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빛나는 조연' 추천

<제작=콘텐츠 정윤하, 디자인 남선>

조연(supporting actor).
사전적 의미로는 주연과 단역 중간 정도의 중요성을 가지는 역할이다. 중심인물 중의 하나지만 사건의 전개에서 주도권을 쥘 만한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주연과 조연을 명확히 구분하기 애매한 작품들도 많고, 비중이 크지 않아도 큰 영향력과 긴 여운을 남기는 역할도 있다. 각종 영화제에서 조연상을 시상하는 것도 그런 의미. 최근에는 주인공보다 더 주목 받는 조연들에게 '장면을 훔치는 사람'이란 뜻의 '씬스틸러(scene stealer)'라는 호칭을 붙여주기도 한다.

하나의 큰 발견, 혹은 발명이 탄생하는 과학기술계에도 주연과 조연의 구분은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사에서 조연이 없었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역사 속 주인공으로 남진 못했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과학적 진보 역시 늦어졌을 것이다. 

1976년 4월, 국제 과학기술계 최약소국 중 하나였던 한국에서 이호왕 박사가 세계 최초로 유행성 출혈열의 병원체를 발견했다.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의학자 2명을 포함해 230명의 미국 연구진이 4천만 달러를 투자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을 5명의 연구원이 20만 달러로 성공한 것이다. 이를 통해 세계적인 과학자가 된 이호왕 박사가 인터뷰에서 꼭 거론하는 인물이 있다.

'김수암'이라는 들쥐 채집가다. 초등학교만 나온 김수암 씨는 모기, 박쥐, 뱀 등 동물잡기에 능했고 이호왕 박사는 유행성출혈열의 병원체로 추정되는 들쥐들을 잡기 위해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전방지역에서 들쥐를 찾다가 간첩으로 오인 받아 서너 번이나 사살 위기에 처한 적도 있고, 쥐를 잡다가 유행성 출혈열에 걸려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한 달만에 완쾌된 그는 연구원 생활을 그만두려 했지만, 이 박사의 설득에 그 후로도 35년을 이호왕 박사의 연구를 도왔다. 이 박사는 "그의 숨은 공로가 없었다면 내 연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벤처기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인 '미래산업'의 정문술 사장. 그는 1983년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반도체 장비 제조회사인 미래산업을 창업했다. 1996년 현대전자의 우수협력사에 선정되고 증권거래소에 상장한데 이어 1999년에는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켰다. 이같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2001년에 '회사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신념으로 회사경영권을 직원에게 물려주고 스스로 은퇴를 감행했고, KAIST에 두 차례에 걸쳐 512억을 기부했다.

그는 지금의 미래산업을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인재이자 일등공신으로 풍전기공 시절부터 자신과 고락을 함께한 '공고 4총사'를 꼽는다. 그의 자전적 책 '왜 벌써 절망합니까'에서는 그 중 특히 백정규 부사장과의 만남을 '운명적'이라 묘사한다. 뒤늦게 사업을 시작해 사기까지 당하고 망연해 있는 정 사장에게 백부사장은 '기술의 중요성을 가르쳐주고 엔지니어의 참모습을 보여준' 인물이며, '부족한 현장경험을 보완해준' 최고의 조력자였다.

때로는 과학자들도 누군가의 조연이 되기도 한다. 세계1차 대전 중 영국의 과학자 에딩턴은 적국의 과학자였던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지지했고, 1918년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의 개기 일식에 망원경과 사진기를 가지고 가서 상대성 이론을 입증했다.

이 사건으로 아인슈타인은 세계 최고 석학이자 대스타가 되었고, 지금도 역사 속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하나이지만 그의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해준 에딩턴은 그만큼의 영광은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에딩턴은 "어느 나라 과학자의 이론이든 옳은 이론을 증명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책임"이라는 말을 남겼다.

미국의 역사가 클리퍼드 코너의 저서 '과학의 민중사'에 따르면, 갈릴레오나 뉴턴 등 많은 과학자들이 장인과 테크니션(기능인)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그들에게서 실용 수학이나 경도 측정과 같은 기예를 배웠으며, 튀코 브라헤나 로버트 보일의 경우에는 실제로 숙련된 기술자들을 직접 고용해 관측과 실험 등을 대신 수행하게 했다. 그는 "과학의 발전은 몇몇 개인들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에 의한 집단적인 성취"임을 강조한다.

과학기술계야 말로 조연에 대한 감사와 격려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가 아닐까?

대덕넷에서 과학기술계 빛나는 조연을 찾습니다. 그들에게 말해주려 합니다.
"당신이 있어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가 밝습니다. 당신은 빛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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