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룡동 1번지'된 사연부터 현재까지 발자취 수록
표준연과 얽힌 40가지 특별한 역사 스토리

"1976년, 표준연 설립 건축디자인 설계는 청와대 설계를 담당했던 한국환경계획연구소가 맡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문에서 볼 때 양옆으로 탁 트인 호방한 기세와 아래에서 우러러봐야 하는 행정동의 위압감이 청와대와 비슷하죠."

"1980년 10월 27일 제8차 개정헌법이 공포됩니다. 제128조 2항에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습니다. 국가운영의 기본원칙인 헌법에 표준의 중요성을 정확히 밝힌 것이죠. 헌법에서 과학기술의 특정 분야를 언급하는 것은 이때나 지금이나 표준이 유일합니다."

우리나라 표준과학 40년 역사의 일부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신용현)은 개원 40주년을 맞아 '국민연구소 KRISS-40주년, 40개 이야기'를 발간했다.

책자에 따르면 김재관 표준연 초대 소장이 1975년 12월 24일 표준연을 대전지방법원에 제106호로 등기 완료했다. 주소는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1번지'.

당시 표준연은 다른 두 개 연구소 다음으로 세 번째로 부지매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역회사를 통한 부지매입이 아닌 직접 부지매입으로 가장 먼저 용지를 갖게 돼 '연구단지 입주 제1호 연구소'로 거듭났다.

1976.9.23 한국표준연구소 기공식(왼), 초창기 한국표준연구소 설계 조감도(오른) <사진=표준연 제공>
1976.9.23 한국표준연구소 기공식(왼), 초창기 한국표준연구소 설계 조감도(오른) <사진=표준연 제공>

1976년 9월 23일 표준연 건설에 첫 삽을 뜬다. 표준연은 미국국립표준국 시설을 참고해 건물배치와 조명 등 장기건설계획을 정밀하게 설계했다. 향후 어떤 연구를 할지, 어떤 시설이 필요하게 될지 등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던 것. 그래서 실제로 당시 조감도를 보면 지금의 모습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다.

연구소 완공을 위해 건물 설계·건축 일도 빠르게 진척됐다. 당시 행정원·연구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당백 역할을 하기 위해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새우잠을 자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표준연 행정동 앞에 설치된 헌법표지석(왼), 연구원 초기공사 모습(오른) <사진=표준연 제공>
표준연 행정동 앞에 설치된 헌법표지석(왼), 연구원 초기공사 모습(오른) <사진=표준연 제공>

당시 출퇴근했던 직원들은 비 오는 날이 가장 곤혹스러웠던 날이었다. 통근버스에서 내려 진흙탕이 된 길을 지나 사무실에 들어가려면 장화는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 못산다'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럼에도 구성원들은 연구단지 입주 제1호 연구소라는 자부심을 갖고, 연구활동에 전념했다.

표준연은 행정동이 가장 먼저 완공되고 이어 물리동, 역학동이 준공됐다. 98년에는 기술지원동이, 05년도에는 인증표준물리동이 완공되는 등 2015년 현재는 60개의 건물이 생겨났다.

표준연은 굳건한 측정표준 역사를 바탕으로 수많은 성과를 이뤄왔다. 21세기 과학기술 환경변화를 예측한 새로운 측정표준 연구성과를 창출하며 세계 5위권 수준 측정표준기관으로 성장한다.

한 원로 과학자는 "표준연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재단법인 설립등기 완료한 축복 받은 연구소"라며 "전 세계의 많은 기관으로부터 적절한 시기에 꼭 필요한 지원들이 이어져 왔던 이유도 그 축복의 기운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스표준' 부동의 세계 1위…전 세계 과학교재를 바꾸다

표준연 측정과학의 대표적인 성과를 꼽는다면 단연 '가스표준'을 내세운다.

2000년대 중반 김진석 전 부원장이 전 세계의 과학교재를 다시 쓰게 하는 놀라운 성과를 발표했다. 공기 중 아르곤 농도와 분자량을 재정의한 것. 2004년 표준연이 측정한 값을 새로운 아르곤 농도로 공식 인정되며 전 세계 화학교재에 실렸던 아르곤 농도가 모두 변경됐다. 

환경측정용 표준가스개발.<사진=표준연 제공>
환경측정용 표준가스개발.<사진=표준연 제공>
건조한 공기는 질소 78%, 산소 21%, 그 외 아르곤 이산화탄소로 구성됐다. 이 중 아르곤은 0.917%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김 전 부원장의 측정결과는 0.933%였다.

연구팀은 아르곤 농도를 적용해 공기 부력을 새로 계산한 뒤, 진공 시 1kg 표준분동의 질량값을 보정하자 정확하게 대기 중 질량값과 맞아 떨어졌던 것. 분동 질량 오차가 잘못된 아르곤 농도 때문이었다는 것을 명확히 증명했다.

이 성과는 2004년 12월호 메트롤로지아에 '이달이 논문'에 선정된다. 메트롤로지아 게재 논문 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으로 기록될 만큼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김진석 전 부원장은 이러한 결과는 '순수한 창의성' 덕분이라 말한다. 그는 "특정 과제를 수주해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둔 채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책자는 연구소 탄생 사연부터 시작해 우여곡절 많았던 70년대 시절을 생생하게 전하며 현재까지의 길이표준, 시간표준, 질량표준 등 측정표준 성과를 소개하며 표준연에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책자 제작을 위해 과학기술 관련 자료와 관계기관 자료수집은 물론, 표준연 설립 당시에 기여한 원로 과학자 인터뷰 등의 방법으로 자료를 확보했고 표준연 40년 역사를 특별한 스토리로 구성해 가독성을 높였다. 

표준연 40년사 추진팀은 "책자 발간을 위해 그동안의 자료를 정리한다는 것은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며 "책자를 통해 표준연이 국민에게 친숙함을 느낄 수 있는 '국민연구소'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표준연 40년사 책자 표지.<사진=표준연 제공>
표준연 40년사 책자 표지.<사진=표준연 제공>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