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발명은 인류사 최대의 발명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농경사회에 접어들어 정착된 생활을 하면서 공동체가 성장하게 되었고 공동체가 이루어낸 지식과 규약은 문자의 발명을 통해서 다음 세대로 안전하게 전수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인류는 기억과 시간의 한계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선조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발전하면서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다. 

문자의 발명에 이은 인류 지식 확산의 획기적 사건은 인쇄술의 발명이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 책은 일일이 손으로 써서 만드는 필사본이었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소요되었고, 비용 또한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책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따라서 소수의 값비싼 필사본 대신 훨씬 적은 비용으로 보다 정확하고 많은 수량의 책을 널리 보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의 발달에 힘입어 디지털 사회를 맞이한 인류의 지식은 또 한 번의 변혁을 맞이하게 되었다. 디지털 세상에서 정보는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이용자들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 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상호작용하면서 재생산되고 있다.

인쇄물의 경우 전 세계의 수많은 도서관에서 반영구적으로 보관하기 때문에 인용의 근거가 충분히 오래 지속될 수 있지만 인터넷 상의 정보들은 서비스의 영속성을 보장하기가 어렵다.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 되는 모든 정보들은 인터넷 주소가 바뀐다든지 사이트가 폐쇄될 경우 그 안에 있는 정보들에 대한 인용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모든 도서에 부여되는 ISBN 번호체계처럼 인터넷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영속적인 접근을 보장하고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식별자 시스템이 필요하게 되었다.

인터넷 상의 정보자원에 고유의 식별번호를 부여하여 등록함으로써 연결이 끊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 DOI(Digital Object Identifier) 개념이다. 이는 사람이 이사를 가도 주민등록번호만 있으면 행정전산망을 통해 이사 간 주소를 찾아갈 수 있는 것처럼, 개개의 정보자원마다 유일 식별번호인 DOI를 부여하고 등록하도록 함으로써 인터넷 주소가 변경되어도 재방문이 가능하도록 하는 개념이다.

또한 기존의 도서에 대한 식별체계인 ISBN은 물리적인 도서 한 권에 대한 식별밖에는 하지 못하지만 DOI는 디지털 콘텐츠의 특성상 각각의 오브젝트, 예를 들면 eBook에서 각 장별이나 페이지별, 그림이나 표 등을 따로 식별 가능하며 이는 콘텐츠 유통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의 확산에 따라 디지털 환경에서 국제적으로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 보호를 위한 디지털 콘텐츠 식별체계의 필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1998년에 설립된 국제 DOI재단인 IDF에 의해 DOI가 등장하여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DOI는 IDF에서 지정한 등록관리기관(DOI-RA:Registration Agency)에서 등록 관리한다. RA는 등록 기관(Registrant)을 지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디지털 콘텐츠 정보를 등록 받고 DOI를 부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을 비롯하여 10개의 기관이 학술정보의 대표적인 RA인 CrossRef의 스폰서로서 등록을 대행하고 있으며 약 6%의 학술자료가 DOI를 부여받고 있다. DOI가 부여된 정보들은 참고문헌 링킹을 통해서 정보의 노출기회 및 인용기회가 증대되어 국제적 유통을 활성화시키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내 정보자원에 대한 위상이 제고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R&D 혁신방안은 그간 SCI 건수 위주의 '양'적평가에서 벗어나 '질' 중심의 정성평가체계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간 학술논문 이외의 연구결과는 성과에 반영하지 않았으나 DOI 체계가 더 확대되어 적용된다면 논문 외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도 인용정보를 통한 질적 평가의 근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어 연구 결과가 다양한 형태로 활용 확산되는 선순환 체계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되어 정보 관리 측면뿐만 아니라 성과 활용 확산에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문명이 2003년까지 창출한 정보량보다 최근 이틀간 생기는 정보량이 더 많다." 2010년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말처럼 우리는 정보 폭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천문학적으로 폭증하는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제공된다.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지식을 얻어내고 정보 제공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정보를 보관하고 유통시키는 시스템이 필수적이 되었다.

퀴리 부인은 226이라는 라듐의 원자량을 알아내기 위해 무려 8톤에 이르는 피치블렌드를 4년 동안 정제하여 0.1그램의 라듐을 얻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의미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더 오랜 시간 더 축적된 정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 시스템이 우선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많은 정보들 속에서 더 가치 있는 지식을 정제해내기 위해 기반을 다지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류범종 KISTI 본부장은

류범종 본부장.
류범종 본부장.
현재는 정보의 홍수시대입니다. IDC의 '디지털유니버스 보고서'에 의하면 올 한해동안 생성되어 유통된 디지털 데이터의 양은 2.8 제타바이트에 달한다고 합니다.

류범종 본부장은 '류범종의 빅데이터'를 통해 'IAI(Information Aided Innovation)'  향후 과학기술정보융합서비스 체제 구축 방향 및 개발 방향에 대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류범종 본부장은 전자공학과 정보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첨단정보융합본부 본부장으로 재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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