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상일 화학연 연구팀, 차세대 태양전지 개발 뒷이야기
15년 늦게 시작, 과제 소멸 위기 맞기도
"세계 최고 효율 인정…인류에 기여하는 성과 만들고 싶다"

차세대 태양전지로 주목받고 있는 '무·유기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 노준홍 화학연 박사와 양운석 박사과정생.<사진=방혜리 인턴기자>
차세대 태양전지로 주목받고 있는 '무·유기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 노준홍 화학연 박사와 양운석 박사과정생.<사진=방혜리 인턴기자>

"반도체 나노입자(양자점 포함)는 빛에너지를 받아 빛을 내기도 하지만 빛을 받아서 전기에너지로도 바꿀수 있는 특성이 있다. 광에너지를 태양으로 사용해 전기에너지로 바꿀 수 있도록 하면 태양전지가 되는데 우리는 이처럼 무·유기 물질을 이용해 고효율이며 저가인 태양전지로 만들어보자는 차원에서 태양전지 연구를 시작했다. 역발상의 도전으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셈이었다."

선진국들이 1991년 무렵에 연구를 시작한 태양전지 분야를 선두그룹보다 15년이나 늦은 2006년에야 연구를 시작한 석상일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연구팀.

15년이나 뒤늦은 출발이었기에 같은 방식으로 하는 연구는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방식이 그동안 아무도 연구하지 않은 '무·유기 하이브리드 태양전지' 분야다.

연구팀은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어 가며 관련 태양전지의 효율성을 연신 갈아치운다. 그리고 많은 과학자들이 평생 한 번 싣기 어렵다는 네이처, 사이언스 등 유수의 과학지에 연달아 논문을 게재하고 상용화 가능성을 한층 앞당기며 꼴찌에서 단숨에 퍼스트 무버로 등극, 세계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선택…3년째인 과제 말기에도 목표 효율 안나와 과제 소멸 위기까지

"이미 실리콘 태양전지, 박막태양전지가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연구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양자점 등을 활용한 무·유기 하이브리드 태양전지인데 이론적으로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 소재로 제대로 된 연구결과를 낸 사례가 없었다."

2006년 석 박사 연구팀이 처음 이 과제를 시작할 무렵 이미 실리콘 태양전지와 박막 태양전지가 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리콘 태양전지와 박막 태양전지는 복잡한 공정과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는 관계로 가격이 비싸 널리 사용될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석 박사 연구팀은 두 태양전지의 단점에 주목,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소재로 '무·유기 하이브리드 태양전지' 연구에 시동을 건 것이다.

석 박사는 "태양전지는 에너지와 산업, 인류의 삶의 질에 관련된 중요한 연구 분야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실리콘 태양전지에서 기업들이 지속적인 수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으며 관련 산업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지고 있는게 사실"이라면서 "우리나라 태양전지 산업의 경쟁력을 높히는 것은 출연연의 과학자가 가진 역할 중 하나인데 우리는 뒤늦게 시작했으니 유사한 연구는 의미없고 정말 좋은 것 아니면 정말 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느꼈던 부담감을 고백했다.

부담감은 현실이 됐다. 2006년부터 시작된 연구는 태양전지의 생명인 효율성에서 전혀 성과를 내지 못했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석 박사는 "실리콘 태양전지는 25% 효율성을 보이는데 우리는 2007년 1월 효율성이라고 할수도 없는 0.01%의 효율을 보였다"면서 "과제 3년째인 2009년 우리가 목표로 세웠던 효율성이 3%였는데 2009년 초까지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정말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생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연구팀은 치열하게 실패를 반복했고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과제 마지막 무렵 무·유기 하이브리드 태양전지 연구로 당초 목표(3%)보다 높은 5%의 효율을 거뒀다.

◆ 한 고비 넘으니 또 다른 고비…제자리 걸음인 효율에 머리카락 다 빠질 뻔

과제를 주도해온 석상일 화학연 박사. 그가 손가락으로 짚고 있는 부분이 화학연에서 연구하고 있는 '무·유기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에서 낸 효율수치다. 몇년째 선두자리를 유지하며 상용화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사진=방혜리 인턴기자>
과제를 주도해온 석상일 화학연 박사. 그가 손가락으로 짚고 있는 부분이 화학연에서 연구하고 있는 '무·유기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에서 낸 효율수치다. 몇년째 선두자리를 유지하며 상용화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사진=방혜리 인턴기자>

