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한장]글: 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대외협력본부장

대전은 진정한 과학 도시인가? 대전이 지속가능한 과학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과학도시가 되려면 훌륭한 과학 인프라가 깔려있고 세계적인 과학자와 혁신적인 기업가들이 모여들어야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과학기술지식이 창출되고, 이를 활용한 파괴적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한 혁신이 일회성이 아니고 지속가능한 혁신이 가능한 기술혁신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그 생태계를 기반으로 지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시민들이 높은 삶의 질을 향유하면서 함께 지속가능한 과학도시 전환의 꿈과 비전을 공유해야한다. 이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반이자 강력한 추진력은 역동적인 과학문화다.  

과학문화의 개념

과학문화란 과학기술이 인류의 생존과 번영, 사회의 발전을 가져오고 인류와 사회는 과학기술을 적절하게 선택하고 지원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사회의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토대를 이루고 삶의 양식으로 구현되는 사회적 가치의 총합체다. 과학문화는 과학기술의 장기적 발전의 원동력이자 과학기술이 인류문명의 발전에 올바로 기여하기 위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과학문화는 사회적 가치로서 살아 움직이며 물질적, 정신적 차원에서 과학기술 발전,인류 복지,삶을 연결시키는 매개영역이기도 하다.

과학문화는 과학기술이 물질적 풍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문화적 자원으로 향유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과학의 탐구정신, 창의력, 합리적인 증거기반 연구방법, 기존 과학과 새로운 과학과의 논쟁을 통한 진화 발전의 방식들을 사회가 수용하거나 과학이 그렇게 움직이도록 과학문화가 살아있다면 사회전반의 합리성과 이성적 수준, 문화적 수준을 제고할 수 있다.

학기술이 즐기며 누리는 문화의 일부가 되었을 때, 과학기술이 전문가로부터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지식이 아니고 음악이나 미술처럼 누구나 가까이 갈 수 있는 과학문화의 토양이 형성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동적인 과학문화는 핵심적으로 과학기술혁신에 대한 인식의 전환, 과학교육의 패러다임 변화, 과학과 예술의 융합과 글로벌화가 다양하게 이뤄질 때 가능할 것이다.

과학기술혁신에 대한 인식의 전환

과학기술 역사는 인류문명의 발전과 위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농업혁명은 인구 증가를 촉진시켰고 종이, 인쇄술은 지식의 축적과 계승을 가능하게 했다. 스팀엔진, 철도시스템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은 전기, 석유, 염료, 상·하수도, 의약품, 자동차, 항공기, 우주선, 건축 등으로 이어지면서 인류의 문명을 바꿔 놓았다. 트랜지스터, 미디어,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은 삶의 질과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한편으로 지구온난화, 자연생태계파괴, 재해재난 확대, 신종질병, 에너지와 식량 불균형, 자원 고갈, 전쟁과 갈등이 확산되면서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긍정적인 측면은 살리고 부정적인 측면은 약화시키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과학기술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진화되고 있다. 빅데이터, IoT, 미래에너지, 미래자동차, 바이오융합기술, 인공지능 로봇, 3D프린터 등의 기술혁신은 기존 산업을 해체하고 새로운 혁신기업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다. 과학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사회적 가치와 기업의 이윤을 동시에 실현하려는 사회기술혁신도 확산되고 있다. 정부와 국민, 산업체와 공공영역의 연구개발 주체들은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꿰뚫어 보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혜안을 가져야한다. 장영실과 세종대왕이 꽃 피웠던 조선의 과학기술은 백성의 고단한 삶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시작된 것이다.

기술혁신과 그것이 가져 올 경제·사회적인 변화의 효과를 인식하지 못한 채 이뤄지는 복지와 경제정책은 모두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과학기술은 저절로 발전하거나 쥐어짜서 단기간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사회문제 해결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때 사회와 함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

과학기술자는 사회와 산업, 도시에 대한 사명감과 혜안을 가져야 하고, 정부는 군림이 아니라 파트너십을 가지며 사회는 이를 연결시키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참여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 기술혁신은 슘페터의 주장대로 단기, 중기, 장기 파동의 성격을 가지면서 진화한다. 과학기술혁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경제사회문제의 혁신적 해결에 뛰어드는 혁신가가 넘쳐나고 관료문화, 연구문화, 사회문화가 수평적 네트워크로 상호 협력하며 시너지를 내는 과학문화 기반이 필요한 것이다.

