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1일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389차 STEPI 의 과학기술정책포럼. 주제는 '기초연구 왜, 어떻게'였고, 매우 의미있고 영감 가득한 발표들로 채워졌다.

그 중에서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화두는 조현대 선임연구원님의 '기초연구의 국가전략성에 대한 담론이 왜 우리에겐 없는가?, 기초연구 자체에 대한 정의를 우리의 환경에서 새롭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화두였다. 또 김형하 박사님이 미국 연구생활 경험을 기반으로 제기한 기초연구 수혜자의 확대(단위 과제 규모를 줄여서라도)와 기초연구에 관한 지원과 자율성 확대 담론이 십 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별 변화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문제제기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두 분이 던진 화두, 즉 왜 우리는 같은 주제의 논의에서 맴돌까라는 것과 한국적 상황에서 기초연구라는 개념에 대해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문제제기에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즉  이 두 분이 던진 화두는 한 가지 본질적 문제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말하기 전에, 이 두 가지 화두가 내게 공명했던 배경부터 말해보자. 얼마 전 또 다른 과학기술정책 관련 전문인 모임에서 직면한 문제의식, 즉 '이 십 년이 지나도 왜 우리는 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큰 틀에서 볼 때에, R&D 정책이 진화하지 못하고 이전에 나왔던 논의의 재탕에 머물거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는 비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현상 진단'일 수 있지만, 그 책임을 정부에서만 찾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문제의식은 적절하지만 책임소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갑이 모든 권한을 가졌으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물어야 할까? 필자는 연구계가 요구하는 예산의 독립성과 연구의 자율성 문제는 연구계 스스로 이것을 획득하려는 주체로서의 합당한 '정책적 성숙성과 연구 기획의 신뢰성'을 확보한다면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때가 되면 저절로 다가올 개연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물론 독립성의 제한이 크고, 개개의 조직 규모가 열세인 출연연의 현실을 고려할 때, 내부적으로 그러한 '정책적 성숙성과 연구 기획의 신뢰성'을 확보한 기관 운영의 발현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하지만, 진실은 이 두 가지 극단의 사이에 있다고 본다. 즉, 현실적으로 연구자에게 주어진 권한이 제한적임을 인정하더라도 상당부분 자율의 공간이 있는 것이 사실이며,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입하면 되는 선진국을 모범사례로 내세워 담론의 전개에 제한을 두기 보다는 연구자들 스스로 정책적 마인드의 제고와 무장의 필요, 그리고 그 토대 위에 우리만의 연구전략과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담론의 주체적 확장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마치 우리가 정부관료들에게 과학기술 담당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연속성을 요구하듯이….

그래서 정책을 전문적으로 고민하는 외부 기관들의 전문인들과 의사소통에 있어서 연구자들이 보다 유연하고 공감의 지평이 확대된 소통의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다면*, 그로 인해 신뢰의 기반은 확산될 것이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연구정책의 상위적 문제 해결도 앞당길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려면, 이 글에서 주장하는 연구자들의 전향적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관점으로는 무리가 있다. 사람과 문화의 본질적 변화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속성이 있다. 사람과 문화의 변화가 궁극적 지향점이라면, 그러한 변화를 불러오는 것은 사실상 환경과 제도의 정밀한 조성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연구수행자나 연구관리 기관의 실무자 모두가 예산규모와 관계된 인센티브의 압박에  놓여 있다. 연구성과의 질적 수준 압박보다 연구 예산 확보·확대의 인센티브가 강력한 환경에서 어떤 변화를 불러 올 수 있을지는 심각한 질문이 필요한 영역이다)

새들은 잠을 잘때 다리 하나를 들고 잔다.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날개짓을 하려면 차라리 광활한 대지위에 노출되어 서서 자는 것이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일 것이라는 추론을 해 볼 수 있다. 근데 왜 두다리로 자지 않을까? 아마도 몸의 최대의 Relax는 아이러니 하게도 다리 하나에 힘과 균형을 집중한 반대급부일 수 있다고 유추해 볼수 있다. 주변환경과 내부 역량을 고려하여 전략은 수정되어야 하고 고정관념은 도전되어야 한다.
새들은 잠을 잘때 다리 하나를 들고 잔다.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날개짓을 하려면 차라리 광활한 대지위에 노출되어 서서 자는 것이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일 것이라는 추론을 해 볼 수 있다. 근데 왜 두다리로 자지 않을까? 아마도 몸의 최대의 Relax는 아이러니 하게도 다리 하나에 힘과 균형을 집중한 반대급부일 수 있다고 유추해 볼수 있다. 주변환경과 내부 역량을 고려하여 전략은 수정되어야 하고 고정관념은 도전되어야 한다.

