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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연구장비 손수 개발' 괴짜 과학자

[별난사람]홍완 지질자원연 지질자원분석센터장…연대측정 '전자동 환원 장치' 개발
시료 전 처리 자동화로 시료 처리 속도 4배 상승…"과거 연구로 미래 대응 가능"

홍 박사가 개발한 '전자동 환원 장치'는 시료 전처리 마지막 단계를 처리하는 장비로 흑연을 만들어 내는 데 활용한다.<사진=박은희 기자>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에 필요한 시료를 제작하기 위해 해야 하는 전처리 과정은 매우 어렵고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괴짜' 과학자로 통하는 연구원이 있다. 연구를 위해서라면 세상에 없는 장비도 '뚝딱' 만들어 내는 홍완 지질자원분석센터장이 바로 그 주인공.

홍 박사가 개발한 '전자동 환원 장치'는 어렵고 지루한 연구과정을 전자동화 해 '시간'은 줄이고 '성과'는 높였다. 뜨거운 열정이 배인 그의 연구실을 찾아 장비 개발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무엇보다 연구자가 나사 볼트를 직접 조이고 수천번의 납땜을 해가며 장비를 만든 배경이 궁금했다. 그동안 해 온 연구보다 장비 개발이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실의 현실이 장비를 만들게 했다"며 다소 엉뚱한 대답으로 말문을 연 홍 박사는 "연구 인력은 부족한데 시료를 만들어 달라는 수요는 넘쳐나니 장비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홍 박사가 연구하는 분야는 방사성탄소(Radiocarbon)를 활용한 연대측정으로 시료에 함유된 탄소 성분 중 방사성탄소의 비율을 측정해 시료의 생성 연대를 측정한다. 측정가능 최대 연대가 약 5만년으로 지구환경에 대한 연구에 많이 사용되며, 최근에는 고고학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임이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방사성탄소 측정을 위한 시료 준비가 어렵고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한다는 데 있다. 그는 "방사성탄소를 측정할 때는 시료의 오염을 면밀하게 제거하고 오염가능성이 없는 부분만 골라 사용해야 한다"며 "시료에 포함돼 있는 탄소를 추출해 흑연으로 합성한 다음 측정한다. 단 30분의 측정을 위해 며칠에 걸쳐 시료 전처리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10개월 볼트 직접 조여 만든 '전자동 환원 장치'…시료 처리 속도 4배 상승

방사선탄소를 활용한 연대 측정을 위한 시료 전처리는 세 과정으로 나뉜다. 우선은 시료의 크기를 줄이거나 표면 오염물을 제거하는 물리적 전처리를 한다. 이 후 화학적 전처리를 통해 시료를 태울 수 있는 단계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시료에 포함돼 있는 탄소를 추출해 흑연으로 합성해 측정하면 된다. 홍 박사가 개발한 '전자동 환원 장비'는 전처리 마지막 단계를 처리하는 장비로 흑연을 만들어 내는 데 활용된다. 

전처리 과정은 시료가 어떤 물질로 이뤄졌는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기시료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분리·포집해 정화과정을 거친 후 환원반응을 이용 흑연으로 제작한다.

그러나 뼈의 경우는 뼈에 함유된 콜라겐 성분을 오랜 화학반응을 이용해 분리해 내고 다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필터링을 수행한 다음 고순도 산소 분위기에서 연소해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이후 대기와 같은 방법으로 흑연을 만든다.

홍 박사는 "물리적, 화학적 전처리 걸친 시료를 마지막으로 태워 탄소가 포함된 흑연으로 만들어낸다. 측정에 필요한 시료는 1mg(탄소기준)에 불과하다"며 "가장 어렵고 지루한 마지막 과정이 수동 작업으로 이뤄지면서 연구원들의 피로감이 높았다"고 시료 전처리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자동 환원 장비의 제작부터 완성까지는 10개월. 하지만 아이디어 고안부터 프로그램 제작, 개발까지 총 기간을 따지면 무려 5년여 시간이 걸렸다. 제작비용만도 4억원 정도 들었다.

홍 박사가 전자동 환원 장비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을 때 주변의 반응을 시큰둥했다. 전세계 연구소 어디에도 없는 장비로 도움을 받을 곳이 없었던 데다 개발비조차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와 같았다.  

그는 "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선진국 연구소를 두루 가봤지만 그곳에서는 장비 자체가 필요 없었다. 연구 인력들이 많은 데다 숙련된 기술까지 지니고 있었다"며 "반면 우리는 한정된 연구 인력으로 성과는 세계적 수준을 원하고 있어 자동화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자동화 장비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낀 홍 박사는 발로 뛰며 제작비를 구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프로그램을 짜고 부품도 직접 구입했다. 그렇게 10개월을 밤낮 없이 볼트를 조인 결과 2009년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비가 개발되기까지 준비과정이 꽤나 길었어요. 자동화 장비를 만들기 위해 수동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그렇기에 장비를 실패 없이 한 번에 만들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없는 유일무일 한 장비를 만든거죠. 그때 기분은 뭐라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웃음)"
 
◆ 과거 측정 통해 미래 지구환경변화 예측…장비 활용 가치 '무궁무진'

방사능탄소 연대측정을 위한 많은 시료들이 대기 중이다. 시료들에게는 이름과 같은 번호들이 매겨져 있다. <사진=박은희 기자>

전자동 환원 장비의 위력은 대단하다. 이 장비의 도입으로 시료 측정처리 속도가 4배 이상 빨라졌다. 이런 결과는 장비 개발 다음 해인 2010년 방사성탄소 관련 학술지 '레이디오카본(RADIOCARBON)'에 실리며 그 관심이 국내를 넘어 해외로 이어졌다.

현재까지 전자동 환원 장비를 걸쳐 간 시료만도 2만여개에 달한다. 매년 평균 4000여개의 시료를 생산해 낸 셈이다. 연대측정장비의 가동시간은 최대 6000시간에 달했다.

홍 박사는 "일 년에 6000시간 장비를 가동하려면 3명의 연구원이 주말 빼고 24시간 기계를 돌려야 가능한 수치다. 전자동 장치이지만 사람의 손이 완전히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연구원들의 피로도가 상당하다"며 "얼마 전부터는 일부러 시료 생산 수치를 낮추고 있는데 수요는 계속 이어져 걱정"이라고 말했다.

방사성탄소의 연대측정 활용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어 전자동 환원 장비를 찾는 이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일부 국내·외 기업에서는 장비를 만들어 팔라는 주문까지도 쇄도하고 있다. 

홍 박사는 "방사능탄소 연대측정은 과거를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에 중요한 연구 분야다. 과거 기후와 생활문화를 짐작해 미래의 재앙을 대비할 수 있다. 지구환경에 대한 변화를 알 수 있기에 대응책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라며 "최근에는 문화재 연구에도 활용 돼 연대측정을 위한 시료 전 처리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연구현장의 아쉬움과 바람도 함께 전했다.

"자동화 장비가 도입됐어도 연구 인력이 한정되다 보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장비를 제작해 판매하면 연구할 시간이 줄게 됩니다. 과학자에게 연구는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연구를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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