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獨·日 과학자들 "우린 얼마나 도전적인가로 평가받는다"

[업그레이드 사이언스코리아 - 해외기획취재]연구경영②
실효성 의문 한국 과학계 R&D평가…'발상의 전환' 절실
김요셉, 길애경, 이은미 기자 joesmy@hellodd.com 입력 : 2015.08.24|수정 : 2017.03.22

"우리 연구책임자들은 4년마다 얼마나 연구과정이 도전적인가를 평가받습니다. 숫자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정말 정확하게 진단하고 앞으로의 연구방향에 대해 조언해 주기 때문에 평가과정 자체가 연구자 입장에서 도움이 많이 됩니다."
(이경상 미국 국립암연구소 책임연구원)

"일반적인 평가는 2년에 한번 이뤄지고 실제 평가는 6년차에 이뤄집니다. 2년차에는 연구의 큰 방향성이 제대로 가는지를 보는데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독창성입니다. 또 디렉터를 심사하는데 박사과정이나 포닥 등 디렉터를 제외한 모든 구성원에게 연구환경, 휴가 등 구체적으로 묻고 개선내용 등을 반영하죠."(김상규 前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 프로젝트그룹 리더)

"논문이나 특허의 수가 과학자의 질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제출된 논문이 온전히 본인의 것인지가 중요하죠. 평가지표나 배점이 자주 바뀌지 않는다는 점도 한국과 다릅니다."(류이치 나카지마 KIST 연구원)

선진 과학강국의 과학기술자들이 연구를 하면서 국가·사회로부터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들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도전적으로 연구목표를 달성했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평가받고 있고, 대부분의 평가의견은 앞으로의 연구과정에 도움이 되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고 이구동성 입을 모은다.

한국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2~3년짜리 연구과제의 마지막 관문인 연구평가에 응하는 한국 과학기술자들은 논문과 특허 갯수에 답을 해야 한다. 평가 주요항목에서 논문과 특허 수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연구자들이 이러한 정량적 평가를 문제 삼으며 계속 목소리를 내자, 정부도 양적평가에서 질적평가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논문의 임팩트 팩터와 논문 책임저자로 올라간 개수 등의 평가항목을 보완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R&D평가 대책안에도 여전히 현장 과학자들은 납득할만한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현장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부실·눈가림·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의 한 원로 과학자는 "숫자로 연구자를 평가하는 한국의 R&D평가시스템은 과학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발상의 전환이 절실해 보인다"며 "연구자들이 자신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도전적으로 연구에 임했느냐에 인정을 받고 동기부여를 받는 방향으로 평가시스템을 개혁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 미국 NIH, 평가 8개월 전부터 심사단 구성…"평가의견, 연구에 큰 도움"

이경상 박사는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원들은 4년마다 얼마나 연구과정이 도전적인가를 평가받는다"고 말했다.<사진=김요셉 기자>
이경상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PI(Project investigator) 책임연구원은 최근 4년마다 돌아오는 연구평가 준비에 일상의 연구생활보다 다소 바쁘게 지낸다. NIH는 테뉴어를 받은 책임연구원(PI:Project Investgator) 중심으로 4년마다 평가한다.

이 박사는 3개월 전 평가양식에 맞춰 연구 프로그램에 대한 25장짜리 서류를 제출했다. 25페이지가 양은 적어 보이지만, 워낙 심사위원들이 꼼꼼하게 진단하기 때문에 6개월 전부터 사실상 평가작업 준비가 시작된다.

NIH의 평가 과정은 1차 서류심사, 2차 발표심사, 3차 심사 평가의견 보완 단계를 거친다. 심사는 거의 1년간에 여러 단계를 거쳐 진행되지만 모든 평가의 초점은 '연구자가 얼마나 도전적인 목표를 가지고 연구를 수행했는가'에 맞춰진다.

NIH 산하 각 연구기관은 평가 8개월 전 즈음 학문적 수월성을 기준으로 연구심사단을 구성한다.
평가대상 연구자가 연구요약서 1장을 연구소 본부에 제출하면 연구심사단 구성을 비롯해 심사 일정을 조율한다. 심사단은 국적을 불문하고 관련 분야별 톱 클래스 책임연구원급 13~15명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연구계획부터 자세히 살피며 중요한 토픽을 정했는지 검토하고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여러 의견을 내놓는다.

