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영국을 가르는 북해의 바다에서 가장 바다 폭이 좁은 지점이 칼레(Calais)-도버(Dover) 물길로 33.1 km이다. 거의 매 시간마다 대형 카페리 선박이 수백대의 차량과 수천명의 사람을 실어나르고 있으며, 이와 함께 1994년에 개통된 길이 50.5 km의 유로터널을 통하여 유로스타 기차가 매시간 영국과 프랑스를 이어주고 있다.

얼마전 카페리를 이용하여 영국에 가던 길에 칼레 항구에서 이민자 집단의 단체행동을 목격할 기회가 있었다. 카페리 항구로 향하는 국도 위에 수백명의 이민자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도로를 점거하고, 차들의 행렬을 멈추었으며, 주로 버스와 트럭들의 짐칸문을 열어서 잠입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도착한 경찰들이 발사하는 최루탄의 연기에 대부분 도로 밖으로 밀려나 도망가버렸다.

다만, 이민자들의 숫자에 비하여 현저하게 적은 숫자의 경찰들은 도로에서 약간 벗어난 갓길 주변으로 흩어지고 있는 이민자들을 쫒아가 잡지 못하고, 그저 도로 위에서만 밀어낼 뿐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이 짧은 수십여분의 시간 동안, 필자와 일행들은 자동차 안에서 창문을 닫고 잠긴 차문을 다시 확인하면서, 뜻하지 않은 일말의 공포 분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칼레 시장이 TV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이민자들의 문제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배에 탑승하기 전, 여권검사를 하는 영국 이민국 관리는 작년 중반부터 심각해지기 시작한 이민자들의 집단행동이 이제는 매일 수차례에 걸쳐서 반복되고 있으며, 점점 이민자들의 숫자와 도발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TGV 급행열차가 다니는 유로터널을 통하여 2000여명의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건너가려고 하다가 적발된 일도 발생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EU를 탈퇴하는 질문의 국민투표를 실시하려는 영국이 프랑스의 잘못된 이민자 정책으로 영국이 피해를 입고 있다면서 공격에 나섰고, 이민자들이 모여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프랑스의 칼레 시에서는 시 재정상황이 현재의 경찰력을 유지하기에도 벅차다고 하면서, 칼레의 이민자 집단이 영국으로 가려는 목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만큼, 영국이 이를 막기위한 재정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맞불을 놓고 있다.

물론, 이는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랑스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EU 유럽국가들이 이민자들의 난민신청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쉽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재의 경제위기와 증가하는 실업률을 고려할 때, 급증하는 난민신청자들은 유럽주민들에게 상당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에 따라서, EU 28개 회원국들 내부에서는 불법이민을 제한하고 국경검문을 새로이 실시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증가하고 있다.

 
이민자들의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하여, 유럽 국가들이 두세배의 경찰 및 이민감시 요원들을 투입하고, 국경 출입을 제한하려고 하여도, 전쟁과 정치적 박해, 또는 극단적인 가난을 피하고자 출신국가에서 탈출하는 이민자들의 목숨을 건 도박을 제한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앞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지난 한해 동안 유럽 전체의 망명 신청자들 중 영국 신청자는 4.5% 로 인구대비 망명신청자들의 비율이 천명당 0.5명밖에 되지 않았고, 오히려 인구가 더 적은 스웨덴이나 핀란드 등의 국가에서 망명 신청자들의 숫자가 더 높았었다. 총 인구가 천만명이 채 되지 않는 스웨덴에서는 망명신청자들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8.4%를 차지하여, 이들이 모두 망명허가를 받는 경우, 한해에 12%의 인구가 증가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이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물론, 현재에도 국지전 전쟁이 진행중인 시리아 지역과 인접한 터키와 그리스, 그리고 튀니지, 리비아와 가까운 바다에 람페두사 섬을 지켜야 하는 이태리, 그리고 하알제리와 지척거리에 있는 스페인 등을 포함하여 여러 남부유럽국가들은 육로 또는 해로를 통해 밀려오는 이민자들을 해결해야 하는 일차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리스의 경우 국가부도 상태를 근근히 막아내고 있는 상태에서 터키 또는 바다를 통하여 밀려오는 불법 이민자들을 막아내기에는 정부 예산과 인력 지원의 한계가 명확하며, 유럽연합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불행중 다행이라면, 이렇게 밀려들어온 이민자들이 그리스에 머물지 않고 독일, 프랑스 그리고 영국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국제 화약고로 불리우는 중동지역과 잦은 지역 전쟁에 시달리는 아프리카를 바로 옆에 둔 유럽의 비극이라고 하여야 할 지, 아니면 지난 수세기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를 식민통치로 착취해 왔던 유럽이 반대급부의 영향을 받는 것인지 모른다. 어쩌면 두가지의 요소가 함께 결합되어 이민자 문제를 낳았을 것이다.

