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사이언스코리아-해외기획취재]연구풍토②'과학은 인류에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 기본"신념있는 연구 문화 지속적으로 공유하며 확산"

 

 

미국 워싱턴에 본원을 두고 있는 NIH 전경. NIH에는 총 27개 연구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연간 30조원의 R&D 예산을 인류의 미래 건강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사진=김요셉 기자>
미국 워싱턴에 본원을 두고 있는 NIH 전경. NIH에는 총 27개 연구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연간 30조원의 R&D 예산을 인류의 미래 건강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사진=김요셉 기자>

# 'Bench to Bed.' 미국 NIH(국립보건원)의 존 갤링이라는 유태인 출신 과학자가 만든 표어다. NIH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병원장을 22년째 맡고 있는 존 갤링 박사는 실험실 벤치(bench)에서 논문으로 끝나는 연구를 하지 말고, 환자의 침실(bed)에 연구결과가 직접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신념을 NIH 연구자들과 꾸준히 공유해 왔다.(최의묵 NIAID 연구원)

# "독일 정부에서는 연구비 주면 거의 신경안쓴다. 하지만 평가시 과학적 발전에 기여했는가는 까다롭게 따진다. 실패는 실적으로 인정하지만 표절했을 경우 과학자로서 생명이 끝나는 것은 물론 관련 연구소가 폐쇄될 정도로 엄격하다. 과학자의 양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학성과에서 사기치는 연구자라면 연구비도 사기칠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김재일 재독 과학자)

"일본은 예산 관리를 아주 철저하게 하는 편이다. 한국이 오히려 돈에 대해 자유롭다. 연구자들이 연구 내용과 예산의 목적을 설명할 의무가 있는 동시에 연구의 효율화를 위해서 예산에 있어 어느정도의 자율성은 확보해야 한다. 정부(문부과학성)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 전체 기간동안 예산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정책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류이치 KIST 연구원)

자유와 책임. 뗄래야 뗄 수 없는 수어지교(水魚之交)의 관계처럼 자유에 따르는 책임감도 크다.

과학 선진국에서 만난 과학자들은 보장된 자유만큼 '책임'에 대한 인식도 분명했다. 정부의 지원은 곧 국민의 세금이므로 한푼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 보여주기식 또는 논문 작성으로 끝나는 성과가 아니라 인류와 과학적 기여, 사업화까지 철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다.

연구자와 정부간 신뢰가 무너지며 규제 항목만 늘려가는 우리나라 연구현장에 비해 과학선진국의 연구자들은 연구주제 선택부터 평가까지 자유로운 연구환경 속에서 성과에 대한 책임감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며 연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 연구소 특성에 맞는 책임의식 '분명'

데니스 카스케 프라운호퍼 협회 아시아 매니저.<사진=길애경 기자>
데니스 카스케 프라운호퍼 협회 아시아 매니저.<사진=길애경 기자>
독일의 연구개발은 막스 플랑크(기초·인문과학, 생물의학), 프라운호퍼(생명과학, 정보통신, 전자 등 산업분야), 헬름홀츠(항공, 우주, 에너지 등 대형연구), 라이프니찌(비대학연구기관, 과학기관) 등 4개 연구협회와 연구비 조달을 담당하는 독일과학재단 등 5개 트랙으로 운영된다.

 

전체 예산 중 1/3은 정부에서 나머지는 기업 펀딩으로 받는 프라운호퍼 협회 산하 연구소의 경우 연구자들의 인식이나 책임감이 확실하게 기술사업화에 맞춰져 있다.

데니스 카스케(Denise.Kaske) 프라운호퍼 협회 아시아 매니저는 "프라운호퍼에서는 사업화를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할 경우 연구자와 기업관계자가 논의하며 기간을 조절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진행과정이 거짓으로 드러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프로젝트가 없어지기도 한다. 또 다음 계약을 안할 수 있어 규제하지 않아도 프라운호퍼 연구원들의 의식이나 책임감이 그쪽에 잘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데니스 카스케 매니저는 "프로젝트마다 성격이 달라 비밀유지가 필요한 경우 진행 전 비밀유지 서약서에 사인을 하고 시작한다. 기술 유출시 문제가 생기는 것을 사전에 막기위해 확실하게 해놓고 한다"고 덧붙였다.

천정환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 박사 후 연구원에 의하면 막스 플랑크에서는 실패한 데이터도 결과로 둔다. 다른 사람이 이를 활용해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천 박사후 연구원은 "과학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실패 결과도 따로 보관할만큼 연구자에게 관대하다"면서 "하지만 세금에 민감하기 때문에 연구비 유용시에는 아무리 성과가 뛰어나도 과학자로서 커리어가 끝장날 정도로 엄격하다"고 역설했다.  

미국 역시 자신의 연구에 확실히 책임지는 자세가 분명하다.

최의묵 NIAID 연구원은 "존 갤링이라는 연구리더 덕분에 NIH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에 대해 확실히 책임지는 자세와 정신을 보다 명확히 갖게 됐다"고 말하며 NIH에 뿌리내린 연구책임 문화에 대해 설명했다.

최 연구원에 따르면 NIH에서는 설사 파일롯 연구프로젝트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 '연구란 원래 잘 안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문화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연구라는 영어 단어'Research'의 의미를 풀어보면 'Re-Search'(다시 찾는다)인것처럼, 한 번에는 잘 안되는 것이 연구라고 믿고 될때까지 계속 진행하는 문화가 구축돼 있다는 것이다.

스티브 퍼거슨 NIH 기술이전본부 부책임자는 "NIH 연구자들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국가와 인류 건강을 위한 목적 아래 이뤄지는 연구과제들이 대부분"이라며 "NIH 연구과제들은 27개 각기 다른 연구소의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협력하고 노력해 결국은 좋은 성과를 맺게 된다고 말했다.

