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천주욱의 창의력 연구소 블로그

나는 옛날 옛날 전라도 남원성 성문 밖에 살았던 농민의 혼령입니다. 그런데 코가 없는 무비자(無鼻者) 혼령이지요. 1597년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코를 잘렸기 때문이라오. 그 해 2월 일본군이 쳐들어 와 나와 우리 작은 아들 그리고 우리 아버님 코를 일본도로 잘라 갔지요. 코가 잘릴 때 그 아픔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오. 아버님은 그 상처가 덧나 결국 그 해 시월 돌아가셨지요.   

철천지원수 일본군은 그렇게 자른 조선 백성들 코를 소금에 절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냈지요. 조선 백성을 몇 명 죽였는지 보고하기 위해서 말이오. 지금 일본 교토에 있는 코무덤에는 12만 6천 조선 백성의 코가 묻혀 있는데 내 코도 거기 들어 있다오. 조선 백성들의 슬픈 역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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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의 이총(耳塚), 코무덤은 鼻塚이지만 야만적인 표현이라 이총이라고 함.<출처=천주욱의 창의력 연구소 블로그>
일본 교토의 이총(耳塚), 코무덤은 鼻塚이지만 야만적인 표현이라 이총이라고 함.<출처=천주욱의 창의력 연구소 블로그>
비참한 것은 이뿐이 아니었지요. 그날 우리 어머님과 어린 딸 아이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죽었으며, 우리 큰 아들은 일본으로 포로로 끌려갔는데 몇 년 후 다시 포르투갈로  팔려갔다는 말이 들렸지요. 그리고 그날 마침 처가에 다니러 갔던 아이들 엄마는 간신히 살아 남았지만, 시어머니와 함께 죽지 못 한 것이 두고 두고 한이 되어 평생을 눈물 속에 살았지요. 한 마디로 정유년 2월 그날 우리 집은 풍비박산이 났다오.
 
포로로 끌려가 산 설고 물 설은 일본 땅에서 평생을 노예로 살았거나, 포르투갈 등 유럽 여러 나라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간 조선 백성이 20만명도 더 된다고 하지요?

17세기 벨기에 화가 폴 루벤스가 그린 <조선 남자>의 모델 안토니오 꼬레아는 나가사키에서 포르투갈 상인에게 팔려간 남원 출신 조선 노예였다고 하는데 혹시 우리 큰 아들이 아닌지 모르겠다오.

천지신명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이런 억울한 일이 우리 집에, 우리 조선 땅에  일어났단 말이오?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해서 코 없는 무비자 혼령이 되어서도 나는 아직도 눈을 감지 못 하고 이렇게 구천을 헤매고 다닌다오. 정말이지 이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이오? 왜 조선 백성은 항상 일본에 당하기만 하는지요? 눈 못 감고 있는 이 무비자 혼령의 원수를 어느 누가 갚아주리오? 

17세기 벨기에 화가 폴 루벤스가 그린 <조선 남자>.<출처=천주욱의 창의력 연구소 블로그>
17세기 벨기에 화가 폴 루벤스가 그린 <조선 남자>.<출처=천주욱의 창의력 연구소 블로그>
신라시대 이래 이 조선반도에 왜구의 침략이 그렇게도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 동안 입은 피해가 가장 크다고 하지요? 정확한 숫자인지는 몰라도 임진왜란 전 1200만명이던 조선 백성의 숫자가 900만으로 줄어들었으며, 논 밭의 60-70% 이상이 초토화 되어 전란이 끝난 후 몇 년 간은 아예 농사를 못 지었지요. 그래서 먹을 것이 없어 사람까지 잡아 먹는 아비규환의 세상이 5-6년 계속되었지요. 이뿐이 아니지요. 한양의 거의 모든 궁궐은 불 타 소실되고, 문화재와 역사자료 또한 대부분 불에 타거나 일본군이 강탈해 갔지요. 조선은 그렇게 철저히 파괴되고 유린되었다오. 특히 내 고향 전라도지방 피해는 너무나 심각했지요. 어찌 원수국 일본을 잊으리오.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5년이 되던 1597년 1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경상도와 전라도 일부 지역에 남아있던 일본군과 새로 편성한 12만의 조선원정군에게 이런 포고문을 내렸다고 하지요.

'지금까지 진행하던 명나라와 종전 협상은 없던 것으로 하고, 다시 전쟁(정유재란)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전라도부터 먼저 공격하라, 전라도에 있는 조선 군인과 남녀노소 모든 조선인을 참살하되, 글을 배웠거나 도공 등 기술을 가진 자 중에서 건장한 남자와 반반한 여자는 포로로 끌고 오라, 그리고 참살한 사람 숫자를 증명하기 위해서 코를 베어 보내라. 전라도를 완전히 평정한 후에는 경상도 사람도 모두 참살하여 조선의 남쪽을 빈 땅으로 만들어 서도(일본의 서쪽) 사람들을 조선으로 이주시켜 살게 하고, 동도 사람을 서도로 이주시켜 살게 하면 10년 후가 되면 조선은 완전히 일본 땅이 될 것이다' 라고 말이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철천지원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하여 나처럼 코가 잘렸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무비자를 빼고도 정유재란 1년 반 동안 전라도 백성의 4할(30%) 이상이 살육 되거나 포로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아는지요?  

