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는 다민족국가다. 가끔 이색적인 복장의 라오스인들을 만날 수 있다.<사진=황근준>
라오스는 다민족국가다. 가끔 이색적인 복장의 라오스인들을 만날 수 있다.<사진=황근준>

라오스 생활여행기 1년을 기점으로 지난 8월 한 달 동안 한국에 다녀왔다. 여유시간을 이용해 지인들과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방문해 소식을 전하며 라오스 민간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라오스를 알고 계셔서 좋았고 그 관심이 반가웠다.

한 달간 한국에 지내면서 "라오스는 어때요?", "라오스에 대한 소감은요?"라는 물음을 많이 받았다. 말주변이 부족해 미소로 넘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곤 했다. 1년생 새내기인 내가 라오스를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인 소감과 느낌을 나누는 건 괜찮지 않을까?

느림의 미학
라오스는 느리게 흐른다. 느림을 마주하는 곳은 참 다양하다. 혼잡한 도로에서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가 드물고,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도 그저 반갑게 웃고 넘어가기 일쑤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빨리빨리(와이와이: 라오스어)'라는 말을 들어본 것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대신에 현지인들은 항상 '괜찮아(보뺀양: 라오스어)'라고 말하며 씨-익 웃는다.

가끔은 애가 닳기도 한다. 관료제의 맹점일지 모르는 복잡한 행정절차는 이전엔 몰랐던 인내심의 깊이를 알게 해준다. 현지 교통수단인 툭툭이(Tuktuk) 운전기사는 마당발만 모였는지 인사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응급상황에서 경찰관과 구조대분들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개인의 잘못은 아닐 거라 믿는다.

여전히 라오스의 느림이 어색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느림 또한 역사의 산물이다. 강물이 흐르듯 사람과 시간이 흘러간다면, 누군가의 속도를 평가하는 잣대는 잠시 멈추면 좋겠다. 라오스에 작은 두 손을 나누기 위해 왔지만 그게 비단 '우리식'으로의 변화일 필요는 없겠다.  

천을 만들고 있는 라오스의 젊은이들.<사진=황근준>
천을 만들고 있는 라오스의 젊은이들.<사진=황근준>

나눔의 미학
현지인들에게 "밥 먹었니?"라는 인사를 자주 듣는다. 의례 건내는 인사려니 넘기기엔 깊은 진심이 묻어난다. 식사 중에도 식기를 가지러 가거나 손을 잡고 음식 가까이로 이끈다. 특별한 자리도 아니고, 그저 길을 걷다 마주쳐 눈인사를 나눠도 금세 '밥친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점점 친구부자가 되고 있다.

우리에게 음식대접이란 집들이나 생일처럼 특별한 날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라오스에선 그런 거창한 대접보단 가벼운 한 끼 식사나 우연한 음식나눔이 더 많다. 물론 먹기 어려운 음식들도 더러 있다.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정확한 사용재료를 모르는 음식들도 제법 있다. 때론 식후라고 말해도 무작정 먹어보라며 음식을 권하기도 한다.

그래도 식구(食口)라는 말이 그렇듯, 함께 나누는 음식 속에 마음도 담겨있는 것 같다. 미운사람과 식사하면 체한다는 말도 있듯이 식사자리는 편안함이 중요하다. 그런 자리에 흔쾌히 이방인을 초대해주는 마음이 따뜻해서 좋다.

거리에서 만난 라오스사람들. <사진=황근준>
거리에서 만난 라오스사람들. <사진=황근준>

공감의 미학
개도국(개발도상국)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뭘까?
대중교통이 부족한 라오스의 주된 운송수단은 오토바이다. 그래서 오토바이 수리점이 구멍가게만큼이나 많다. 현지에서 판매되는 오토바이는 대부분이 일본, 한국(KOLAO), 중국, 태국, 베트남 등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단연 일본제품이 높은 품질과 가격을 자랑한다.

가끔 고가의 오토바이가 자주 눈에 띄어서 놀랄 때가 있다(차량은 물론). 현지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은 HONDA CBR, Kawasaki, Ninja 시리즈 등은 원화로 4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들이라고 한다. 수도(비엔티엔)도 아닌 내가 지내는 루앙프라방에도 그런 오토바이가 종종 목격되니 신기한 일이다.

지금도 '어떻게?'라는 의문이 남아있다. 내 월급으로도 벅찬 고가의 오토바이를 도로에서 마주하면 위화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돌아보면 무언가 가지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물건 하나쯤은 있었던 것 같다. 개도국 청년들도 의식주만큼이나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가 높다는 글이 생각난다. 사실 우리는 '모두' 꿈을 꾸기에 너무 아름다운 청춘들이니까.

라오스의 주 교통수단은 오토바이다. 라오스에서 1년을 지내보니 고급 오토바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사진=성철권>
라오스의 주 교통수단은 오토바이다. 라오스에서 1년을 지내보니 고급 오토바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사진=성철권>

맺으며
내가 느낀 라오스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다. 네팔에서 그리고 인도에서 많이 들었던 말은 "This is Nepal", "It is India"였다. 온화하지만 자조가 섞여있던 말들. 하지만 라오스에선 듣기 어려운 말이다. 같은 대학에서 일하는 현지교수 한 명은 돈이 없다고 말하면 정말 가난하게 된다며 항상 긍정적으로 말을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업무회의를 하다보면 종종 이견에 부딪히곤 한다. 텃세 부리는 느낌에 속상할 때도 있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우리가 정말 '함께' 일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수평적인 관계지만, 조용한 아이들보다 시끌벅적한 아이들이 모인 교실이 생기 있는 것처럼, 현지인들과 함께 만드는 좌충우돌 모험담이 더 즐겁고 값진 이유다.

느리게 흐르는 라오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역동성과 다양성으로 인해 느림이 지루함이 되지 않는 곳. 그래서 조금은 마음의 쉼과 여유를 생각하게 되는 시간.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보는 순간. 라오스.

지난 1년을 보낸 라오스에 대한 나의 소감이다.
지면에 담지 못한 스쳐간 감정과 느낌은 메콩강을 따라 흐를 거라 믿으며.

라오스 국토의 90% 정도가 메콩강과 인접하고 있다. 루앙프라방에서도 언제든지 메콩강을 볼 수 있다. <사진=성철권>
라오스 국토의 90% 정도가 메콩강과 인접하고 있다. 루앙프라방에서도 언제든지 메콩강을 볼 수 있다. <사진=성철권>

성철권 라오스-한국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 기획교육팀장은,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대한민국의 따뜻한 청년입니다. 지난해 초 사회문제와 사회양극화를 착한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사회혁신 컨설팅·인큐베이팅 전문기관 MYSC의 방문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적정함(appropriateness)’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9월, 그 대답을 찾기 위해 라오스에 왔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그리고 소복이 쌓여가는 만남과 추억 속에 서로를 통해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고 이해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오스 생활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라오스의 사람과 사회, 그리고 과학이야기를 진솔한 글로 담고자 합니다. 또한 자신의 글이 라오스의 목소리와 현지에서 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전달하는 좋은 통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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