심사단 평가리뷰에 대해 평가 대상 연구원은 찬성 또는 반박할 기회를 갖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노벨과학상을 받은 석학급으로 구성된 'NIH 연구심의기구'에서 최종 판단을 내리지만, 전반적으로 연구소장 리더십 중심으로 평가가 내려진다. 만약 연구가 부실할 경우에는 테뉴어를 받은 연구자일지라도 해당 실험실을 없애거나 과제를 축소하는 결단이 내려지기도 한다.

이경상 박사는 "같을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심사하기 때문에 연구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고, 면밀하게 연구를 살펴본다"며 "심사가 이뤄지는 과정 자체가 연구활동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침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미국 군사전문 기술개발 연구재단 DARPA(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경우 공식적으로 어떠한 내부 평가가 아예 없다. DARPA 총책임자는 의회 등 해당 기관의 전반적인 업무에 대한 이해를 시켜려고 노력하지만 이마저도 공식적인 평가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DARPA는 연구프로그램의 선행 투자관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잘 관리하지, 사후 검증 평가시스템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각각의 DARPA 디렉터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오피스 디렉터들과 연구책임자들을 관리 감독하고, 프로그램이 적절한지 관찰하고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돕는다.

DARPA 한 관계자는 "연구자를 평가한다는 의미는 연구자의 그간 혁신활동을 인정해 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평가시스템을 갖고 연구자를 평가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온다"고 강조했다.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 독창성 평가…최고 연구환경 조성위해 디렉터 평가 중시

손광효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 박사과정. 그는 1주일정도 진행되는 6년차 평가를 경험했지만 학생이나 비정규직에게 평가자료를 준비 시키는 일은 경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사진=길애경 기자>
"한국은 평가 때가 되면 포닥이나 비정규직이 자료 준비하느라 밤새는 일이 많은데 독일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가 그동안 진행한 내용만 작성해서 넘겨주면 디렉터와 그룹 리더들이 준비하느라 무척 바빠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손광효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 박사 과정생은 6년차 평가과정을 경험했지만 그가 바쁘거나 힘든 과정을 겪지 않는다. 

손 박사 과정생은 "6년차 평가는 일주일 정도 진행되는데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진행한 내용을 정리해 리더에게 넘기고 발표 당일 참석해 보는 것이 전부였다"면서 "평가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2년에 한번 가볍게 진행되는 PT발표 평가와 몇개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그룹으로 묶어 상대평가하는 6년차 평가로 구분된다. 2년차 평가는 연구소마다 구성된 해당분야 전문가인 과학자문위원회 위원들이, 6년차 평가는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단이 맡는다. 과학자문위원회 위원들은 막스 플랑크 각 연구소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이처럼 명단을 공개해도 평가로 인한 비리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2년차 평가시 연구분야는 어떤 성과를 냈는지보다 연구의 큰 방향성이 옳은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평가한다. 또 연구의 독창성을 중점적으로 본다.

6년차 평가는 몇개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그룹으로 묶어 비교하는 상대평가로 이뤄진다. 외부 평가단이 하지만 새롭게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은 없다. 2년마다 이뤄진 평가자료와 그룹 리더들의 포스터 발표 등이 전부다. 이 시기에는 디렉터에 대한 평가가 구체적으로 이뤄져 평가단은 연구소 내 디렉터를 제외한 모든 구성원들에게 디렉터에 대해 질문하며 평가를 진행한다.

막스 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에서 그룹리더로 참여했던 김상규 박사 역시 평가로 인한 부담은 겪지 않았단다. 그는 "포스터 자료 하나를 만들어 발표했을 뿐, 전체 자료는 디렉터와 행정직원들이 했다. 연구자들은 연구에 그대로 집중할 수 있었다"고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이어 "학술적인 면은 방향성과 독창성을 중시하는데 2년, 6년 평가를 통해 앞으로 연구비가 결정되기때문에 자유로운 연구환경 속에서도 연구자로서 책임을 다한다"면서 "평가단은 디렉터를 다양한 각도에서 평가 하는데 박사과정생과 박사후 연구원들에 대한 지원은 잘 이뤄지는지, 휴가는 잘받는지, 사무 공간은 충분한지, 인격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지 전반적인 평가를 하게된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막스 플랑크 협회의 부회장이 직접 내려와 포닥, 박사과정들과 면담을 통해 디렉터를 평가하기도한다"면서 "아주 드물게 연구비 중단, 연구소 폐쇄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평가를 통해 학생과 포닥 등 젊은 연구자들의 인건비와 복지가 지속적으로 좋아지고 있다. 젊은 인재들이 막스 플랑크로 몰리는 이유"라고 부연했다.