그런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간의 왜구 침략에서 왜 우리 조선이 그리도 허무하게 일본에 당했다고 생각하는지요? 학자들 이야기로는 조선 개국 후 200년간의 오랜 평화 분위기, 조선의 통치이념인 명분론을 앞 세운 성리학, 이민족에 대한 지나친 우월감, 동인 서인으로 갈려 서로 싸우던 양반들의 당파싸움 등이 원인이었다고 하지요?

이 무지렁이 코 없는 무비자 농민은 학문적인 논리는 없지만, 크게 보면 딱 두 가지 원인 때문이 아닌가 하오. 그 하나는 일본군의 조총과 일본도보다 나은 조총과 칼이 우리에게는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런 좋은 무기로 무장한 잘 훈련된 군대도 없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나라 안에서 우리끼리 싸우면서 허송세월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원인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이오.

한 마디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전 조선의 왕과 신하와 백성 모두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뭘 잘 몰라서 그렇게 허무하게 일본에 당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1910년 조선은  아예 나라 전체를 통째로 일본에 빼앗겼지요? 생각해 보면, 그때도 바같 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아예 관심도 없이 우리끼리 어줍잖은 말도 안 되는 사소한 것 가지고 서로 싸우고 반목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일본에 이길 수 있는 무기도 하나 없었지요?왜 우리  민족은 언제나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지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요?

아베 총리의 일본은 일본 강점기 때 일본군이 강제로 동원한 위안부문제 자체를 부정할 뿐 아니라,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침략전쟁을 사과하지도 않고 있지요? 그래서 국민 여러분들은 일본을 죽이고 싶겠지요.

여기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께 몇 가지 물어보고 싶구려.

지금 대한민국이 일본과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일본보다 나은 무기는 뭐가 있는지요? 임진왜란 때 조선군 주력부대였던 신립장군 휘하부대의 주력무기는 활이였는데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일본군과 격돌하는 날 폭우가 쏟아져 가죽으로 만든 활을 쓰보지도 못한 채 대패했지요? 기본적으로 일본군의 조총에 활로 맞섰다는 것 자체가 말이나 되는지요?

​그때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지요? 일본에 이길 수 있는 결정적인 무기는 뭐가 있는지요?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도 확실이 이길 수 있는 센 무언가를 갖고 있어야 큰 소리도 칠 수 있고, 상대가 관심도 갖게 되는 것 아닌지요? 감정이나 말로만 한다면 뭔들 못 하리오?

요사이 일본은 아예 대한민국을 상대도 하지 않지요? 이번에 아예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심산인지 모르지요.

그리고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필리핀의 스페인총독에게 서신을 보내 이번에 조선을 복종시키고 중국을 칠 것인 바, 뒤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당장 나에게 복종하라고 강요했을 뿐 아니라, 인도 왕에게는 더 자주 편하게 왕래하면서 잘 지내는 국가가 되자고 했다지요? 그 정도로 일본은 그 때 벌써 아시아 전체를 보면서 국가를 경영했다고 봐야하겠지요. 

또 다시 말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지요? 임진왜란 직전, 정유재란 직전, 그리고 일본강점기 직전과 지금 대한민국은 뭐가 다른지요? 이 좁디 좁은 나라 안에서 사소한 우리 내부문제로 우리끼리 맨날 지지고 볶고 있지요? 신문이나 방송 어디를 봐도 수준 낮은 저질 정치꾼들 이야기로 온통 도배가 되어 있는 나라, 여당이건 야당이건 우리 나라를 싸고 있는 주위 여러 나라 변화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나라, 전문시위꾼들이 온 나라를 씨끄럽게 하면서 설치고 다니는 나라,  대한민국은 왜 그런 나라 밖에 안 되는 것인지요?

그런 나라라면 내 소원도 하나 이야기하리다. 코 없는 이 무비자 농민의  혼령도 한 마디 하겠다는 것이지요. 위안부 숫자보다 훨씬 많은, 정유재란 때 나처럼 코가 잘린  사람 12만 6천명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배상문제는 왜 꺼내지 않는 거요?  ​우리 무비자혼령들도 무슨무슨 시민연대라는 걸 하나 만들어 매일 시위라도 할까요?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육상해상 新실크로드를 통해서 대당(大唐)의 꿈을 이루겠다는 시진핑의 중국몽과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아베의 야망에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는지요? '중국몽'과 '강한 일본'에 버금가는 대한민국의 비전은 무엇인지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요?

임진왜란 정유재란 일본강점기 직전과 무엇이 다른지요?

그리고 최근 일본인 사이에서는 '역시 조센징(조선인)은 지들끼리 싸우다 나라가 망하게 되지...' 라는 비아냥소리가 돌고 있다지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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