대학교는 2005년 우리나라가 최초로 라오스에 경제개발협력기금(EDCF) 형식으로 총 2300만 달러의 차관을 지원, 2008년 준공했다. 라오스 북부지역 거점국립대학교로 총5개 단과대학에 교직원 290명, 학생 약 4000명 규모다. 우리나라는 캠퍼스 건물 공사 외에도 교과과정 개발, 교원 양성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도 함께 지원하며 학교 운영과 관련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이곳에 지난 2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은 '한-라오스 농업‧에너지 적정기술센터(센터장 백두주)'를 개소했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국내에서 활용되고 있는 범용과학기술을 현지 여건에 따라 맞춤 개발한 기술로서 개도국의 생존, 생계 문제 해결과 지역사회 개발을 위해 연구, 개발되는 과학기술을 총칭한다.

적정과학기술 거점센터 지원사업은 적정과학기술 현지시장조사, 연구개발, 교육, 상용화까지 전 과정을 패키지화해 지원하는 것. 센터당 4년간 10~3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과학한류 창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3년 캄보디아 물 적정기술센터를 설립했고, 라오스가 두 번째다. 최근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경험과 노하우에 대한 개도국의 협력요청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에 따라 평균 8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고.

수파노봉대학교는 루앙프라방 시내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붉은색 지붕의 낮은 건물들이 대학교가 아니라 관저나 기숙사, 숙소처럼 보인다. <사진=김요셉 기자>
수파노봉대학교는 루앙프라방 시내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붉은색 지붕의 낮은 건물들이 대학교가 아니라 관저나 기숙사, 숙소처럼 보인다. <사진=김요셉 기자>

라오스센터에는 개도국 적정기술 협력 사업을 다년간 추진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사)나눔과기술 소속의 교수진과 연구원들이 파견됐다. 센터 개소는 지난 2월이지만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현지에 자리를 잡고 사업화 아이템 발굴을 위한 시장조사를 진행해 왔다. 올 6월에 농업과 에너지 분야에서 10개 아이템을 선정, 2차 년도부터는 본격적인 진행을 시작하기 위해 월화수목 금금금으로 땀흘리고 있다.

김종복 센터 CTO는 라오스의 강렬한 태양 탓에 반 년만에 피부가 검게 탔다. <사진=김요셉 기자>
김종복 센터 CTO는 라오스의 강렬한 태양 탓에 반 년만에 피부가 검게 탔다. <사진=김요셉 기자>
김종복 한-라오스 농업‧에너지 적정기술센터 CTO는 "라오스는 인구의 6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자급자족 이상의 목적은 없다"며 "이 때문에 생산성도 낮고, 농산물 가공 사업이 거의 없다보니 주변국과의 농업분야 교역에서 수탈에 가까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개량 기술과 부가가치를 확대하는 가공 기술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특히 라오스가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유일하게 찰기(sticky)가 있는 쌀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또 센터는 태양에너지와 바이오에너지 등 에너지 분야의 기술 개발도 목표로 한다. 센터가 위치한 북부지역은 산악지대로서 전력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소규모 마을이 산재한 상황. 에너지가 중요한 만큼 태양에너지나 농업 부산물을 활용한 바이오에너지 기술 등을 확보하게 된다면 주민생활 편의 증진은 물론 조합 형태의 사업화를 통한 마을 단위의 먹거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종복 CTO는 "핵심아이템이 선정되면 학교를 중심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시범마을을 지정해 개발된 기술을 구현할 설비 구축과 현지 기업에 의한 사업화를 종합 지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 라오스의 최대 장점 '젊음'…교육과 과학기술의 빈곤은 경제 보다 더 큰 문제
"자생력 높여 지속가능한 사업모델 구축해주는 방향으로 접근"

이들의 성공적인 진출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최근 라오스가 브릭스의 뒤를 이을 차세대 성장축으로 손꼽히는 경제권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등 가치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브릭스 경제성장률의 2배에 가까운 수치를 보이고 있는 'GMS(Greater Mekong Subregion:메콩강 유역 경제권)'는 중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등 메콩강을 끼고 있는 6개국을 말하는데 약 4200㎞의 메콩강에서 라오스를 거치는 구간만 1800㎞에 달한다. 이는 라오스 전 국토의 90%다. 수력발전이 최대한 개발되면 '동남아시아의 배터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구글지도를 통해 본 라오스. 중국,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5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출처=구글>
구글지도를 통해 본 라오스. 중국,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5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출처=구글>

또 AEC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미개발국으로 꼽히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은 'CLMV'로 묶어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인도차이나반도 국가들 사이에서도 경제적으로 큰 격차를 보이지만 그만큼 높은 시장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CLMV 국가들의 인건비는 중국의 30% 수준에 불과해 중국을 대체할 글로벌 생산기지로 꼽히는데다 해마다 6% 이상 성장, 소비시장으로서의 가능성도 높다.