"과제 1단계를 어렵게 통과했다. 다시 3년의 기회를 얻어 이번에는 8%의 효율을 목표로 세우고 연구에 매진했다. 효율을 올리는 방법을 알았으니 효율도 수직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2단계 연구를 시작한지 1년반이 지난 2011년 말까지 거의 제자리 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무렵 노준홍 박사가 합류한다. 그러면서 '무·유기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가 시작된다. 연구팀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역시 결과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노 박사는 "페로브스카이트는 지금까지 순수 무기물로 되는 결정이었는데, 무·유기물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 소재는 광·전기적 특성이 뛰어난 물질"이라고 설명하며 "여기에 함유되어 있는 조성을 어떻게 조정하는가에 따라 물질의 특성도 변하는데 우리는 우수한 특성을 가질 수 있는 공정과 조성을 결합해 연구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 시킬 수 있었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석 박사도 "과제 시작 2년 반이 지나도록 연구결과가 지지부진했다. 당시 받은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다 빠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그와 연구팀이 받았을 부담감이 짐작됐다.

연구팀은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며 해결책을 찾아간다. 그 결과 무·유기물 소재의 장점에 액상공정의 장점을 결합해 내구성과 효율성이 뛰어난 태양전지 제조를 위한 새로운 플랫폼 기술을 제시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과제 마지막 해인 2012년 6월 목표치를 훌쩍 넘은 12%의 효율을 기록한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과제였던 '글로벌 연구실' 사업과제에서도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면서 말이다.

석 박사는 "글로벌연구실 과제는 교육과학기술부 과제로 개인 연구과제로는 큰 프로젝트였다"면서 "매년 5개씩 선정하는데 그중 1등을 하면 기본 연구비와 10%의 보너스 연구비를 받게 되는데 우리가 받았다"고 말했다.

더 큰 기쁨은 석 박사 연구팀이 미증유의 연구로 시작해 성과를 내며 세계 과학계에서도 결과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 이들의 연구 결과가 2012년말 유수의 과학저널에 실린 것을 비롯해 지속적인 성과들이 2014년 네이처(Nature) 지, 2015년 사이언스(Science) 지에 논문이 게재됐다.

특히 태양에너지 효율 기록을 측정해 인터넷에 공개하는 NREL(미국 국립재생에너지 연구소)이 석 박사 연구팀의 성과를 공개하며 관련 과학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석 박사는 NREL의 자료 화면을 짚으며 "우리가 가장 늦게 시작했지만 성과면에서는 가장 상위에 있고 연속해서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표준화된 방법으로 측정해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다"면서 "무·유기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보다 제조 단가가 저렴해 각광받고 있는 차세대 태양전지"라고 설명했다.

◆ 시작은 미미했지만 가속도 붙으며 대박 결과…시간 걸리겠지만 상용화에도 박차 가할 것 

연구팀은 지난 5월말 '화학분자 교환법' 이라는 새로운 공정을 이용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효율을 세계 최초로 20.1%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한다. 

화학분자 교환법은 서로 다른 화학분자가 순간적으로 교환될 수 있는 공정으로 결함이 적고 결정성이 우수한 화학물질을 제조하는 방법으로 화학연 석·박사 연구진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방법이다. 특히 대면적을 대규모로 제작 가능한 장점이 있다.

직접 실험에 참여했던 양운석 박사과정생은 "물질을 교환 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그동한 교환하는 법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기존에 확보한 여러 방법을 기반으로 이렇게 저렇게 실험을 하면서 교환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실험을 진행해 성공했다"고 당시 기쁨을 전했다.

그는 이어 "2년동안 같은 방법으로 실험하면서 다양한 경험들이 쌓인 것이다. 교환 현상이 발견되면서 실험에 속도가 붙었다"며 현장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구팀의 성과는 현재 상용화된 실리콘 태양전지와 비슷한 에너지 변환효율을 기록한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 결과는 NREL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 받았다. 이는 상용화 될 경우 태양전지 분야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된다는 의미다.

석 박사는 "지금은 중국이 실리콘 태양전지를 대량으로 뿌리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기술력을 승부해야 하는 입장"이라면서 "이번 성과 후 국내 보다는 외국에서 더 관심을 가지고 연락이 오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기술을 배우러 와 있는 상태"라고 진행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이어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제로에서 90%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90%를 99%로 만드는 것은 더 힘들다"면서 "0.01%만 부족해도 기술상용화는 어렵다. 지속적인 연구 지원으로 결과를 100%까지 끌어올려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 성과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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