'선정평가는 철저히, 연구자의 자율성은 극대화, 책임은 엄격하게' 일본이 지향하는 연구지원의 방향성이다.

일본은 긴 호흡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 처음 기획할 때부터 연구에 돌입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빠르게 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다. 하지만 일단 시동이 걸리면 끝까지 간다. 정해진 연구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연구과제가 없어지는 경우도 없다. 기초과학연구는 오랜 시간 투자해야 결과가 나타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해서도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그렇기에 연구비 횡령이나 부정 등의 사유가 아니고서는 실패한 연구자라도 불이익은 있을 수 있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코타 카츠키 지질자원연 연구원.<사진=이은미 기자>
코타 카츠키 지질자원연 연구원.<사진=이은미 기자>
일본은 연구비의 많은 부분이 문부성 산하 JSPS(Japan Society for the Promotion of Science)와 JST(Japan Science and Technology Agency)를 통해 대학과 연구소(연구자)에게 분배된다. JSPS는 분야 지정 없이 주로 기초과학 분야에 바텀업(Bottom up) 형태로, JST는 분야를 지정해 응용기술 분야의 탑다운 형식으로 지원 방식이나 형태가 역할 분담돼 있다.

 

연구 책임의 주체를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연구 부정과 관련한 것들은 연구소가, 연구 최종결과는 PI(Principal investigator·우리나라 과제총책임자와 비슷한 개념)가 책임을 지는 구조다.

연구자들은 JST와 JSPS 양쪽으로 연구비를 받을 수 있다. 실패하더라도 지원할 수 있는 통로가 있는 셈이다. 미야모토 타쿠토 주한일본 대사관 과학관은 "일본에서는 성실실패란 없다"며 "실패하더라도 펀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코타 카츠키 일본인 연구원은 "중학교 때 로켓 발사가 실패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고등학교가 돼서야 발사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수없는 실패의 경험이 오늘날 일본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 "과학적 미래와 인류에 기여하는 연구인가에 초점"

헬름홀츠 협회 산하 연구소에서 오랜기간 연구소장을 지낸 김재일 재독 과학자에 따르면 거대과학의 경우 당장 성과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실패한 사례도 성과로 인정한다. 성과에 대한 책임도 논문 수가 아닌 과학과 인류의 미래에 얼마만큼 기여했는가를 중점적으로 본다.

김재일 박사는 "EU의 많은 국가들이 휘청여도 독일이 건재하게 성장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 집중하기 때문"이라면서 "당장 논문 발표를 위해 표절을 한 경우 연구자의 생명이 끝나는 것은 물론 해당 연구소가 폐쇄될 수도 있다. 때문에 연구자들도 미래 사회와 과학계의 발전에 대한 책임감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남의 연구를 흉내내거나 유행을 따라가면 실패는 안하지만 선도적인 연구문화는 절대 만들 수가 없다"면서 "삼성과 애플이 똑같이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다.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이니셔티브로 평가되는 것은 애플이지 삼성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미국 군사전문 기술개발 연구재단 DARPA(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연구책임 문화는 '될 때까지, 해낼때까지 연구한다'는 분위기다. DARPA 전문가 리쳐드 반 아타 IDA(미국 국방분석연구소) 박사에 따르면 DARPA는 연구자들에게 연구성과를 내라고 별도로 강조하지 않지만 거의 실시간으로 연구방향을 점검한다. DARPA의 프로젝트 매니저는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내기 위해 연구자들과 수시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연구활동을 지원한다.

DARPA 전문가 반 아타 박사 "DARPA는 될 때까지 연구한다" <사진=김요셉 기자>
DARPA 전문가 반 아타 박사 "DARPA는 될 때까지 연구한다" <사진=김요셉 기자>
반 아타 박사는 "연구자들은 DARPA PM의 간섭을 귀찮은 게 아니라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문으로 여기고 연구에 임한다"라며 "DARPA의 연구책임 정신은 세계 어느 연구조직보다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연구자가 자유롭게 연구하는 문화를 가진 일본이 연구책임성을 더욱 강조하게 된 것은 개인의 연구가 국가와 사회를 이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공유되기 시작한 이후다.

소 오수카 일본이화학연구소(RIKEN) 연구협력과 과장은 "원래 RIKEN은 개인이 세운 사립 연구소였다"며 "국립연구소로 바뀌고 국가의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기능이 추가되면서 기초과학연구도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연구자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를 연구의 중요한 목표로 삼게 되면서 연구책임성이 더욱 강해졌다는 얘기다.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 역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연구 수행'을 중요한 미션 중 하나로 삼고 있다. 

2014년 일본이화학연구소(RIKEN)의 STAP세포 조작사건은 국민들과 연구자들이 연구부정과 연구윤리 그리고 연구책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오수카 과장의 설명이다.

이 사건 이후로 이화학연구소에서는 연구윤리와 책임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국가 전체적으로 연구자 개인이 이에 관해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도록 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문부과학성 등 정부에서도 연구원들이 공적 연구비에 대한 윤리교육을 수강하게 하고 연구기관의 책임을 묻는 등의 지침을 수립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에서 만난 한 과학자는 "과학선진국들의 시스템은 60년대 말 시작돼 5년에 한번씩 리뉴얼하며 연구와 운영의 방향성을 잡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물리, 화학, 생물 등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같이 연구하는 문화도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연구에 대한 질을 높이며 노벨상을 받기도 한다"면서 "그에 비해 우리는 잠깐 보고온 외국의 껍데기를 베끼고 연구자들을 그 틀에 넣으려한다. 연구에 대한 책임문화도 자유로운 연구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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