특히 라오스의 최대 장점은 발전 가능성이다. 세계은행(web of world university ETS)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라오스의 1인당 GDP는 1476달러로 최빈국 중 하나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평균 8.05%로 아세안 내에서 베트남(8.23%) 다음으로 높았으며, 2013년에는 8.2%로 1위를 차지했다. 라오스의 인구 역시 2014년 기준 680만 명으로 세계인구의 0.1% 수준에 불과하지만 연간 인구증가율은 1.85%로 아세안 내에서도 가장 높다. 또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3.8%에 불과하고 노령화지수(Ageing Index)가 10.8점으로 아세안 내에서 가장 젊다.(우리나라의 경우 12.2%, 81.7점)

이러한 성장 잠재력 때문에 세계주요국들이 라오스를 대상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라오스의 최대 투자국가이며 일본은 최대 원조국이다.

하지만 교육수준이 낮아 노동자의 숙련도와 기술력이 미흡하다는 것은 라오스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라오스의 중등교육과정 진학률이 41%에 불과하다. 또 2002년 기준으로 라오스의 GDP 대비 연구개발 지출은 0.04%뿐이며, 인구 백만 명당 연구원 수가 16명에 불과하다. AEC를 통해 상품과 서비스, 노동력의 이동이 자유로운 단일 시장이 구현되면 라오스로 주변국 숙련 노동자들이 밀려들어 올 수 있다.

때문에 라오스 진출에는 산업계와 외교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 단순 기술 투자 대신 인프라를 갖춰주고 자생력을 키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4명의 한국인 직원이 근무 중인 센터에 올해 8월이면 3~4명이 충원될 예정이다. <사진=김요셉 기자>
현재 4명의 한국인 직원이 근무 중인 센터에 올해 8월이면 3~4명이 충원될 예정이다. <사진=김요셉 기자>

김종복 CTO는 "라오스는 인프라가 굉장히 취약한 상태이므로 단순히 기술을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립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학교, 마을, 주정부 등이 참여하는 조합 형태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포항대학교 교수로 재직시절부터 적정기술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던 김 CTO는 실제 적정기술의 적용과 개도국 사업화 경험을 쌓기 위해 라오스센터에 지원했다. 그러나 열정을 갖고 찾아온 라오스에서 특유의 '보펜양(Bo Phen Ngan)' 문화를 만나며 현재는 고민이 깊어진 상태. '보펜양'은 '괜찮다, 어쩔 수 없다, 달리 다른 방도가 없다'는 뜻으로 모든 것이 부족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라오스 생활철학을 대표하는 말이다.

"교수들 중에 졸업생 취업률을 신경 쓰는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산업기반이 거의 없다보니 학생들은 라오스 내 최상위 대학을 졸업하고도 숙박업소에 취업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이 안타깝고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왔는데, 막상 현지인들은 현재 상태에 굉장히 만족하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활철학은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산업에서 수탈에 가까운 교역을 계속하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기술개발보다는 의지를 북돋아줄 수 있는 방법부터 찾고 있습니다."

김 CTO는 일단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적정기술 대회를 개최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는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제품을 같이 만들며 기술개발에 흥미를 불러일으켜 주고자 한다"며 "올해 수파노봉대학에서 개최 후 잘되면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루앙프라방 대학 내에는 현수막이 없다. 센터에서 꽤 큰 상금을 내걸고 적정기술대회를 준비했으나 대학 측에서는 A4크기의 종이에 프린트해 벽에 붙여놓았다. <사진=김요셉 기자>
루앙프라방 대학 내에는 현수막이 없다. 센터에서 꽤 큰 상금을 내걸고 적정기술대회를 준비했으나 대학 측에서는 A4크기의 종이에 프린트해 벽에 붙여놓았다. <사진=김요셉 기자>

이어 그는 "라오스 청년들이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다녀오는 기회가 있다면 자극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며 "개도국에는 단순 기술이전이나 물자지원, 산업인프라 뿐 아니라 경험과 문화 등 소프트웨어적인 부분까지도 복합적으로 전달되어야 함을 실감하고 라오스 내 다른 분야에 있는 한국기관들과의 협력도 타진해 볼 계획"이라고 피력했다.

라오스 적정기술센터는 지속가능한 현지 사업화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개도국 개발협력사업(ODA)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통해 아세안 지역에서 과학한류를 창출하는 역할을 하게 될지 센터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백두주 적정기술센터장은 "최근 라오스 내 댐, 도로 등 물류 인프라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며 메콩강 경제권에서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이라며 "이번 라오스의 ODA 사업이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국내 과학기술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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