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호 1호' 발사 20주년] 무궁화 1호 발사 후 궤도 못 미쳐 한 때 위기 겪기도
관계자들 "무궁화호 통해 대한민국 우주개발 초석 다져"

국내 최초 상용위성이자 통신용 정지궤도 위성인 무궁화 1호 위성(KOREASAT 1)이 5일 발사된지 20주년을 맞는다.

무궁화 위성사업은 1990년대초 6대 국책사업으로 시작됐으며, 남북한 통일에 대비한 통신방송구축망 사업의 일환으로 통화가 불가능했던 국내의 산악, 도서 지방, 북한 등을 연결하고자 추진됐다.

무궁화 1호는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기지에서 델타 II 로켓에 실려 발사됐으나, 발사 과정 중 보조 로켓 하나가 늦게 분리되면서 목표 궤도인 3만 6천 KM 진입에 못 미치는 손실이 발생했다. 자체연료의 분사를 통해 정상궤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으나, 설계수명인 10년에서 4년 4개월로 단축됐다. 이후 6년간 외국 사업자 경사 궤도 운용용으로 임대되는 등의 과정을 겪다 지난 2005년 12월 10년 4개월의 임무를 마쳤다.

◆산업체, 출연연 소속 연구진, 美 우주기지 방문 기회…보안 엄격한 기지 방문 자체가 의미

"책에서만 보던 우주기지의 주요 시설을 실제로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한국인이 방문해 기술을 전수받은 사례는 그때가 유일했습니다. 주요 부품들을 연구원들이 만지작 거리다 미국 연구진들에게 지적받기도 했습니다(웃음)"(당시 사업 참여 연구원)

무궁화 I,II호의 계약은 한꺼번에 추진됐다.

당시 인공위성과 발사체에 대한 실전경험을 보유한 국내 연구, 기술 개발 인력은 전무했다. 아직까지도 현장 경험을 보유한 인력은 거의 없는 것이 실정이다.

따라서 해외 발사체 업체와 계약을 통해 인공위성과 발사체의 구매가 진행됐으며, 최종적으로 위성 제작은 미국 GE사, 위성발사체 개발은 미국 맥도널더글라스사(현 보잉)가 선정되어 납품 계약과 발사가 추진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 연구원들은 플로리다 우주기지를 2~3달에 1번씩 방문해 디자인 설계 리뷰 등프로젝트에 참여 기회를 받았으며, 한라중공업 소속 연구원 10여명은 약 반년 동안 연수를 받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모든 교육 비용도 계약에 포함됐다.

우리나라 연구원들의 우주기지 출입은 자국민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엄격한 출입절차를 감안하면 획기적이었다. 국가적인 전략물자로 해당되는 위성산업의 특성상 보험이 철저하고, 엄격하다. 당시 우리나라 산업체, 연구원 소속 인력들의 우주 기지 방문은 큰 기회였다.

한 관계자는 "항공우주분야 특성상 기술을 한번 본다고 이해하거나 습득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복잡한 기술 체계에 대한 훈련과 실제 경험이 중요하다"면서 "즉각적인 체득은 쉽지 않았으나, 발사시설 현장을 둘러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실전경험 보유 국내 인력 전무해 美 기업과 협력…궤도 진입 실패로 위기 겪기도

국내 최조 상용위성 무궁화 1호 위성.<사진=대덕넷 DB>
국내 최조 상용위성 무궁화 1호 위성.<사진=대덕넷 DB>
위성 사업은 발사기지에서 점화되는 순간 계약자의 책임이 면피된다. 발사에 실패해도 발사 업체가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다. 따라서, 성공률이 높은 사업자 선정과 별도의 보험계약은 필수적이다. 업체 선정도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맥도널더글라스사의 발사 성공률은 100%로 50번 발사 중 실패한 사례가 없었으며, 당시 한국은 미국에서 연구하고 귀국한 책임자를 중심으로 협상을 통해 교육, 기술이전 등 협상을 이끌어 냈다.

발사 과정에서의 보험료는 상대적으로 비싸고 별도로 계약해야 하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보험을 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으나, 다행히 보험계약은 추진됐다. 무궁화 1호가 궤도진입에 실패하면서 발생한 손실을 보전할 수 있게 되면서 관련 연구자와 정부 관계자는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렸다는 후문이다.

사업 추진은 10분의 1씩 단계별로 추진되어 사업비 납부, 현지 납품 확인 등의 과정을 거쳤다. 미리 제작된 물품을 납품하는 구조의 타산업과는 달리 고가의 장비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납품을 확인하는 감리·감독기구가 별도로 운영됐으며, 미국 회사의 로켓 전문가들이 기술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첫 발사인만큼 정치권의 관심도 높았으며, 관심도 고조됐다.

발사일은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광복절로 시기를 늦추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발사를 예고와 준비과정서 한 주 이상이 소요되는 사업 특성상 기존 일정대로 추진됐다. 

또한, 무궁화 2호의 발사 시에는 미국 연구진과 바베큐를 하면서 고사를 지내면서 무사 발사를 기원하기도 했다. 

◆무궁화 1호 주역들 항공우주산업 곳곳에…대한민국 위성산업 발전 초석 다져

"무궁화 1호 사업은 처음으로 추진된 항공우주분야 국가 사업으로 남북한 통일 기초사업이기도 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교육을 받게 하고, 위성사업 저변이 확대되는 시발점이 됐습니다."

한 위성사업 관계자에 따르면 통신 위성 사업은 외국에서 위성을 구매해도 서비스 제공을 통해 이윤이 창출될 수 있어 경제성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 현재까지 무궁화 1호, 2호,3호, 5호, 6호가 발사됐다.

무궁화 1,2호의 사업 종료 후, 주요 연구진은 산업체, 대학교 등 곳곳으로 퍼졌다. 체신부가 공익성을 고려해 사업자로 선정한 한국통신(현 KT)이 서비스 제공 업체로 연구개발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주요 연구진들이 전분야로 확산되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위성사업 저변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위성분야 한 과학자는 "처음으로 정부차원에서 우주개발을 진행한 초석이 됐다"면서 "위성에 필요한 각종 통신기기, 부품 등을 우리기술로 제작도 하고, 실전 경험을 통해 위성 사업 저변이 확산되기 시작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한 과학계 원로는 "우주기술은 당장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첨단 산업으로 전기, 전자 등 전분야에 파급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면서 "발전하고 있는 위성개발 뿐만 아니라 로켓 등 항공우주산업에 대해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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