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7월 14일 한국과학기술정책원(이하 정책원) 설립을 골자로 한 '과학기술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과학기술 정책혁신과 범부처 총괄조정 지원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두 기관을 통합하고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 관련 기능을 더해 정책원을 설립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5월 13일 'R&D 혁신방안' 발표한 후 공청회, 설명회, 간담회, 비공식 모임 등으로 혁신방안을 설명하며 현장 소통에 나선바 있다. 참석한 과기계 현장 관계자들은 혁신방안에 대해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긍정적인 방향의 의견도 적극 제시했다. 정부 관계자는 메모를 하며 현장의견을 반영하고 논의를 통해 풀어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 입법예고 된 내용은 기존의 혁신방안에서 큰 수정 없이 진행됐다.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 통합대상 기관들의 반대의견이나 과학기술계의 우려의 목소리는 아랑곳없이 별도로 벌써 정책원 설립 사전작업이 진행 중이다. 조직구성과 기능, 업무 등에 대한 논의도 일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어디에도 현장의 의견을 존중하는 정부의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R&D 효율성을 제고하고 국가차원의 종합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장과 괴리된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 방안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길인지는 의심스럽다.

또 정부 R&D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키위해 설치하겠다는 '과학기술전략본부'는 참여정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이하 혁신본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참여정부 시기 과기부총리 산하에 설치했던 혁신본부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 하고 실패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현 정부는 당시 실패하게 된 원인 분석과 반성 없이 막연하게 성공할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누가보아도 잘못된 전철을 다시 밟게 될 것이 자명하다.

무엇보다 과거 실패원인이 이번에는 어떻게 보완되어 종합조정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하지 못 하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는 외면한채 단지 현재 국가 R&D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한다는 단순 논리적 사고로 KISTEP, STEPI, KISTI 세 기관을 뒤흔들고 있는 양상이다.

완전 통합되는 두 기관 보다 KISTI의 사정은 더 복잡하다. 정책원으로 이관대상인 NTIS도 남아있는 다른 부서들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KISTI는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과학기술정보의 유통, 관리체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국가 R&D 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NTIS를 서비스하고 있어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서비스가 아니라 KISTI의 다른 서비스들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NTIS는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목적뿐만 아니라 정보공개를 통해 연구자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고 기술적인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NTIS 기능 중 90% 이상이 일반 국민 또는 중소·중견 기업, 연구자에게 유용한 R&D 정보를 제공하는 것인데, 정책 수립 및 조정에 활용하고자 정책원으로 서비스를 이관하여 관리목적으로 활용한다면 현재의 연구효율화 및 정보서비스 목적은 흩어지고 말 것이다.

국가 R&D 정보를 국민이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측면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상황에 단지 정책수립을 위해 활용하고자 NTIS의 활용 영역을 줄여 이관하겠다는 결정은 과학기술 발전에 역행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인프라와 운영주체 분리에 따라 전문적이고 정상적인 서비스 제공이 어렵게 된다. 최선은 지금처럼 IT서비스와 연구기능을 보유한 정보전문기관이 운영함으로써 전사적인 지원이 가능케 하는 것이다.

정책원이 필요로 하는 것은 R&D 정보를 잘 활용한 정책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기획을 하고자하는 것이므로 전체 통합 대상인 KISTEP, STEPI 두 기관이 협조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현재의 입법예고는 전문기관이 전문영역에서 시스템을 운영하고, 필요정보는 정책원이 가져갈 수 있도록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것으로 수정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과거에는 정부주도의 혁신이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강국의 대열에 들어선 만큼 이제 우리도 집중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계의 자율에 맡기고 한 단계 성장하기를 기다려야 할 때가 왔다.

과학기술계에서 필요로 하는 혁신은 위에서부터의 혁신이 아니라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내부로부터의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말로만 소통, 창의, 창조를 외칠 것이 아니라 현장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과학자들에게 그런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 이 글은 미래부의 소통없는 정책추진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낀 연구자가 보내온 것으로 익명을 요청해 그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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