일본, 숫자에 집착하지 않아…연구자 커뮤니티 평가도 진행 

일본도 한국처럼 평가에 대한 정량적 지표가 있다. 연구자들이 평가받을 때 제출해야 할 서류도 적지 않다. 특히 작년 연구부정 사건 이후 평가와 관리가 엄격해졌다. 하지만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성적 평가와 정량적 평가를 같이 진행하는 것과 공정성 확보에 최선을 기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과학자들의 평가는 토론과 정보교환, 피드백을 받는 자리로서의 의미가 크다. 평가 지표는 논문이나 특허의 수 같은 정량적 평가도 포함하지만 연구의 중요도와 타당성, 창의성, 향후 미치는 영향 등 정성적 지표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연구과제가 자신만의 고유한 주제였는지, 연구 의의나 가치는 무엇인지, 앞으로 해당 연구를 계속할 것인지 등을 중요한 요소로 평가한다.

연구 부정이나 비리 등이 아니면 정량적 지표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연구과제가 없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연구자와 평가자 사이에 신뢰가 쌓여있고, 논문의 영향은 5년이나 10년이 지나야 알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가 널리 자리잡고 있다. 평가 보고서도 한국보다 분량이 적고 종류도 한 가지 정도에 그친다. 

류이치 KIST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논문 숫자보다 참여도와 질에 우선순위를 둔다.<사진=이은미 기자>
류이치 나카지마 KIST 연구원에 따르면 평가지표는 논문 숫자보다 논문의 참여도와 질에 우선순위를 둔다. 그는 "좋은 논문이 아니더라도 온전히 본인의 것인지를 살핀다. 다른 논문에 이름만 올려 숫자만 늘리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논문의 질 역시 인용횟수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특허 역시 마찬가지다. 특허 수가 해당 과학자의 우수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인식한다. 류이치 연구원은 "평가지표나 배점이 자주 바뀌지 않는다는 점도 한국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바텀업 형태의 기초연구와 도전적 연구를 지원하는 JSPS(Japan Society for the Promotion of Science)는 학술 시스템 연구센터 내 평가센터를 통해 공정하고 적절한 평가를 실시하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심사·평가에 관한 실무를 담당하는 프로그램 책임자로 임명된 주임 연구원 20​​명, 전문 연구원 103명이 인문학, 사회 과학에서 자연과학의 전 분야를 커버하는 9개의 전문 조사반에 배치돼 해당 분야의 특성에 맞게 움직이고 있다.

센터의 연구원은 우수한 학식경험이 있고 심사·평가 업무를 독립적으로 공정하고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는 위치의 연구자로 선별한다. 보통 대학 등 연구기관에 적을 두고 연구현장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선정되며 임기 3년의 비상근 연구원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JSPS 관계자는 "현재 200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고바야시 나고야 대학 교수를 중심으로 평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새로운 연구원을 모집할 때 전국의 연구기관에 후보자 추천을 의뢰해 우수한 인재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체 평가가 존재하는 것도 눈여겨 볼만 하다. 일본의 기초연구자금인 과학연구비에서 평가는 연구 과제 유형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연구 본인에 의한 자체평가(매년)와 중간 평가 개념의 연구진척평가, 사후평가 등으로 나뉜다. 자체 평가에서는 연구 실적 개요와 현재까지의 달성도, 향후 연구 추진 방안에 대해 설명하며 학회나 논문 발표, 연구 발표 지식재산권의 출원·취득 상황을 기록한다. 이 기재 내용은 '과학 연구비 조성 사업 데이터베이스 (KAKEN)'를 통해 공개돼 연구자 커뮤니티 등에서도 평가를 받게 된다. 

독일 뮌헨에서 만난 김재일 재독과학자는 "최형섭 전 과기처 장관은 살아 생전 보이지 않는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쇼윈도우 수출을 하지 않는다. 일본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한국도 그런 철학이 필요하다. 연구와 기술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R&D 평가시스템도 이를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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