과학교육의 문화적 패러다임 변화

과학교육은 과학문화의 중요한 한 축이다. 우리의 과학교육은 너무 전문화·세분화 되어있고 과학기술적 지식이 사회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배우지 못한다. 대학진학을 위한 시험이나 내신을 위한 과학체험 패러다임에 과학문화는 갇혀 있다.

외워서 써먹는 지식, 남을 쫒아가는 지식이 아니라 사유하고 창조하는 새로운 과학기술지식이 필요하고 나눠지고 흩어져있는 지식들을 모아서 조합하고 융합해서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는 혁신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과학기술과 사회를 융합적으로 사고하고 일상에서 과학기술을 즐기며 만날 때 가능하다.

학교나 연구소에서의 과학교육을 창조형으로 전환하고 사회 속에서 과학기술을 즐길 수 있는 과학도서관, 과학박물관, 거리체험, 과학기술 도시축제, 과학자와 시민의 소통공간을 두루 확대해야한다. 대덕연구개발특구는 안타깝게도 낡은 과학교육 패러다임에 놓여있고 과학기술자는 실험실에 갇혀 여전히 선진국 추격기술에 매달려있다. 대학과 연구소를 벗어나면 차가 내달리는 삭막한 거리가 펼쳐진다. 과학도서관도 과학박물관도 거리체험도 시민실험실도 소통공간도 거의 없다.

그나마 소통공간과 과학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감당하던 대덕과학문화센터는 목원대가 구입하여 오랫동안 흉물로 방치되다가 부동산업체에 2배 이상의 가격으로 매각되어 19층 쌍둥이 오피스텔 건축이 추진되고 있다. 특구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는데도 아무도 해결을 위해 나서거나 책임지는 곳이 없고 성찰과 지성의 상아탑이어야 할 목원대는 무책임한 먹튀 행위로 일관하고 있다.

세종로에서 경복궁을 바라보면 수려한 경복궁과 청와대가 보이고 뒤 백악산이 든든하게 받쳐주며 수도 서울의 정기를 뿜어내고 있다. 일제는 식민지 강점기 경복궁에 육중한 중앙청 건물을 지어 산을 가리고 그 정기를 뽑아버렸었다. 지금 대덕과학문화센터자리에 높다란 오피스텔이 들어서는 것은 경복궁에 중앙청이 들어서는 것과 진배가 없다.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정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과학문화의 핵심 지역인 도룡동은 교통지옥으로 변하고 과학교육의 새로운 기운과 소통의 기회가 이 지역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것을 막아보기 위해 평생을 연구에 몸 바쳤던 과학자들이, 앞으로 인생을 걸어야 할 젊은 과학자들이, 현수막을 걸고 서명을 하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그나마 우리들의 달라진 모습이고 새로운 희망이다.

미래부는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새로운 과학문화 패러다임을 총체적으로 조망해보아야 한다. 대덕과학문화센터를 매각할 때와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대덕의 과학문화 발전 비전을 봐야하고 그런 면에서 대덕과학문화센터를 바라보면 답이 나온다. 그것은 과거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 아니고 지속가능한 과학도시의 핵심 기반으로서의 새로운 과학문화의 전망을 다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여기에 대전시, 유성구청, 특구진흥재단, 대덕의 민간 주체들이 머리를 맞대면 합리적인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과학문화센터를 버팀목으로 도룡동, 중앙과학관, 카이스트, 연구단지 체육공원을 돌아 한국화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각 연구소와 민간 주체들이 나서 세계적인 과학문화 거리로 조성한다면 어떠할까? 과학박물관과 과학도서관을 확충하는 한편 연구소 개방과 다양한 소통 인프라와 프로그램을 확충한다면? 시민과 모든 조직이 참여하는 재미있는 과학콘서트와 과학도시 축제 등을 활성화 한다면, 아주 다른 과학교육 형태의 과학문화 공간이 창조되고,지속가능한 과학도시로서의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과학예술의 융성과 글로벌화