연구정책의 상위적 문제가 무엇인가? 필자는 그것을 거시적 관점과 통찰, 전문적 분석과 논리에 기반한 (즉, 다수가 공감할 수 있고 지속성이 있는) 국가 연구전략과 방향에 대한 철학의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가 연구사업에 있어서의 선택과 집중에 대한 합의와 안정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탄탄한 기술로드맵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안정적'이라 함은 정권에 따라 바뀌지 않는 것을, '구체적'이라 함은 두리뭉실한 백화점식 항목나열의 단계를 넘어서고 구체적 활용 전략·상용화까지 연계된 것을. 탄탄함이란 기술로드맵이 단지 그럴듯해 보이는 내용의 조합이 아닌, 면밀한 분석에 기초하였음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은 기술로드맵을 한시적·일회성으로 작성하는 현 체제에서는 불가능하며 국가 전략적 연구대상 부문에 대한 선정의, 그 전략연구 부분에 대한  통합적 연구개발 전략의 정의, 그 연구개발 전략과 연계한 기술로드맵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전문인의 육성과 지정, 그리고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지속적 지원·운영이 필요함을 함의하고 있다)

앞서 서술한 연구정책의 상위적 문제 - '국가 연구전략과 방향에 대한 철학적 공감대', '선택과 집중에 대한 합의', '안정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탄탄한 기술로드맵' – 에 있어서 연구자는 결코 타자이거나 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연구자들은 이 세 가지의 형성에 관여하고 있으며, 나름의 논리를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 점을 인정해도 현실은 녹록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그런 상황을 두고서 이 세 가지를 고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사치인데 무슨 말인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필자는 연구자들의 정책 마인드 제고와 성찰이 그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정책적 공감대의 기초 위에서 길어낸 '단일하면서도 합당한 화두'를 꾸준히 주장하고 소통하며 그 예봉을 다듬어 가면, 그것은 언젠가 정책에 반영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 좋은 사례가 PBS의 완화라고 본다. 때 늦은 감이 있지만 PBS의 장점보다 단점이 크다는 문제의식은 이제 상식이 되어버릴만큼 확대된 것으로 보이며, 이번 정부 R&D 혁신안에도 비록 연구계의 기대와는 괴리가 있더라도 비중 있게 반영되었다고 생각되어서이다.