거의 30여년 전에 베트남의 보트피플의 문제를 놓고 프랑스의 많은 지식인들과 사회 지도층들이 함께 나서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었다. 장-폴 사르트르는 인류의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우리로 하여금 이 보트피플들을 도와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며 기자회견을 하였고, 미셀푸코, 베르나르 쿠쉬네 등과 함께 당시의 지스카르 대통령을 압박하였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30년 전과 많이 달라져 있다. 절반에 가까운 유럽 연합 나라 여론은 이들 불법 이민자들의 입국을 더 철저히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민 정책의 이견차이가 중요한 의제가 되어 유럽연합을 탈퇴하거나, 유럽연합의 기본 약속인 '국경없는 자유로운 왕래'를 폐지하고 국경 검문·관리를 다시 도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오죽하면 프랑소와 교황이 기자회견을 통하여 유럽사람들에게 인류의 보편적 인권에 대한 무관심을 탈피하자고 주장하고 있을까?

다만 현재 프랑스 칼레에서와 같이 많은 유럽의 도시들에서 이들 불법이민자들을 돕자고 하는 자발적인 시민운동 단체들이 자생적으로 결성되어, 이민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추운 날씨를 대비하기 위하여 기본적인 옷가지나 일용할 양식등을 배급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위안이 되려나 싶다. 특히, 항구와 유로터널의 진입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프랑스 칼레 시에서는 시민들이 Calais Migrant Solidarity (칼레 이민자 연대) 를 결성하여, 칼레 시에 거주하는 이민자 집단들에게 필요한 생필품과 음식을 제공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증폭되던 2015년 8월의 한국에서, 유럽,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불법 이민자 문제가 먼나라 이야기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수 십배나 많은 국민소득을 누리고 있는 유럽 사람들이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에서 밀려들어오는 이민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국에서 국지전이라도 전쟁이 재발하고, 수백만 명의 북한 이민자들이 발생하여 상대적으로 부유한 남한으로 밀려오는 경우 남한 사회에서 어떠한 여론을 만들어낼 것인지 궁금해진다.

지난 역사에서 높은  성과를 만들어낸 주요 인물들 중에는 외부에서 유입된 이민자들의 자녀 집단 출신이 더욱 돋보여 왔다. 과학계에서만 보더라도 아인쉬타인, 마리 퀴리 등이 생각나며, 가까이는 스페인에서 이민 온 프랑스의 마누엘 발스 현 국무총리와 헝가리 출신 이민자의 아들인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가 존중되고, 나와 다른 남과 함께 어울려 발전하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더욱 발전하는 한국이 되지 않을까? 필리핀 출신 여성부 장관, 베트남 출신 노동부 장관, 인도 출신 과학부 장관 등을 배출해 낼 수 있는 한국을 기대해보고 싶다.

◆최경일 박사는

최경일 박사는 '최경일의 지금 유럽에선'의 타이틀로 유럽의 한인과학기술인들이 바라보는 현대사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과 유럽이 경험하고 있는 과학기술분야의 발전상과 함께, 유럽에 살고 있는 한인과학기술자들의 역할과 한-유럽간의 교류,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지구의 환경보호 및 인류의 동반성장에 관한 고민들을 함께 공유할 예정입니다.

최 박사는 전산, 정보통신 및 인공위성 시스템을 전공했으며, 현재 프랑스 위성통신회사인 유텔셋 Eutelsat 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재직 중입니다. 연구분야는 인공위성의 시스템 설계 감리이며, 번역서로 '인공위성 통신 시스템'을 출판했습니다. 전공활동과 병행해 유럽의 한인협회인 동반성장 연구회 I-DREAM 회원으로 지구촌 공동체들의 동반성장을 위한 해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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