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를 찾는 여행객들에겐 자유와 여유가 넘친다. <사진제공=성철권>
라오스를 찾는 여행객들에겐 자유와 여유가 넘친다. <사진제공=성철권>
다양한 모습의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라오스. 기대에 가득 찬 반짝이는 눈망울, 그리고 한 손에 꼭 쥐고 있는 여행안내책자로 자신을 증명하는 이들. 한 손에 쏙 들어가는 작은 공간에 누군가의 세상이 담겨 있다는 건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지도와 함께 길 위에 오른다.

지도를 잘 읽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두 발로 직접 걸으며 만들어가는 내 마음 속 지도가 좋다. 다른 이가 아닌 내 발자국이 남아있는 작은 골목, 시선이 머문 자리, 거리의 아이들과 나눈 미소가 담긴 내가 그린 지도. 길을 잃어도 좋은 이유. 온전한 자기로서의 기억들. 그래서 우리는 길에 오르며 그 순간들을 추억하는 건 아닐까?

여행자들에게 자유를 상징하는 ‘길’. 그렇다면 라오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길은 어떤 의미일까? 산지가 많은 북쪽, 평야가 많은 남쪽. 산족과 화전민이 살아가는 북쪽나라, 도시민과 공장노동자가 살아가는 남쪽나라. 그리고 길로 구분되어지는 그들의 삶.

우리는 사람이 다니는 곳을 길이라고 부르며,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겨진 그 자리에서 길이 시작된다. 조금은 비약적인 논리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걸음을 통해 길이 시작되고, 길이 라오스 사람들의 삶을 구분 짓게 된다면, 언젠가 우리의 걸음이 현지 사람들의 삶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지 않을까.

라오스 북부지역에 무앙응오이(Muang Ngoi)라는 곳이 있다. 한국어로 풀어보면 응오이 마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루앙프라방에서 북쪽을 향해 버스로 세 시간 정도 달리면 농키아우(Nong Khiaw)에 도착하고 그 곳에서 배로 한 시간 정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무앙응오이에 도착하게 된다. 인터넷으로 라오스를 접하는 사람들에겐 라오스 북부 오지마을, 또는 한적한 시골마을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농키아우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제공=성철권>
농키아우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제공=성철권>

농키아우 전망대 모습. 사진으로만 보기엔 아까울 만큼 절경이다. <사진제공=성철권>
농키아우 전망대 모습. 사진으로만 보기엔 아까울 만큼 절경이다. <사진제공=성철권>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탄 이후 이전과는 마을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국 배낭여행 중 만났던 여행자들은 무앙응오이에 생각보다 한국 관광객들이 많아서 놀랐다고 한다. 얼마 전 대기업 해외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라오스를 찾은 청년들도 무앙응오이 지역에 이방인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오지마을을 방문하기 위해 일정을 변경하기도 했다. 

과거의 한적한 시골풍경이 흐릿해진 무앙응오이를 보며 어떤 이들은 여행자들이 라오스의 고요함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반짝 몰려든 여행자가 떠난 뒤 마을에 찾아올 더 큰 공허감을 염려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라오스와 북부지역을 향하는 걸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무앙응오이의 석양. 부두 없는 강가에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에서 시골 정취가 느껴진다. <사진제공=김종복>
무앙응오이의 석양. 부두 없는 강가에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에서 시골 정취가 느껴진다. <사진제공=김종복>

내가 일하고 있는 라오스-한국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LKSTC)가 라오스 북부지역인 루앙프라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혹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라오스 북부지역은 물류인프라가 형편이 없다.” “주변국 관계 등을 고려하면 무조건 비엔티엔(라오스 수도: 남부지역)에서 일을 해야 한다.” “조금 지나보면 내가 하는 말이 맞는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고개가 끄덕여질법한 말들이지만 ‘그렇다면 라오스 북부지역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오히려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발자취를 남겨둔 산지마을들. 또한 말로만 들었던, 강을 거슬러 올라 두 발에 의지해야만 닿을 수 있는 북쪽의 많은 마을들, 그리고 사람들. 그런 이들에게 ‘길’이란 여행자의 그것보다 조금은 더 묵직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거점도시인 루앙프라방을 시작으로 라오스 북부 지역을 마음에 품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리(센터)의 발걸음에 사뭇 진지한 다짐이 담겨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농키아우의 어느 마을. 섬은 아니건만, 산과 산 사이에 위치해 있어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다.<사진제공=성철권>
농키아우의 어느 마을. 섬은 아니건만, 산과 산 사이에 위치해 있어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다.<사진제공=성철권>

라오스 생활 초기, 센터장님께서 ‘라오스는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의 무덤’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UN을 포함한 다양한 국내외 기관들이 라오스를 지원해왔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기에 쉽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아세안국가 중 4번째로 많은 원조를 받고 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 날 밤 나는 노트에 ‘라오스 무덤꽃 프로젝트’라는 글을 적었다. 

어린 시절, 집 근처 무덤가에 한 송이 코스모스가 피어져 있었다. 6살 소년은 무덤가를 지나기가 무섭지 않았을까? 하지만 코스모스가 피어있던 그 길은 나에게 늘 따뜻함으로 기억된다. 

라오스라는 무덤가에도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진 길이 생겨난다면. 그 길 위에 희망이라는 한 송이 꽃이 피어난다면. 나에게 그랬듯 라오스도 조금 더 밝고 따뜻한 곳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무덤 꽃 프로젝트’는 두 발로 땅을 밝고, 길이 시작될 그 자리에 꽃이 피어나길 기도하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누군가의 길에 오르듯, 다른 이가 나로부터 시작된 그 길 위에서 더 나은 희망을 노래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내가 처음 길 위에 오른 20대 초반에 느낀 생각을 나누고 싶다. 

‘여행을 다니며,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함박웃음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 행복을 엿보는 우리. 스스로 행복을 그리는 방법과 용기를 잃어서, 타인의 시선에 비친 행복을 찾게 되는 건 아닐까.’

여전히 길 위에 서면 그 시절의 생각이 떠오른다. 불편한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밤하늘 빛나는 북극성처럼 나를 이끄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디로 향하든, 늘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는 질문 하나 간직한 채 길 위에 올라보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길 위에서. <사진제공=성철권>
길 위에서. <사진제공=성철권>

성철권 라오스-한국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 기획교육팀장은,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대한민국의 따뜻한 청년입니다. 지난해 초 사회문제와 사회양극화를 착한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사회혁신 컨설팅·인큐베이팅 전문기관 MYSC의 방문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적정함(appropriateness)’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9월, 그 대답을 찾기 위해 라오스에 왔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그리고 소복이 쌓여가는 만남과 추억 속에 서로를 통해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고 이해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오스 생활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라오스의 사람과 사회, 그리고 과학이야기를 진솔한 글로 담고자 합니다. 또한 자신의 글이 라오스의 목소리와 현지에서 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전달하는 좋은 통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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