하지만, 금번 발표된 정부 R&D 혁신안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연구자들이 그동안 현장에서 요구해온 여러 이슈들 중에서, PBS 완화와 기관장의 임기연장으로 '비교적' 안정적 연구수행환경 제고라는 변화 외에는 특이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6개 기관은 갑작스런 민간수탁율 쿼터제도로 인해, 그 제고된 안정성이 단기성과로 더욱 내어 몰리는 구실이 된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보다 큰 차원에서 볼 때,  OECD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뤘던 기획선정 평가의 내실성 문제, 탄탄한 기술로드맵이 부재한 문제… 등등 연구성과 혁신과 밀접히 닿아 있는 핵심 문제들이 금번 개혁안의 중심에 들어오지 않은 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이겠지만, 연구계에서 이 문제를 비중 있게 주장하고 '정책 아젠다화'하지 못한 데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금번 혁신안의 형태적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큰 문제에 대해 연구계는 문제제기만 할 수 있는 입장일까? 우리가 연구정책 개선방향에 관한 아젠다를 주도하지 못하는 것이 단지 우리에게 칼자루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고뇌하고 도전하는 연구정책의 범위와 그 치열함이 정부 관료들의 그것에는 한 참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까? 이런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그러면 다시 이 글의 본래 목적으로 돌아가 보자.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어야 좋은 환경이라는 저 먼 미래의 연구정책 담론은 접어두고 당장 우리가 직면한 연구정책의 상위적 문제를 풀기 위해 연구자들의 정책적 마인드부터 제고하고 거기서부터 하나씩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연구정책, 연구전략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과 협력과 소통의 필요성에 눈 뜨자는 것이 요지이다. 같은 맥락에서, 기초연구에 대한 새로운 방향에 대한 담론에 있어서도 '어떤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목적성 연구를 종용하기보다 새로운 지식의 탐구에 자유롭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연구환경의 저변확대가 기초연구의 방향'이라는 오래된 상식도 재고할 여지를 찾고 연구자들이 주도적으로 관여할 여지를 고민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즉 이번 포럼에서 제기된 화두, 우리 환경에 맞는 기초연구의 정의에 관하여, 단지 필요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문제의식과 담론 제기를 통해 전술한 문제의식 - 연구자들의 '정책마인드 제고'가 큰 틀에서 시급하다는 주장 - 을 확장하고 공감의 범위를 확대해 보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이번 포럼에서 두 분이 던져준 화두를 포괄하는 하나의 화두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십년 뒤에라도 동일한 질문을 하지 않으려면 기초연구에 대한 정의와 전략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혹자는 무슨 도발이냐고 할 수 있다. 기초연구에 대한 전폭적 지원이나, 배분 전략이 테이블 위에 있어야지 이 무슨 해괴한 접근인가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조현대님이 제기한 바와 같이, 우리의 기초연구 환경이 미국과 상당히 다름을 인정한다면, 기초연구의 정의 자체도 미국과 달라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상당히 유효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좀 더 나아가, 흔히 비교의 대상이 되는 미국과 같이, 기초연구에 관한 한 모든 분야에 고르게,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연구의 비효율성 문제 해결의 열쇠라는 가정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본다. 미국은 미국이지 않은가? 허리 띠 졸라매며 기초연구를 지원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우리의 상황에 맞는 기초연구의 전략적 방향에 대한 고민, 더 나아가 기초연구의 정의에 대한 도전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질문은 필자가 다루기에는 너무나 큰 주제이고 이 글의 목적도 아니다. 하지만, 조현대님의 발표를 빌어 이 화두를 가져온 까닭은, 연구자들 자신이 답보 상태의 연구정책 프레임을 벗어나려면 혹은 비효율적 연구관행과 프레임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선진국의 프로세스와 체계의 완벽한 재현만이 해결책이라는 지극히 평면적이고 단순한 담론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가 처한 환경에 맞는 변화와 적응 그리고 조금은 배려에 가까운 '연구자의 책임 범위의 주도적 확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연구정책 마인드 제고를 통한 정책전문인들·관료들과의 소통의 깊이와 신뢰의 기반 확대, 그리고 연구 정책에 관한 적극적 개입의 노력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생각(본질적 문제인식)과 행동(주변적이지 않은 핵심에 다가서는 실천)이 합일하는 지점, 즉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이며, 연구계의 혹자에게는 의무라고 본다.

이상으로 기초연구가 '왜' 그 정의와 전략에 있어서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우리의 환경에 맞게, 국가 전략적 관점에서 재조명 될 필요가 있다는 조현대 선임연구원님의 화두를 확장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환경에서, "어떻게" 달라야 할까? 라는 질문을 던져 볼 때이다. 필자는 그것을 기초연구 다음 단계인 응용연구와의 연결성, 국가 산업발전 전략과의 연계성에서 찾고 싶다. 그 이유와 구체적 담론은 충분한 숙성이 진전된 어느 좋은 날을 기약해 보자.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가 산업발전 전략에 대한 충분한 담론과 장기적 탄탄한 기술로드맵 위에 응용연구개발의 대상과 목표가 정의되어야 그에 따른 기초연구의 정책적 정합성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즉, '어떻게 달라야 한다'라는 문제를 연구자 스스로 풀기에는 어려움이 큰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연구정책에 대한 담론과 마찬가지로, 연구자의 책임 범위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변화를 기대할 수 없고 답도 보이지 않아도, 좋은 질문은 그 자체로 효용 가치가 크다고 믿는다.

◆안오성 항우연 실장은

안오성 항우연 실장.
안오성 항우연 실장.
안오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실장은 '안오성의 과학기술정책'을 타이틀로 현재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과학기술 정책/제도 개선의 화두중 반복되어 제기되거나, 첨예한 이견이 있는 주제에 대해 역사적, 문학적,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안오성 실장은 현재 항우연에서 항공기획실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틸트로터 무인항공기의 기획 및 비행체 설계와 체계종합을 10년동안 담당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초음속 항공기 T-50 개발사업에서 비행체 설계통합, 서브시스템 체계종합과 착륙장치 PM을 담당했습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R&D 전략기획단 항공우주부문 자문연구원, 민군기술협력센터 기술기획 소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중입니다. 주요 관심분야는 우리나라 산업 환경 및 국제동향, 국내 정책 환경을 통합한 장기적 항공우주 산업육성 전략, 항공우주분야 민·관·연 협력 체계, 국가 대형 R&D 사업의 기획·관리·평가 체계의 혁신 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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