대전만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과학문화 영역은 과학예술이다. 대덕연구개발특구의 40여년 발전의 역사 속에 대전의 문화예술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전문화재단의 아티언스 프로그램과 대전시립미술관의 프로젝트 대전 기획전시는 대전발 과학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과학을 예술로 표현하거나 예술을 과학적 지식과 원리로 녹여내는 일, 과학지식을 대중에게 감흥을 주며 전달하는 일, 과학이 야기하는 명암을 예술적으로 드러내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 과학자와 예술가의 협업을 통해 창조적 작업의 공통성을 공유하고 이성과 감각의 시너지를 내며 서로의 영역을 확대하고 창의력을 높이는 일, 관객과의 감흥적 교감까지 염두에 두며 과학예술을 진화시키는 일 등이 많은 포럼과 행사, 소통과 교류로 이어지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과학과 신흥 문화의 도시 대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과학자와 예술가, 이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부자들은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마음껏 함께 뛰어놀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열어주고 전 세계 과학자와 예술가들, 많은 여행객들이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과학예술의 도시로 글로벌 브랜드화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1900년을 전후한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바로 이러한 형태로 과학예술을 꽃피움으로써 후기 르네상스를 주도하고 유럽의 과학문화 도시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다윈, 프로이트, 헬름헬츠, 칼포퍼의 진화, 무의식, 기억, 감정, 경험, 세포 등의 과학적 지식은 클림트, 코코슈카, 에곤실레 등의 표현주의 작품으로 표출되었고 당시의 합리주의 실재론에 머물러 있던 르네상스 예술계를 뒤집어 놓았다. 이는 다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과학연구로 이어져 과학과 예술의 상호작용과 공진화를 빚어내며 당시 비엔나를 유럽의 중심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대전발 과학예술의 발흥은 과학도시 대전을 글로벌 명품도시로 이끌며 지속가능한 과학도시로의 가능성을 확대시켜 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확대하고 과학과 예술의 소통과 융합을 촉진하는 다양한 포럼, 워크숍, 축제, 소규모 지역행사, 전시 등을 확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진화하는 과학도시, 대전

지속가능한 과학도시 대전으로의 발전은 아래로부터 다양하게 꿈틀대는 역동적인 과학문화로 인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과 사회에 대한 인식 지평의 확대, 과학교육의 새로운 변화, 대전발 과학예술의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의 다양한 민간 주체 노력과 변화는 놀랍다.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실험실이나 자신들의 영역에서 나와 시민들과 함께 벽돌한장, 벌집, TEDx, 다양한 정책포럼, 시민참여연구센터, 과학예술포럼, 대덕클럽, 백북스, 상상력포럼, 과학마을축제 등 과학자, 시민, 예술가, 전문가들의 자발적인 과학문화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유성구청의 꿈나무 과학멘토, 유성으로 떠나는 과학여행, 과학도서관 설치 노력, 중앙과학관의 과학박물관으로의 특성 강화 노력, 미래부와 특구진흥재단의 과학문화 기획, 대전시의 사이언스 페스티벌, 과학기술 10년 마스터플랜에 과학문화 포함, 대전시와 대덕특구의 상생협력협의회 활동, 각 대학과 출연연의 다양한 개방형 과학문화 프로그램 등 민간과 관이 동시다발적으로 과학문화의 역동성과 지속가능한 과학도시 대전을 위한 열정을 보여준다. 지속가능한 과학도시 대전을 향한 희망에 내일이 기다려진다.

◆ 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대외협력본부장은?

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대외협력본부장. <사진=고영주 본부장 제공>
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대외협력본부장. <사진=고영주 본부장 제공>
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대외협력본부장은 화학연의 정책개발, 국제협력, 과학확산 업무를 총괄하면서 과학기술혁신연구, 산업 및 출연연 정책, 국제협력, 과학문화에 관심이 많다. 

고영주 본부장은 1988년 서강대에서 화학석사까지 마치고 화학연에 연구원으로 입사해 연구업무에 종사하다 젊은 시절 노동조합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38살 나이로 과학기술정책과 기술경영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영국 멘체스터대학으로 유학을 가 과학기술정책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다시 화학연으로 복귀한 고 본부장은 정책기획, 기술이전사업화, 기관평가, 국제협력 등을 맡아 화학연의 정책과 기술경영 역량과 위상을 높이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소통 채널 확대와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품질을 높이는데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그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 평가전문위원, 미래부 국제화사업추진위원,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전략자문위원, UST 과학기술경영정책과정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또한, 대전시 초대 과학부문 명예시장을 거쳐 대전시 상생협력협의회 위원장, 대전시 과학기술 마스터플랜 기획위원 등을 맡으면서 참여하는 포럼 활동을 통해 지역 혁신과 과학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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